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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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0 주일오전예배 설교(마태복음 12:38-45 / 내 마음의 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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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9-11 07:01 조회5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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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링크 : https://youtu.be/J7EhhLjjEWc?si=cMPJIcWnEsu7plRy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전에 있던 집, 그 사람에게로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어 있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빗대어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귀신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며 사람들 겁주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믿는 자의 영혼은 즉시 천국으로 들어가고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 지옥에 떨어집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로 지음을 받았는데 교만한 마음을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쫓겨나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 우두머리가 마귀, 사탄이고 마귀의 부하들이 귀신입니다.


첫째. 더러운 영. 43절에 “더러운 귀신이” 귀신은 더러운 영입니다. 요한계시록 18:2에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악한 귀신들이 모여 있는 이 세상을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하는 일이 더럽고 생각하는 것이 더럽습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들어가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보면 생각이 더럽고 말도 더럽습니다. 음란하고, 욕을 많이 하고, 하는 짓도 더럽습니다.


둘째. 물 없는 곳으로 다님. 43절에 보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서 물 없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물 없는 곳이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나 사막처럼 메마르고 삭막한 곳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는 물 없는 곳이란 성령의 역사가 없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입니다. 귀신은 그런 곳으로만 다닙니다. 욥기 1:7에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마귀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위치를 떠났습니다. 마귀(귀신)은 끝없이 방황합니다. 사람을 안정치 못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듭니다. 물 없는 곳으로만 다닙니다. 귀신 따라다니면 망합니다.


셋째. 쉴 곳을 얻지 못함. 43절에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귀신은 쉴 만한 곳을 얻지 못했습니다. 귀신은 진리의 세계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잠을 못 잡니다. 지치고 피곤하면서도 잠을 못 잡니다. 안식을 얻지 못하고 쉬지를 못합니다. 누가복음 8:27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집에 거하지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28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만나야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넷째. 악한 영. 45절에 보면 악한 귀신이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귀신은 악한 존재입니다. 악을 조장하고 악을 일삼습니다. 모든 악과 죄는 마귀에게서 나옵니다. 요한복음 8:44에 마귀는 욕심의 아비요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요 진리에 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귀신은 사람도 악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죄짓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고 살인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해치고 자기를 파괴합니다. 마귀가 하와를 찾아와서 잘되게 하려는 것처럼 말하고,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죄짓게 하고 망하게 했습니다.


다섯째. 결국 심판받아 멸망함. 요한계시록 20:10에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지옥은 원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만든 곳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망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이라도 미혹하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미혹을 이기지 못하면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2. 빈집의 위험성을 경고함

43절에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가 살던 더러운 귀신이 나왔습니다. 왜 나왔습니까? 44절에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집은 사람 마음을 가리키고,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회개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려고 하니까 그 속에 살고 있던 마귀가 더 이상 거기에 살 수가 없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갔던 귀신이 어떻게 다시 들어왔습니까? 그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잘됐다’하고는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에게로 들어갔습니다. 44절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귀신이 자기 집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빈집은 참 위험합니다.

세상 집도 주인이 없으면 쥐도 들어오고 들짐승도 들어오고 고양이도 들어옵니다. 주인 없는 빈 마음에 귀신이 들어와서 주인 노릇 합니다. 오늘날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채우고 하나님 은혜로 채워야 합니다. 골로새서 3:16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집이 비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믿는 일에 힘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도 적극적으로 믿는 일에 힘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믿을 것처럼 하다가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비어 있는 빈집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나갔던 귀신이 다시 들어온 것입니다. 다시 들어올 때는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함

아무리 좋은 집도 주인이 없으면 폐가입니다. 집이란 것은 얼마나 크고 좋은 재료로 잘 지은 집인가 하는 것보다 누가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누가 사는 집이냐에 따라서 그 집의 가치가 평가됩니다. 새가 사는 집은 새집입니다. 개가 사는 집은 개집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의 집입니다. 도적이 살면 도적의 집입니다. 왕이 사는 집은 왕궁입니다. 마귀가 살고 있는 집은 마귀의 집입니다. 성령이 살고 있는 집은 성전입니다. 마귀가 들어가서 지배하고 주인 노릇한다면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는 성전입니다. 좋은 주인을 모셔야 좋은 사람이 됩니다. 

사울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암몬 자손과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승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칭송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1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사울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큰 죄를 짓습니다.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드리고, 아멜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떠나고 악신이 사울에게 들어갑니다. 그 후 사울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았는지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같은 사울인데, 같은 사람인데, 성령이 주장할 때와 악신이 주장할 때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신약에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 사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대적하며 불량자로 핍박자로 훼방자로 살았습니다. 그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무슨 뜻입니까? 자기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바울인데,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 때와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주인 노릇 하실 때 그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내 속에 생명과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악한 주인을 모시고 살면 악한 사람이 되고 악을 행하게 됩니다. 가인이 왜 의로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살인했습니까? 요한일서 3:12에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하여 있었기 때문에 아벨을 죽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습니까?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었고 유다는 그 마귀의 말에 따라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먹은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왜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 판 돈을 숨겼습니까? 사도행전 5:3에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그런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귀가 사람 속에 들어오면 사람이 악해집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누구를 향해서 하셨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38절). 표적이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특수한 이적을 말합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고 마귀 종살이하는 사람들을 놓아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믿는 일에 적극성을 띠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하고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8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둔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3:17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이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거듭난 자들, 중생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 안에는 성령께서 임재해계십니다. 그 성령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4. 믿다가 타락하지 말아야 함

베드로후서 2:20-21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타락하면 믿기 전보다 더 악해지고 나빠진다고 말씀합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그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차라리 말씀을 배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타락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다가 타락하면 안 믿는 사람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타락은 무섭습니다(히 6:4-6).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승리의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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