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8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5장 11-21절/사랑과 화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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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nesgWWmFwdc
1. 바울의 권면(11-13)
2.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함(14-17)
3. 화목(18-21)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의 사역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일생을 바쳐 충성하고 미친 사람처럼 일에 몰두했다.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오직 주를 위한 삶을 살았다. 바울이 이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 두가지를 본문에서 밝힌다.
먼저 한가지는 11절에,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만일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주님 앞에 책망 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복음을 전하고 권면한다고 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16)
바울은 주님을 크게 두려워했다. 장차 심판대 앞에 설텐데 그때 책망받을까봐 두려워 하면서 힘있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했다.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바울이 참 사도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바울이 전한 말씀이 참 복음으로 인정되었다. 하나님이 바울을 인정하시고 알아주시는 충성된 일꾼이 되었다.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고린도 교인들도 이렇게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바울은 복음을 혼잡케 하지 않고 오직 진리만 전하는 참된 사도였다.
12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기를 알아달라는 차원의 의미가 아니다.
대적하는 자들에게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바울은 사전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13절
"하나님을 위한 것, 너희를 위한 것" 바울이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바울은 미쳤다고 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4)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행 26:25)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바울이 너무 열심히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보고 미쳤다고 대적했는데, 바울은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택한 백성을 구원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 올려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를 위하는 것"이라고 한 말은 고린도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첫째,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자가 아니었다. 열심히 충성하고 열심히 복음 전했는데, 그것이 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바울의 정신과 자세를 보면 그가 참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 해야 한다.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이 충성한 둘째 이유이다. 바울이 주님을 경외하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일을 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에 충성했다. 바울을 위해서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 대신 못박히시고 피흘려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여 그 사랑이 자신을 끌고 간다고 했다. 주님의 사랑이 바울의 마음과 발걸음과 삶을 끌고 간다. 자기가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강권하시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의 마음에서 역사하고 있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전도하고 헌신하고 생명 바쳐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서 하면 힘써도 힘들지 않는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서 칠년간 일할 때 수일처럼 여겼다고 헀다. 물질을 바쳐도 아까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아 사랑할 떄에는 목숨 바쳐 순교하는 일도 기쁨으로 할 수 있다.
주님을 경외하여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님의 사랑에 강권을 받아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충성할 수 없다. 둘 다 있으면 가장 좋다. 이 두가지가 다 바울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랑과 헌신과 섬김의 원동력이 되어서 바울이 충성스러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어주셨다. 이 말은 만인구원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모든 택한 백성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5)
주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인류 전체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면 안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위해서 흘린 피는 헛되고 만다. 주님의 피는 무익하지 않다. 만민을 다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택한 백성을 위해서 피흘리시고 죽어주셨다. 이것은 제한적 속죄라고 한다.
주님께서 택한 모든 백성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산다. 자기 욕심 채우려고 산다. 그러나 주님을 믿은 후부터는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려고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죽어주셨다.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나를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살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16절
예수님을 만나고 달라진 것이 또 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믿고나서부터, 은혜받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삶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게 되었다. 육신을 따라 대하는 것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할례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를 따지는 것이다. 돈이 많으냐 적으냐? 많이 배웠냐 못배웠냐? 권세가 있느냐 없으냐? 이것을 따져서 육신을 따라 사람을 대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전에는 그랬어도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 주님이 우리를 대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은혜로 대하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
바울이 전에는 예수님도 육신으로 알았다. 한 인간, 평범한 사람으로 알고 취급했다.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는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시면서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를 지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형상과 영생과 통치권을 상실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 주님을 믿는 자는 새생명을 얻고 새로운 은혜의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영이 살아서 주님과 연결이 된다.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변한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날의 모습에서 조금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거듭난 영혼, 구원받은 사람은 새 피조물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우리도 새 피조물이고, 다른 성도들도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옛날처럼 대하면 안된다. 옛날에 저 사람이 죄를 많이 짓고 거짓말을 많이 하고 악을 많이 행했어도 옛날 모습으로 대하지 않고 새사람을 대하듯이 대한다. 자신도 새사람이 되었고 다른 성도도 새사람이 되었다.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
18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다. 원수는 하나님이 멸하실 대상, 진노의 대상이다. 그런 자리에 있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죄사함받고 주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다. 바울에게도 주셨고 사도들에게도 주셨고 우리에게도 이 직분을 주셨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뭔가? 첫째,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다. 죄사함 받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다. 힘있게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다. 용서하며 사라아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기를 힘쓰는 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19절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실 때 원수되었던 죄는 독생자의 제물되심으로 대신 형벌받게 하시고 믿는 자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죄를 다 제거하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였느니라" 화목하게하는 방법, 재료가 말씀이다.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말씀 안에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20절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이 말씀을 한다는 것이다. 사도의 권위이다. 주님이 바울을 사도로 세우셨다. 바울의 말은 주님의 말씀과 같다. 주님의 대리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순종하며 화목을 이루어가야 한다.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면 안된다. 당파를 만들면 안된다. 그런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21절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 경험적으로 죄를 지으신 적이 없다. 그렇게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 예수님 자체가 죄를 짊어진 죄가 되게 만드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처형하고 심판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 그렇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사명 감당하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위해서 충성해야 하는데, 주님의 두려우심을 생각하며 충성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하심을 받아 충성해야 한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참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다.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야 한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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