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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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6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4장 1-13절/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윤성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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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8-16 21:48 조회4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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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E4kBtxmJuCE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지칠 때 쉼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쉼이 필요하듯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을 말씀하는데, 안식이 쉼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에덴동산에서 생활했는데 그때는 어땠을까? 매일 놀고만 살았을까?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는데 할일이 없었을까? 나름대로 뭔가 몸을 움직이고 피곤해서 밤에 잤을 것이다.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은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범죄 이전에는 모든 것이 행복했고 즐거웠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고통과 피곤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모든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고 짐이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참된 안식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1. 안식의 종류4-10절

4절 이하에 안식에 대해서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제칠일 안식일 4절

제 칠일에 안식일을 지켰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시간적으로 지켰다. 안식 속에는 회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안식을 누가 창조했는가?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2~3)

여기에서의 안식은 천지창조를 완성하셨다는 의미이다. 창조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다. 이 안식을 인간에게 안식세계를 교훈하는 것이다. 영원한 안식 사이에 있는 칠일 안식, 안식년, 희년 등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안식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안식하신 세계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거닐었고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한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안식의 개념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

둘째, 가나안 안식 5-8절

가나안 안식이 있는데, 이것은 5절부터 나온다. 여기는 장소를 가지고 안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나와서 40년을 지내는 동안에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 33:14)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가나안에 가서 쉬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안식이었다면 다윗이 다른 날을 말할 필요가 없다(7절). 이 날은 주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일이 영원한 안식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안식이 영원한 안식이다. 시간적 안식(안식일)이든 장소적 안식(가나안)이든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다.  

날을 따지니까 주일만 안식일이라고 못박을 수 있는데, 가나안 안식을 말하면서 다른 날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영원한 안식이다. 

셋째, 영원한 안식 9-10절 

앞서 죽은 자들은 안식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도 있다. 여호와 증인 들은 죽으면 땅속에서 잠잔다고 믿는다. 9절부터 말하는 것은 영원한 안식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인가? 히브리 성도들을 대상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다. 이방 사람들이 아니다. 히브리 사람들 중에도 개종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넷째, 영적 안식 

영적인 안식은 시간적, 장소적 안식을 지킬 때 심령에 안식을 누려야 된다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물론 궁극적으로 영원한 안식도 가리킨다.

오직 믿는 사람, 중생한 사람만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힘을 많이 써야 한다.

평상시에 내 마음 속이 어떠한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2. 안식에 들어갈 자와 못 들어갈 자의 조건 1-4절 

1) 먼저 남아 있는 안식이 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이 들어갈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권세가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안식에 들어가고 싶어도, 눈물로 호소해도, 무슨 수를 써서도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믿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남아 있는 안식이 있다. 6절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9절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안식세계, 천국이 있다. 이 땅에서의 시간적, 장소적 안식이 아니다. 

2) 또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1절, 2절, 3절에 "우리"가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일반적으로는 믿는 사람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2절, 3절, 5절, 8절에 언급되고 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실례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을 가리킨다. 왜 가나안 안식에 못 들어 갔는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안식의 약속에 참여하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 

3) 안식에 들어가거나 못 들어가거나 복음 전함을 받은 것까지는 동일하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3:18절부터 보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동일하게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 13:23)라고 했다.

듣는 것은 똑같지만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깨닫다"는 말은 영어로 "understand"인데 "이해하다", "깨닫다"라는 말로 번역된다. 깨닫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의미와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말씀이 갖는 깊은 의미와 가르침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만약에 간음하지 말라고 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간음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것까지 간음죄를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순종과 신앙생활이 달라진다.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통합시켜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변화를 받아 행동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켜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단순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을 때 구원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죄가 뭔지도 모르는 자는 예수님이 필요 없고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사도 바울은 자기 죄를 깨닫고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진정으로 깨달은 것을 다르다. 

4) 그러면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의 조건은 무엇인가?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믿음 2, 3절 

2절에 "믿음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것과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에서 보듯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든 영적인 안식에 들어가든 "믿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에 관한 약속을 믿고 영적인 안식을 누리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둘째, 순종 6, 11절 

6절과 11절에 "순종"이 언급되어 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진짜 믿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것은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인데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순종이 따라 오게 되어 있다. 믿음과 순종은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자기는 믿기만 하고 순종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셋째, 완고 7절, 3:13, 15 

7절에 "완고"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3장 13, 15절에도 완고가 언급되어 있다. 누구나 죄의 유혹을 받으면 교만해지고 완악해 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역하며 무시하며 나간다. 또한 이런 사람은 "항상 마음이 미혹"을 받아 방황하며 갈 길을 알지 못한다.  완고는 마음이 굳어지는 것으로 생명이 없는 사람과 같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1, 11-13절, 히 3:13 

첫째, 두려워하라(1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한다면 구원의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 된다. 또한 히 3:12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는 말씀도 마가지이다. 먼저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제를 해야 한다. 만약 중생한 사람, 구원받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라면 영적 안식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다른 관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이다. 당시의 환난이나 핍박이 두려워서 신앙생활을 중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거나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마치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믿지 않았기에 못 들어 간 것과 같다.

둘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11절) 

이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으로서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중생한 성도는 하나님의 안식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형식적으로만 교회 다니거나 단순히 세상 복이나 받으려는 것이 아닌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아라(12-13절)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서 반드시 이루어지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나 의도를 분별하고 평가하며 분별할 수 있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도 다 아시며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벌거벗은 것처럼 모든 것이 속속들이 다 드러난다. 

넷째, 피차 권면하라(히 3:13) 

모이면 세상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서로 믿음으로 살자고, 서로 말씀 붙들고 살자고 격려하며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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