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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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수요예배 설교(이사야 53장 1-9절/그리스도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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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3-29 21:17 조회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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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youtu.be/ONezAexOYNU


1. 그리스도께서 멸시를 받으심(1-3)

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담당하심(4-6)

3. 그리스도께서 잠잠하심(7-9) 


이사야 53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주님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고난 당할 메시야에 대해서 자세하게 예언해주셨다. 


1절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증거하지만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 주님의 속죄와 대속 사역이 복음의 핵심이다. 모든 시대 성도가 전해야할 생명의 복음이다. 그러나 믿지 않고 배척하는 자들이 많다. 주님이 직접 오셨을 때 믿고 따른 자들은 극소수였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은 소수의 사람들이다.

"누가 믿었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고 거부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의 팔" 능력의 팔로 주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셨다.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수없이 보여주셨다. 주님의 행한 이적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거역하고 물러갔다. 


2절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수수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을 것임을 말씀한다. 연한 순처럼 약해보인다. 봄이 되어 새싹이 나오는데 손톱으로 쳐도 꺽일 정도로 약하다. 마른 땅에 나온 뿌리에서 무슨 실한 것이 나오겠는가? 제대로 살아남을까? 염려될 정도로 걱정 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연햔 순에서 새싹이 자란다. 가지가 나오고, 나중에는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도다" 주님의 배경이나, 생활 환경이나 모든 여건이 평범하고 수수하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목수의 아들이시다. 가난한 시골 사람으로 자랐다. 배운 것도 많지 않다. 외모도 보잘 것 없었던 것 같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집안내력도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다. 보통 시골 사람, 평범하고 순순한 모습이다. 주님의 제자들도 갈릴리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들이다. 학자, 제사장, 율법가, 레위인도 없었다. 다 시골 출신 고기잡이 어부들이었다. 그래서 멸시와 무시를 많이 당했다.

주님은 보통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잡수시면서 평범하게 사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야 상과는 너무 달랐다. 메시야는 굉장하고 영광스러운 모습, 위엄 있는 모습, 두려운 형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너무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니까 오히려 배척을 당하고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속의 생명과 은혜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있었다. 그 주님이 메시야이시다. 

생명체는 수수하다. 모양을 내고 다듬고 깎아서 이상스럽게, 아름답게 만들면 그것은 생명이 없어진다. 모든 종자는 생긴 그대로 그 속에 생명이 있다. 콩은 콩대로, 감자는 감자대로 심어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워 떨었다고 했다.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5)

바울이 이렇게 하려고 떨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려고 했다.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꾸밈없이 전해지도록 바랬다. 생명의 역사는 꾸미면 안된다. 꾸미면 외식이고 거짓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속에는 생명이 없다. 겉으로는 멋있고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나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풍채도 없고 흠모할만한 것도 없고 평범하고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이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3절

주님이 사역하시면서 당하실 일들을 자세하게 말씀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희생하셨는데, 사람들은 주님을 멸시하고 배척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 주님이 붙들려 가시자 제자들조차 주님을 머리고 도망갔다.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배척 받고 멸시받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것인지 알고 있는가? 그런데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이렇게 대접했다. 멸시하고 버렸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세상에 계신 동안에 슬픈 일, 괴로운 일을 많이 당하셨다.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대신 당해주시면서 우리의 모든 아픔을 대신 짊어지셨다.

"질고를 아는 자라" 질병의 괴로움과 고통을 다 아셨다. 친히 이 모든 것을 짊어지시면서 당해주신 주님이시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사람이 얼굴을 바라보는데 얼굴을 돌리고 피해버리면 큰 상처가 된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 주님이 그런 취급을 받으셨다. 문둥병자를 피하듯이 피했다.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피해버렸다. 가는데 마다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성도들도 그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으셨다.

왜 이런 취급, 대접을 받으셨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당하셨다. 그분이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시다. 


