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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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15:1-13 /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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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8-07 21:29 조회300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cQ1lEfcpzf4?si=seyAA9S4DIwwGyFg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알려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세워주면서, 온 성도가 서로 받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고 했다. 


1-2절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한다. 힘 있는 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한다. 오히려 반대로 말씀한다. 믿음이 강한 우리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다. "마땅히"가 강조되고 있다. 모든 성도에게는 그렇게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로마인 등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함께 있었다.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에 금한 음식들을 먹지 못하고 있었고, 이방인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은 담대하게 먹었다. 이 둘 사이에 비방하고 공격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강하고 믿음이 강한 자들이 믿음이 약한 자를 공격하지 말고 그 약점을 담당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신 것들이 있다. 그것을 가지면 자랑하거나 남을 판단하거나 공격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섬기라는 것이다. 도우며 살라는 것이다. 담당하라는 것은 약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하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말씀을 잘 배워서 깊이 깨달은 자도 있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자도 있다. 무슨 시험이 와도 다 이길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있고, 작은 시험에도 넘어질 것 같은 약한 성도도 있다. 그럴 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마땅히 담당해야 된다고 말씀한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가? 답이 3절에 설명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3)

원문에는 3절 앞부분에 "왜 그런고 하면"이라는 접속사가 들어있다. 주님은 강하신 분이시다. 죄가 없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볼 때 약하고 죄와 허물이 많은 자들이다. 주님이 우리의 약점을 정죄하고 공격했다면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심판 받아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주님은 눈 감아주시고 못 본채 하시고 오히려 도와주시고 세워주셨다. 우리의 부족함을 용납하시고 받아주셨다.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어주셨다. 그래서 우리를 새롭게 해주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 8:17)

주님이 우리의 약한 것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병도 짊어지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 그렇게 우리를 담당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고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롬 14:1)

연약한 자를 받아주라고 했다. 15장 1절은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서는 짐을 서로 지라고 했다. 강한 자가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면서 약한 자를 비판한다면 약한 자는 설 자리가 없고 넘어지고 말 것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시면서 더 나아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2절에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해야 한다. 내 중심, 내 생각만 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자기만 잘되면 이웃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전 10:33)

바울이 자기를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바울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정신으로 가정생활을 하면 가정이 평안하고 화목할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하니 얼마나 좋겠나? 이런 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면 직장이 얼마나 즐겁겠나?

2절 끝부분에 남을 기쁘게 하는 것에 조심할 부분을 말씀한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웃을 기쁘게 한다고 이웃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면 안된다. 술 먹자고 하면 같이 술 먹고 화투 치자고 하면 같이 화투 치고 놀러다니는데 다 따라다니면 죄를 짓게 된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넘어서 죄 짓는데 까지 하면 안된다. 선을 행하며 덕을 세우면서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범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선에서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 


3절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셨다. 우리의 주님이시고 신앙의 모델이 되시는 주님이 그렇게 사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희생하는 삶을 사셨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자신이 죽어주시고 우리를 높여주시려고 낮아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고난을 당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삶이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희생하고 고난 당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남들이 하지 않을 때 수고하고 봉사할 일이 있을 때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 주님이 그렇게 사셨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셨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서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복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주님을 본받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주님을 닮아서 주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성도에게는 이 마음이 있다. 주님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쓰셨다. 그렇게 살면서 욕먹고 고난 당하고 손해를 보셨다. 그러니까 우리가 손해 당하고 욕먹고 비난당하는 일이 있어도 주님이 그런 일을 겪으셨으니까 당연히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 


4절

"전에 기록된 바" 구약성경이다. 선지자를 통해 성경을 기록하셨는데 우리를 위해서 기록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고 소망을 갖게 하시려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기록하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록했다고 생각하면 복 없는 생각이다. 성경을 통해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믿음 지키면서 비방을 받고 고난 당할 때 성경을 통해 위로와 소망을 가져야 한다. 


5-6절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서로 뜻을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모습을 본받기를 원하신다. 온 성도가 어떻게 해야 뜻이 같아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 뜻과 의견이 있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면 사람 수대로 뜻과 의견이 나오므로 뜻이 같아질 수가 없다. 자기 생각은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한 마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주장과 의견과 말하는 것이 같아져야 한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뜻이 달라져서 분열하면, 딴 소리를 자꾸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없다. 분열하고 다투고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 그렇게 살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주님이 그렇게 사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려고 자신은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유익은 다 포기하셨다. 일생을 그렇게 사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길을 걸어가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교역자나 장로나 선교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주님을 따라가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 욕심과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옛사람이 죽어서 혈기와 분노가 사라져야 한다. 자기가 부인되면 예수님을 따라가기가 쉽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으면 주님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 다음 단계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 진다는 말은 자신이 죽어야 된다는 말이다. 자기의 모든 것이 다 죽어야 한다. 옛사람과 부패성과 죄성과 욕심과 고집이 다 죽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주님을 따르는 방법이다. 


7절

1-2절의 내용을 다시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품어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셨다. 우리를 구원받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셨다. 그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받아줘야 한다. 용납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셨는데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나? 허물 많고, 죄 많고, 고집 세고, 악독하고, 추한 죄인들이었다. 이런 우리를 주님이 다 받아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을 하시고 우리를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8절

예를 들어 말한다. "할례의 추종자" 할례는 유대인들이 받았다. 할례의 추종자라는 것은 주님이 유대인들을 섬기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애쓰셨다. 

주님은 이방인들도 구원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자로 만드셨다.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차별 없이 다 받아주셨다. 그래서 믿는 자는 다 용납하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도록 만드셨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열방의 모든 민족을 다 받아주셨다. 주님은 지구 상의 모든 인류 전체를 다 받아주셨다. 차별 없이, 국가나,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민족이나, 학력 등 모든 것을 초월하셔서 받아주셨다. 이렇게 넓게 크게 받아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이렇게 받아주려면 굉장히 마음이 넓어야 한다. 유대인만 받아주는 것도 쉽지 않다. 열방 전체를,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을 다 받아주셨다. 주님이 그렇게 넓은 마음으로 관용하시고 이해하시고 용납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12절

이새의 뿌리에서 다윗이 나고,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나셨다. 열방을 다스릴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열방이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게 될 것이다. 주님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없다. 


13절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소망을 갖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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