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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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수요저녁예배 설교(약 3:1-12 /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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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10-30 21:17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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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y6puDD-sdnM?si=vXMary4X8jJprWmf


야고보서 3장 1-12절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라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에 대한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말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는 것에서 생겨난다. 말 때문에 상처 받고 시험에 들고 다투고 싸우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고 이혼하기도 하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 말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1절

"선생" 성경을 가르치고,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이다. 세상에서 가장 일이다. 이런 선생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선생을 만나면 제자들에게는 큰 복이다. 그런데 선생의 직책이 귀한 만큼 책임과 사명도 막중하다. 그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면 칭찬과 상급이 있겠지만 말씀을 잘못 가르치거나 책임과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크다.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는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했을 때 책임이 크다. 사람이 한번 잘못 배우면 잘못 배운대로 살아간다. 배운 사람은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간다. 잘못된 것이 기준이 되고 사상이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별을 한다. 잘못 배운 것이 기준이 되면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한다. 그래서 큰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최후 심판 때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는 자가 마귀이다. 온갖 죄가 마귀에게서 나오고 온갖 악한 것이 마귀에게서 나오니까 마귀가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마귀와 함께 심판 받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

마귀가 심판 받아 지옥 불에 던져질 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함께 심판을 받는다. 거짓 선지자는 말씀을 잘못 가르쳐서 미혹하는 자이다. 선생이 말씀을 잘 가르치면 칭찬과 상이 크지만 말씀을 잘못 가르치면 책망과 심판이 크다. 

그래서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차라리 선생이 되지 않았다면 실수하지 않고 심판을 받지 않을텐데 선생의 책임과 사명을 잘못하면 큰 심판이 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선생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일꾼으로 세우시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옳다. 잘못하지 말고 바르게 하라는 것이지 선생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는 선생의 직분을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인데, 자꾸 남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고 나서서 자꾸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실수하고 죄를 많이 짓고 잘못한다. 선생이 아니라도 가르치려는 자가 있다. 듣고 배우려고 하지 않고 자꾸 가르치려고 하다가 실수를 많이 한다. 듣는 것이 중요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 우리가 하나를 연구해서 새롭게 깨달아진 것이 있어도 그것을 얼른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 전체의 원리에 맞는지, 옳은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야 한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다. 배우기를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다. 배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배우면 잘못된 것을 배워서 엉뚱한 길로 나가기 쉽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사 9:16)

앞에 가면서 인도하는 자가 잘못된 길로 자꾸 미혹을 한다. 그러면 인도받는 자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 그러면 다 같이 멸망을 당한다. 앞서 가는 자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하고 따라가는 자도 아무나 따라가지 말고 성경에 맞는지 잘 살펴야 한다.

좋은 교회, 아름다운 교회는 선생이 많은 교회가 아니고 종이 많은 교회이다. 다 종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순종하고 따라가면 아름다운 교회이다. 말이 많은 교회보다 행함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말은 많은데 행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 적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가 많으면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지배자가 많은 교회는 좋지 않다. 다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많아야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선생이 많이 되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든지 듣고 배우는 자리에서 겸손히 순종하는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실수를 많이 하고 적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수하지 않는 자는 없다. 실수 가운데 가장 많은 실수가 말로 하는 실수이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말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마음에 은혜가 있고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지혜롭고 덕스럽고 선한 말씀이 나올 것이다. 마음에 악한 것과 원망 불평이 쌓여 있으면 입을 통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몸 전체가 말에 의해서 주장을 받고 영향을 받는다. 


3절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말은 크고 용맹스럽다. 고삐를 매서 사람이 잘 이용하려면 훈련을 시키고 길을 들여야 한다. 입에 재갈을 물려서 강제적으로 말을 듣도록 만든다. 이와같이 사람의 입에도 재갈을 물려서 온 몸을 제어해야 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1:26)

자기 혀를 재갈 물려야 된다. 그것이 안되면 경건하게 살 수 없다. 경건하게 살려면 혀를 재갈 물리면 된다. 이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말을 훈련시키듯이 사람의 혀에도 재갈을 물려서 강제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4절

배가 상당히 크다. 10만톤이나 되는 배도 있다. 큰 배가 광풍에 몰려 갈 때 사람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다. 그런데 배에 달려 있는 작은 키를 잘 조정해서 배를 움직이면 전진할 수도 있고 후진할 수도 있고 좌우측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의 혀도 작은 것이지만 우리 몸 전체를 주장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역할을 한다. 


