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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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6 주일오전예배 설교(에베소서 4장 1-6절/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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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7-16 17:55 조회5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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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krAcy9FIwhE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에 모여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본문은 교회 생활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1절). 죄악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부름받은 자들이 모인 단체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모였고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1절에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4절에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3:1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로마서 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내 뜻을 세우는 곳이 아니고 내 욕심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1.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첫째. 모든 겸손.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피조물이고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입니다. 2절에 그냥 겸손이 아니라 ‘모든 겸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모든 겸손’이란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시종일관 겸손의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믿음 생활 잘할 수 있고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겸손이 왜 중요합니까?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이란 영접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불신앙은 무엇입니까?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빠서 안 믿는 것 아니고, 말씀이 옳지 않아서 안 받아들이는 것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로마서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교회의 일은 전부가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도 섬겨야 합니다. 겸손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둘째. 온유. 자기 주관이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온유의 반대는 완고한 것입니다. 고집이 세고 강퍅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완고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셔서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도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툴 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양보하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했고, 민수기 12장에 보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할 때 모세는 한마디도 대항하지 않고 잘 참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보시면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 12:3). 주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고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도 상급을 받습니다. 

  

셋째. 오래 참음.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믿음 생활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규모없는 사람, 경우없는 사람, 덕스럽지 못한 사람, 마음이 약한 사람, 허물이 많은 사람도 만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참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15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5:7-11에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시면서 본이 된 3종류의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7절에는 농부의 참음입니다. 10절에는 선지자들의 참음입니다. 11절에는 욥의 인내와 참음입니다. 오래 참고 인내해야 믿음 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오래 참는 사람이라야 복을 받습니다. 참지 못해서 받은 은혜도 쏟아버리고, 참지 못해서 복을 잃어버리고, 참지 못해서 의를 이루지 못하고, 참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참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후회하게 됩니다. 참는 사람이 강합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이 약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음의 본을 보여주셨고 주의 재림 때까지 길이 참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넷째.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용납하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5:7에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허물과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용납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용납하는 일은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허물이 크게 보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교만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세속적인 사람, 죄짓는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부족한 모습을 보고 허물을 용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9:12-13에 보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용납하기 어려운 상대가 있어도 “주님께서 내 꼴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자” 하면서 참아야 합니다.


2.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절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역사하면 분열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이 충만할 때 나타난 증거들이 뭡니까?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마음을 같이하여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고”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고 물질적으로 네 것 내 것 나누지 않고 함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강력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나 되면 강해지지만 분열하면 약해집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깨뜨리지 말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첫째. 몸이 하나요. 여기서 몸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한 몸에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한 일이며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 몸에 서로 다른 지체가 있습니다. 입과 귀와 코와 손과 발이 다 다릅니다. 달라서 불편합니까?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몸이 붙어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합니다. 예수님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둘째. 성령도 한 분. 한 분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중생시켜 예수님이 믿게 하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한 분이신 성령께서 모든 믿는 성도들 마음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서로 충돌할 일이 없습니다.

셋째. 한 소망 안에서. 성도들은 소망도 하나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그 천국에 대한 소망, 하나님을 만날 소망, 부활의 소망, 상 받을 소망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받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넷째. 주도 한 분. 우리의 구주는 한 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며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인도만 따라가야 합니다. 주인이 한 분이시니까 모든 사람이 주인의 뜻대로 하면 서로 부딪칠 것이 없습니다.

다섯째. 믿음도 하나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습니다. 믿는 방법도 같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믿습니다.

여섯째. 세례도 하나요. 성도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일곱째.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여기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옵니다. 성령도 한 분, 주도 한 분, 하나님도 한 분,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계십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세 분이다.’ 해야 할 것 같은데 성경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입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때 공중에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십니다. 하늘에서는 성부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십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는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부가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냥 성경에 있는 대로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많은 성도가 모이지만 한 가족입니다. 성도 간에 우월감을 가지거나 차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아름답습니까? 숫자 많이 모인 교회입니까? 돈 많은 교회입니까?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하나된 교회입니다.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16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주님의 몸을 해롭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될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은혜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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