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5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6장 1-10절/성도의 승리) 윤성천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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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구원 사역을 함(1)
2. 은혜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마라(2)
3. 고난 중에 속사람의 승리(3-10)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였다. 18개월간 사역했고 그 이후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사도바울의 권위, 사도권에 대해서 도전했다. 이 도전으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이 영향을 받아서 문제 제기와 의심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도바울의 권위가 무너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통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는데 그 일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격에 대한 문제제기로 의심이 일어났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도바울이 편지를 통해 권면을 하고 있다. 자기의 사도권과 인격적인 문제에 대해서 변명을 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어떤 정신으로 살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증거하므로 고린도교인들을 바르게 세우고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받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1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바울과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디모데와 디도 등 동역자들, 헌금을 보내주는 자들, 협력해주는 자들이 있었다. 이 동역자의 중심은 사도바울이다. 사도바울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사도바울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고 복음을 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확장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일하는 것이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은 모두 동역자이다. 목사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목사님을 받들고 장로님을 존경하고 권사님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우리라는 말을 썼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겠나?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이 동역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의 원리가 이렇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픈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내 욕심을 제어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동역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전도를 할 때 교회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한다. 예수님 때문에 죄사함받고 의롭게 되어서 천국 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길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권면을 하는 것에 신적 권위가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하는 자에게 신적 권위가 있다. 성도는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하고 성도를 통해서 주시는 말에도 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권사님과 집사님을 통해서 주시는 말은 아닌가?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의 권면 세가지
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선물이다. 다 거저 주신 것이다. 거저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가? 생명 문제이고, 영원한 문제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거저 나눠주셨다.
그리고 조건 없이 주셨다. 조건을 걸어놓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도토리 키재기이다. 하나님 보실 때에는 다 거기서 거기이다. 하나님 보실 때에는 다 죄인이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거저 주신 것, 조건 없이 주신 것을 깨달은 자는 겸손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온유해지고 겸손해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자가 잘난척하고 교만해진다.
내가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 낮아지고 섬기고 남을 높여주는 사람이 되야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는데, 헛되이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는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없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제대로 받은 자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가치관과 언어습관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믿음이 깊어질수록 많은 면이 달라져야 한다.
헛되이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된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으면 결과적으로 겸손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은 감정이 없다. 들어서 알긴 안다. 어린 아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배웠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만 정말 믿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진짜 신앙을 가진 자는 바뀐다. 하나님이 변화되도록 역사하신다.
헛되지 받지 않고 은혜를 잘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에 더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순종을 잘 배워야 한다. 나보다 어려도, 지위가 낮아도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겸손이고 순종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더 수고한다.
예수님을 알면 어떻게든지 수고하려고 한다. 시간 없는 분은 기도할 수 있고 다른 면으로도 봉사할 수 있다.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성도로 섬기는 일에 봉사하고 조금 더 믿는 일에 수고한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는 수고, 성경 읽는 수고, 전도하는 수고,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2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내일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밤에라도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어쩔 수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 갈지 모른다. 지금이라는 순간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때,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고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라!
세상 사람들에게 험담을 듣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흠이 없게끔 행동하라는 것이다. 현실은 기독교인들의 잘못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도들이 철저하게 믿음 생활을 잘 하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3절)
교역자 뿐 아니라, 사도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성도의 이름이 방해받지 않고 비판받지 않아야 한다. 남들에게 결점과 흠을 발견해서 비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장애물 교인이 되면 안된다.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하면 안된다. 항상 우리 마음 속에 나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내가 복음의 문을 막고 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일에 방해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겠는가? 복음을 전해야 할 자가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방해꾼이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한심한 사람이 되겠는가?
복음의 확신을 갖고 믿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해야 한다!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후 6:4~5)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고 견뎠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바울 뿐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동역하는 우리도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고 견뎌야 한다.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것으로 인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므로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은혜의 방편이다.
우리도 조금 힘들고 어려울 때 잘 참고 지나가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고후 6:6~7)
경건한 성품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6절에서는 내적 자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6하-7절은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힘든 환난 가운데서도 영적 믿음생활을 잘 해왔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라도 포기하고 좌절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주시는 축복의 선물로 생각해야 한다. 이기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8-10절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세상 사람들이 보는 인식은 다를 수 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평가절하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신경쓰지 않아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두고 살면 없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가난한 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욕을 먹고 멸시를 당해도 그래도 행복하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세상의 관점이 다르다. 믿는 사람이 믿음의 눈으로 봐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믿음으로 본 자들은 바르게 정탐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육신의 눈으로 본 자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았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전한 메세지로 우리는 권면을 받아야 한다. 삶의 역경에 직면할 때 사랑을 나타내며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
세상 가치관으로 보면 안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의 능력을 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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