5절

사람의 혀가 얼마나 작은가? 세치 혀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작은 혀가 우리 몸 전체를 움직이고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혀를 다루는 것은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성냥불은 아주 작은 것이다. 반짝 했다가 꺼지는 작은 불이지만 나무에 옮겨 붙으면 큰 산불이 될 수도 있고 집을 다 태울 수도 있다. 감탄사를 썼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절

제어하지 않는 혀, 재갈 물리지 않는 입술은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다. 온 지체를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태운다고 했다. 과거에는 마차들을 운용했다. 잘 굴러가다가 바퀴가 불타면 마차 전체가 무너지고 타고 있던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하든지 죽을 수 있다. 그것처럼 우리 혀가 이렇게 우리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큰 것이다. 결코 사소하지 않고 작은 것이 아닌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제어하며 조심하며 잘 관리하며 길들이며 훈련시켜야 한다. 

혀를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을 망하게도 하고 저주에 빠지게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는 무서운 것이다. 


7-8절

세상에 맹수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에 가둬놓으면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길들여서 부리는 경우도 있다. 호랑이나 사자도 서커스에 동원하기도 한다. 맹독을 가진 코브라도 훈련을 시켜서 공연을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동물들을 훈련시켜서 해를 입지 않고 길들여서 재주를 부리게 한다. 개도 훈련시켜서 군견으로 경찰견으로 이용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길들일 수 있다. 가두어두면 사람에게 해를 못끼친다. 

그런데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 불이요 독과 같은 혀를 길들이지 못하니까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누구의 혀가 이럴까? 나의 혀가 이렇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내 혀가 이렇다고 생각해야 한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3~14)

우리의 입과 목구멍이 이렇다. 내 입에서 온갖 추한 것이 쏟아져 나온다. 


9-10절

우리가 혀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를 저주하기도 한다. 한 입으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하는데, 이것이 마땅하지 않다. 어떻게 한 입에서 선과 악이 나오고 찬송과 저주가 나올 수 있느냐?고 말씀하고 있다. 실제로 감사했다가 원망했다가 찬송했다가 저주했다가 칭찬했다가 욕했다가 사랑했다가 미워하고 있다. 


11-12절

단 물과 쓴 물을 동시에 내는 샘은 없다. 사람의 입만 두가지를 동시에 낸다. 무화과 나무에서 무화과와 감람열매를 동시에 맺는 경우는 없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의 입에서는 찬송과 저주, 감사와 원망이 동시에 나온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 제목이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라"는 것인데, 성경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해야 한다(전 5:3). 어떻게든지 말의 실수를 줄여야 하는데 말을 적게 하면 실수가 줄어들게 된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해야 한다. 선생 되려고 하지 말고 잘 들으려고 해야 한다.

둘째는 입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다윗이 노력을 많이 하다가 기도했다. 자기 입을 지키고 싶은데, 말로 실수하고 싶지 않은데 안되는 것이다. 입술의 문을 지켜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셋째는 자랑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14절). 시기,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을 하다보면 죄를 짓게 된다. 될 수 있으면 남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이 있어도 은혜와 덕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 은혜 끼치는 말을 힘써 해야 한다. 내 말이 덕이 되겠는가? 선한 말인가? 은혜를 끼칠 수 있겠는가? 를 생각하고 말하면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6~37)

내가 한 말로 의롭다 칭찬을 받을 수 있고 내가 한 말 때문에 정죄를 받을 수도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판의 대상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에 실수를 하면서 말로 죄 짓는 경우가 많은데 점점 말의 실수를 줄여서 온전한데로 자라나야 하겠다. 우리가 모두 온전한 인격을 갖춰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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