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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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2장 11-18절/그리스도의 고난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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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7-26 22:18 조회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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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youtu.be/pmDx-JeHOP4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2장 10절 끝에 보면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죄 없는 거룩한 분이신데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하나님이 독생자를 왜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는가?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을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첫째,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11-13절).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성도를 구원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고 타락하여 더러워졌는데 예수님이 구원하셔서 거룩하게 해주셨다.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이제부터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신자를 가리켜 성도, 거룩한 무리라고 부른다. 주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육신하시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뿐만 아니라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고 하셨는데, 거룩하게 하신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가 한 근원에서 났다는 것이다. 한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성자로서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이시고, 성도도 하나님에게서 났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버지가 같고, 우리를 낳아주신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시지 않는다. 예수님도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우리도 하나님에게서 났으니 형제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요 20:17)

예수님은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불러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고 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흉악한 죄인이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들이었다. 우리는 예수님과 급이 다른 존재이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죄 없는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고 타락했고 멸망할 자인데 우리를 구원하시고 형제라고 부르시고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셨다. 참으로 큰 은혜이다.

세상에 보면 사람들끼리도 조금만 차이가 나도 부끄러워 한다. 내가 조금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 내가 좀 배웠다고 많이 배우지 않은 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격이 떨어진다고 하고, 수준 차이가 난다고 하면서 멸시하고 천대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무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고 형제라고 부르시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우리를 대해주신다. 


12절

시편 22편 22절의 인용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형제가 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형제라고 선포하시고 함께 찬양할 것이라고 하셨다. 


13절

이사야 8장 17절의 인용이다.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계실 때 연약하셔서 하나님을 의지하셨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고 하셨는데, 그리스도와 성도가 같은 형제, 같은 동류라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성도는 하나님에게서 났고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같은 인성을 지닌 것을 밝히 말씀해주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거룩하게 만들어 주셨다. 


둘째, 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셔야 했는가?

죄와 죽음으로 부터 놓아주시기 위함이다(14-16절). 


14절

자녀들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우리 성도들은 혈과 육에 속했다.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같은 몸을 가지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다. 똑같은 혈육에 속해있다. 인간으로 출생하시고 성장하셨다. 우리와 똑같이 사람으로 사셨다. 식사하시고 잠도 주무시고 시험도 당하셨다. 

왜 이렇게 혈육을 입고 오셨는가?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이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을 대속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성을 가지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죄만 없으시다. 이것을 믿어야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중 하나만 부인해도 이단이고, 주님을 구세주와 중보자로 믿지 않는 것이다. 


15절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데, 버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 고통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두려움의 뿌리를 찾아가 보면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고통 받다가 결국은 죽는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노예로 산다. 죽인다고 하면 말씀 버리고 믿음을 버린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죽도록 만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 죽음은 죄 값이고, 죄에 대한 형벌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잠 자는 것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실 때 잠을 자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자는 것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잠이 되면 당연히 자야 되는 줄 알고,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죽음은 그렇지 않다. 

14절 끝에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잡고 사람들을 종으로 부린다고 했다. 죽인다고 하면 무서워서 꼼짝 없이 시키는대로 다 한다.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이 두려워서 종살이하고 끌려 다니고 한평생 죄만 짓는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마귀의 종살이 하는데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창세기 3장 15절에 예수님이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실제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죄로 인해서 사망이 왔다. 죄로 인해 정죄 받아서 고통과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모든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 죄값을 다 치뤄주셨다. 이같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성도들은 다시는 죄의 종살이, 마귀의 종노릇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믿는 순간 이미 얻었다. 그리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모든 죄를 사함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심판 받지 않는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죄값으로 형벌 받을 것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다. 성도의 죽음은 형벌과 심판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없어도 마귀의 미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죽일테면 죽여봐라' 라는 담대한 마음만 가지면 무엇을 가지고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

돈으로 시험을 받을 때 주신 분도,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자는 돈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시험이 죽음인데, 생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는 담대한 마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자를 넘어뜨릴 수 없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이 믿음을 가졌다. 왕은 죽이고 살리는 일을 자기가 한다고 했지만 다니엘의 세친구는 죽이고 살리는 일은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했다.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키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실제로 건져주시고 왕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신앙생활 하면서 실제로 마귀와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많은데, 죽음이 무서워서 이다. 이런 자들을 다 놓아주시려고, 자유함을 누리게 하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종노릇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갖지 말고 믿음으로 떨쳐 버리라고 하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우리에게는 이런 자유를 주셨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포로가 아니다. 마귀가 위협한다고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16절

아브라함의 자손은 성도를 가리킨다. 천사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다. 성도들을 구원하시려고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셋째,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다(17-18절). 


17절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신다는 말씀과 연결된다. 성도를 붙들어 주려고 예수님이 형제와 같이 되셨다. 주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속량해주셨다. 제사장은 제사 드리는 일을 한다.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셨는데,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다.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셔서 우리를 완전하게 거룩하게 해주셨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2)

예수님께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고,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8)

그래서 다시는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다 사셔서 제사는 필요없게 되었다. 십자가 이후에 제사는 폐기되었다. 

"속량"은 값을 주고 사는 것이다. 주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이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 


1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시는 동안에 많은 시험을 받으셨다. 이렇게 시험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으신 것이다. 주님은 가난하게 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버림 당하시고 욕 먹으시고 침뱉음 당하시고 뺨 맞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 당하는 자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신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고난 받으신 것은 이렇게 시험 받으시는 자들을 도우시기 위해서이다.

세상 살면서 고난과 힘든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겠다.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말씀의 요점은 죄없는 주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시고 고난 당하셨나?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로 높여주시고 형제로 대해주신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 종노릇하는 자들을 구원해주셨다. 마귀와 죄와 죽음의 종살이하는데서 속량해주셨다.

대제사장이 되셔서 구속하시고 영원한 단번속죄를 완전히 드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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