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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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12장 11-21절/교회에 대한 요구와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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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5-31 20:57 조회6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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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youtu.be/0kClfW2i0k0


1.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부족한 것이 없음(11-13)

2. 교회에 대한 요구(14-18)

3. 고린도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할까 두려워함(19-21) 


11절

바울이 지금까지 자기 자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었지만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억지로 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선생들을 용납하면서 참 사도 바울을 배척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의 신앙을 위해 자랑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바울 자신이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본심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부족하고 내세울 것 없는 자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계시를 받은 면과 깨달은 말씀을 증거하면서 열심으로 일하는 면에서는 다른 사도들에 비추어서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고 자기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12절

사도바울에게 사도의 표가 있다고 말한다. 사도의 표는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면서 그를 통해 증거한 여러가지 표적과 기사와 능력들이 많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모든 참음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의 표를 언급하면서 첫째로 꼽은 것은 모든 참음이다. 한두가지 참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에든지, 모든 일에서 참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참음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기적과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은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만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행한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참음은 바울 스스로 감당해야 되는 힘든 일이다. 이것이 참 사도의 표이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복음을 전하든지, 봉사를 하든지, 섬기는 일을 하든지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 박해와 시험과 어려움이 있다. 그때 참고 계속 힘쓰는 것이 참 일꾼의 표이다. 어려움과 고난과 반대가 있어도 참고 참으면서 계속 힘쓰는 것이 참된 사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 아닌 자들은 힘들면 하다가 그만둬버린다. 참된 일꾼이 아니라는 표시이다. 참된 일꾼은 자기 유익보다 하나님과 교회를 먼저 생각한다. 고난 가운데서 참고 견디는 일에 힘을 쓴다. 바울의 자랑의 내용은 무시무시한 고난을 당하고 그것을 참고 견디면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물론 표적, 기사, 능력도 참 사도에게 따르는 표이지만 사도 시대에 이런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성경이 완결된 이후에는 이런 표적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는 가짜 예수이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닌 거짓된 자들이다. 이들이 일어나서 큰 기적을 일으킨다고 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살후 2:9~10)

사탄의 역사로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이런 능력이 많이 나타날 것을 강조해서 말씀한다.

따라서 참 사도의 표징은 오래 참는 것이다. 모든 참음! 이것이 참 사도의 표시라고 바울이 강조하고 있다. 


13절

바울이 다른 교회에서는 사례비와 선교비를 받았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다. 이것 외에는 다른 교회와 똑같이 했다고 했다. 똑같이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충성했다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고린도 교회에서 선교비를 받지 않은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교회 입장에서 바울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만한 일이 아니다. 


14절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13절에서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했는데, 바울은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결심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었다. 참 사도인 바울의 관심은 재물에 있지 않고 오직 교인들에게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도들을 말씀 잘 가르쳐서 믿음에 바로 서게 만들까? 였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의 관심은 재물에 있었다.

이단들의 관심은 재물이다. 악착같이 착취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풍성함,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믿음을 바로 세울까?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할 수 있을까? 에 관심이 있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재물을 준비하지 아이가 부모를 위해서 재물을 준비하는 경우는 없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 염려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지 교인들은 그런 걱정 하지 말라고 한다. 


15절

"너희 영혼을 위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혼, 믿음을 위해서 바울은 재물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투자하고 바쳐서 쓰겠다고 했다. 실제로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서 교회를 도왔다. 자기의 있는 재물 다 쓰고 자기 자신까지도 다 내어주겠다고 했다. 바울은 이런 정신과 자세를 가졌다.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가 손해보고 자기 자신까지도 내어 주면서 어떻게든지 성도를 잘되게 하고 바로 세우고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이것이 참 사도, 참된 일꾼들의 모습이다.

사랑의 참된 특징은 주는 것이다. 진짜 사랑하면 주게 되어 있다. 물질, 선물도 주고 시간도 내고 자기도 주고 다 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허비하신다. 독생자를 내어주셨다. 하나 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우리를 위해 구원과 영생과 하늘나라와 말씀을 주셨다. 이것이 사랑이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를 위해 허비하고 희생하고 사랑했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바울을 알아보고 참 사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서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말에 미혹되어 있었다 


16-17절

비방하는 자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하느라고 사례를 받지 않고 고린도 교회를 위해 힘썼는데 그것까지 싸잡아서 비난했다. 바울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서 속임수를 써서 환심을 산 다음에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미혹했다. 이렇게 이상한 말로 바울을 비방하면서 대적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은 어떤 방법으로 이득을 취한 것이 있냐고 증거를 대보라고 했다. 