4절

주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의 질병과 아픔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셨다. 마태가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 8:17)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53장의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했다. 주님은 이론으로만, 말로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시면서 당해주셨다. 그래서 체험적으로 아신다. 체득하시고 경험하시고 알게 되셨다.

주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징벌을 받으며 하나님께 고난 당한다고 말했다.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마저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은 자들이 많지 않다.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누구 때문인가 정확하게 찍어서 알려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시에, 창에, 못에 찔리셨다. 수많은 말에 상처받고 배척당하면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것이 나 때문이다.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주가 상처받고 버림받고 죽임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과 고통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야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린다. 우리를 대신 형벌받으시고 대신 죽어주셨다. 주님의 대속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린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주님이 대신 맞으셨다. 대신 상처 받으시고 고통 당하시고 우리가 당해야될 모든 것들을 다 당해주셨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한다.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형벌과 고난과 죽음과 심판을 대신 받으셨다. 나 대신 맞으시고 찔리시고 상하고 징계를 받으셨다. 세상 살면서 누가 나 대신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나 대신 욕 먹고 나 대신 맞고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아줄 사람이 있는가? 이 세상에는 없다. 아무리 친하고 가족이라도 못한다.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죄값을 다 치루시고 모든 희생을 당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6절

"우리는 다 양같아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그릇된 길로 갔다는 것이다. 고집 부리며 곁길로 갔다는 것이다.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어긋난 길로 갔다. 우리는 다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악한 길로 행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3)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서 다 치우져서 잘못된 길로 갔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다 치우쳤다. 우리도 그렇게 살았다. 모두가 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죄를 지으므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만약 우리의 죄를 다 기록해서 책에 써놨다면, 그 죄대로 형벌받고 저주를 받아야 되는데, 그 모든 죄를 죄 없는 예수님께 떠 넘겼다. 내 죄가 예수님께 다 넘어갔다. 나에게는 없어졌다. 이것이 대속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다 담당해주셨다. 죄사함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이고 은혜이다. 이것이 주님이 오셔서 이루어주신 구속의 사건이다. 


7절

주님은 모든 고난을 당할 때, 찔림과 상함과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실 때 크게 괴롭고 아프셨을텐데 입을 열지 않으셨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신음을 내지 않으셨다. 억울하다고 분노하지 않으셨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이러느냐고 원망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입을 열지 않으셨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마 27:12)

주님은 고난 당할 때 이렇게 하셨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같이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렇게 고난 받으셨다. 그렇게 침묵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렇게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다.

만약에 주님이 입을 열어 무죄함을 변명하고 억울하다고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의 구속을 이루지 못하신다. 우리를 살리는 놀라운 일을 하시지 못하게 된다. 주님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주님은 침묵으로 승리하셨다. 말하지 않으므로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나무에 달려서 대속을 이루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도망쳤다가 나중에 회개하고 다시 제자의 사명을 감당했는데, 주님이 고난당할 때의 모습을 설명했다.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2~23)

베드로가 본 주님은 고난 받으실 때 이렇게 하셨다고 자세하게 기록했다. 묵묵히 자신이 갈 길만 가시고 할 일만 하셨다. 


8절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곤욕과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 중에 이것을 깨닫고 믿는 자들이 없었다. 철저하게 외면을 받으셨고, 아무도 주님의 삶을 이해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철저하게 외면 당하시고 버림 받으셨다. 


9절

주님은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으셨다. 강포를 하지 않으셨다. 한번도 남에게 잘못된 일, 고통을 주는 일을 하신 적이 없으시다. 입에 거짓도 없었다. 남을 속이거나 해를 끼치는 말을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다. 죄인처럼 형벌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악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셨다.

주님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셨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셨다. 구속의 사역, 놀라운 일을 이루시면서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아는 자들이 많지 않다.

참으로 외롭고 힘들게 구속의 사역을 이루셨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거기에서 죽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그래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항상 감사하면서 평생 주를 섬기면서 주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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