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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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주일오전예배 설교(계 13:11-18 / 말세에 나타날 두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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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7-28 17:13 조회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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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mRVervdceV4?si=Xq_Lo4_SMK028UyB


성경: 요한계시록 13:11-18 

제목: 말세에 나타날 두 짐승


요한계시록 12장에 큰 용, 사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13장에 두 짐승이 나옵니다. 1-10절에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 11-18절에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입니다. 이 두 짐승은 다 사탄을 상징하는 것들이고 사탄의 종노릇 하는 자들입니다.


1. 바다에서 나온 짐승

1절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여기서 “바다”는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바다처럼 늘 요동하고 변화무쌍합니다. “짐승”은 국가나 왕을 가리킵니다. 말세에 이 세상 나라 가운데서 악한 짐승과 같은 한 왕이 나와서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입니다. 1절에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한마디로 괴물과 같습니다. “뿔”은 권세를 가리키고 “머리”는 주장자, 다스리는 자를 가리킵니다.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짐승이 왕관을 쓰고 자랑하면서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3절에 보면 그 짐승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됩니다. 확실히 죽은 줄로 알았는데 갑자기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고 살아납니다. 그러자 온 세상이 그 짐승을 따릅니다. 8절에 보면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모든 자들은 다 이 짐승에게 경배합니다.

둘째. 용에게서 권세를 받습니다. 2절에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4절에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 즉 사탄이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 이 짐승은 용에게 경배하게 합니다(4절). 짐승이 사탄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여 사탄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세상은 뉴에이지 운동과 종교통합 운동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사탄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합니다. 5절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이 짐승이 과장된 말,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6절에 이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고 성도들을 비방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비방하고 교회를 욕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5절에 보면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이 짐승은 42달 동안만 활동합니다. 42달은 3년 반입니다. 말세의 7년 대환난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넷째, 일시적으로 교회를 이깁니다. 7절에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이 짐승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교회를 이깁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사탄을 숭배하게 합니다. 이때 참 성도들은 많은 핍박을 받게 되고 순교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탄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며 교회의 박해도 일시적입니다.

다섯째, 이 짐승은 결국 멸망합니다. 이 짐승은 결국 잡혀서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요한계시록 19:20에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요한계시록 20:10에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이냐에 대해 해석이 다양합니다. 성경의 예언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타날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확실하게 이 짐승의 정체를 알게 될 것입니다.


2. 땅에서 올라온 짐승

11절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타락한 기독교에서 나오는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이 짐승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이 짐승은 예수님을 모방하고 가장합니다. 11절에 “어린 양같이” 양처럼 생겼습니다. 어린 양 같은데 어린 양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이름을 쓰지만 기독교가 아닙니다. 전혀 해롭지 않게 보이고 악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좋아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속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고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짐승의 정체를 모르고 따라가다가 멸망합니다.

둘째, 이 짐승에게는 두 뿔이 있습니다. 뿔은 권세를 의미합니다. 종교적인 권세와 정치적인 권세 이 두 권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가장 흡사한 것은 천주교 교황청입니다. 바티칸은 종교적인 권세와 정치적인 권세 이 두 가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 종교적인 권세와 정치적인 권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단체는 교황청밖에 없습니다.

셋째, 이 짐승은 용처럼 말합니다(11절). 어린양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용처럼 말합니다. 용처럼 말한다는 것은 마귀처럼 말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이것이 마귀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면서 안 한다고 합니다. 진리가 아닌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넷째, 이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합니다. 13절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말세에는 사탄이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적을 행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0에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마태복음 24:24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러므로 이적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마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이 짐승이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게 합니다(14절). 첫 번째 짐승과 두 번째 짐승이 손을 잡고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섬기게 합니다. 15절에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이 우상의 특징은 말하는 우상입니다. 아마 인격 우상인 것 같습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는데, 어린양의 생명책이 이름이 기록된 성도는 경배하지 않습니다.


3. 666 짐승의 표

이 짐승은 모든 사람의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합니다(16-17절).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니 666이라고 했습니다(18절).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면 매매를 못하게 합니다. 즉 경제 활동을 못 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 666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많습니다. 신용카드, 바코드, 주민등록증, 전자 문신, 생체인식 표, 베리칩, 여권에 칩을 심는다는 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해석이 아닙니다.

첫째. 18절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라야 이 숫자를 셀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666 숫자를 셀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위에 말한 것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지혜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고 세상 지식으로 다 알 수 있고 불신자들도 다 사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둘째, 666표를 받으면 지옥 가고, 666 짐승의 표를 안 받아야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계시록 14:9-11, 계시록 15:2, 계시록 16:2, 계시록 20:4).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교리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은 기계적인 것이나 문자적인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666 숫자를 그런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짐승이 경제를 통제하고 매매를 못하게 할 때는 그런 것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들 자체가 666이라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셋째,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을 가리켜 ‘인쳤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7:4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를 ‘인 맞은 자’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13에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을 ‘인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의 얼굴이나 이마에 글씨로 표를 하고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쳤다’는 말은 복음이 믿어지고 말씀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믿어진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짐승이 666표를 받게 하는 것도 기계적인 것이나 문자적인 것이 아닙니다.

넷째, 그러면 666은 무엇입니까? 6은 인본주의 숫자이고 세상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창조된 날은 제6일입니다. 18절에도 666은 사람의 수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7수는 완전수이며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7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 6입니다. 그런데 6이라는 숫자가 세 번이나 반복된 것은 인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것을 나타냅니다. 6이 발달해서 7이 되는 것이 아니고 66이 됩니다. 66이 더욱 발전되면 666이 됩니다. 666은 인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상태입니다.

인본주의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과 사상을 인본주의로 만들고, 불신앙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서 하나님을 빼 버리고 신앙을 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적인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이것이 666표를 받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진화론에 철저히 물든 사람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사탄의 소유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자기 소유로 인정하고 666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오른손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행동을 인본주의로, 불신앙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비신앙적으로, 세상적으로, 인본주의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7수의 하나님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4. 성도들의 믿음

우리는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이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지혜로 이 시대를 분별하고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거짓 선지자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7수의 영의 일과 6수의 땅의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10절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666표를 받지 말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다니엘같이 뜻을 정하고 굳은 결심으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탄은 짐승의 표로 인을 치지만 성도들을 복음을 전하여 성령으로 인치고 복음으로 인 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이 사상이 되고, 인격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행동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짐승의 말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살려고 하면 큰 핍박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도가 환난과 핍박 중을 당할 때 반드시 건지고 지키십니다. 최후의 승리와 영광은 성도에게 있고 교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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