18절

바울이 디도를 먼저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바울과 디도는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동일한 보조로 일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동일한 성령, 동일한 보조이다. 교역자들이 동일한 보조를 취해야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혼란을 막고 진리를 굳게 세우고 대적들의 공격을 효과있게 막을 수 있다. 마귀의 해방을 물리치고 선한 싸움에 승리할 수 있다.

만약에 바울은 선교비도 안받고 사례도 안받았는데 나중에 디도가 와서 많이 받으면 비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비난하겠는가? 바울은 교활하고 사기를 치고 수단을 쓰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딴 짓 한다고 비방한다. 그러면 당할 수 밖에 없다. 무슨 말로 설득하고 물리치고 이길 수 있겠나? 그래서 동일한 보조를 맞춰야 한다. 일관성 있게 해나가야 한다. 목표와 방침을 정하면 모두가 협력하고 맞춰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따로 움직이면 동일한 보조를 취할 수 없다. 대열이 흐트러지고 전체가 이상해진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눅 11:23)

영적 전쟁 상황에 주님 편에 서야 한다. 나는 중간이다라고 하면 안된다. 저쪽 편에 서도 안된다. 주님과 함께 하고 힘을 모으고 의견을 모으고 협력하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믿음을 지키고 복음 사역이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그래서 동일한 보조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이 보낸 디도가 아주 잘했다. 바울과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희생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디도가 바울과 다른 입장을 취하면 바울이 신임을 잃을 수 있게 된다. 


19절

바울이 지금까지 어떻게 일했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바울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고,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진리만 말하고 사실만 말하고 정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고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주의 일에 충성을 한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미혹이 되어서 바울을 배척하고 물리치는 일이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사도직을 변명하고, 어떻게 일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바울의 가르침을 교인들이 잘 받고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을 참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에 속아서 바울을 배척하면 바울이 전한 말씀과 사역을 다 부인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바울같은 사람이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고 욕을 먹었다. 참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충성하고 희생적인 사람,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이 오해를 받고 비난 받고 욕을 먹었다. 우리가 비난 받는 것은 비할 바가 아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 당하는 것을 억울해 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21절

바울이 4번 두려워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랑을 표현하고 어떤 사도였는가, 어떻게 일해왔는가를 정확하게 다 설명했다. 그리고나서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다.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면 바울이 이 다음에 왔을 때 칭찬하고 잘했다고 하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전할 것이다. 그런데 계속 죄를 짓고 있다면 바울이 와서 책망하고 꾸짖을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속상하고 교인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될까 두렵다고 했다. 

두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파와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였다. 오늘날도 교회는 이런 것이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교회가 은혜롭지 못하고 덕스럽지 못하다.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29~32)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둔 자들이 이런 죄를 짓는다. 

세번째 두려워한 것은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 말씀을 전했는데 아무도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낮추신 것이 된다. 자기가 무시당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고 교회가 그런 형편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네번째 두려워한 것은 전에 고린도 교회가 죄지은 것을 책망했었는데, 음행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짓는 모습을 보게될까 두렵다고 했다. 교회가 은혜 가운데 바로 서지 못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볼까 두렵다고 했다. 이것은 정말 두려워해야 될 일이다. 교회는 이런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예배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교제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다. 


[정리]

1. 사도의 표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참 사도의 표가 있었다.

2.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성도들이라고 했다. 교회에 폐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고 교회가 잘 되기를 원했다. 정말 원하는 것은 성도들이 믿음에 바로 서는 것이다.

3. 바울은 교활한 자가 아니고 디도와 모든 동역자와 함께 동일한 보조로 일했다. 함께 협력하고 같은 정신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며 일하는 일꾼들이었다. 동일한 보조를 맞추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아주 중요하다.

4.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했다. 바울은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일하는 충성되고 진실한 자이다.

5. 바울이 두려워한 것 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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