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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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2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7장 1-16절/성도가 자라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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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4-12 22:01 조회5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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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https://youtu.be/742zLi-Ptfk


1.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1)

2. 일꾼을 영접하라(2-7)

3. 회개함(8-12)

4. 안심과 기쁨(13-16) 


1절

6장 끝부분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결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천국백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구별되게 살도록 부름받았고 거룩함을 이루어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거룩함을 이루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되는대로 막 산다. 심판을 걱정하지 않으니 자기 마음대로 산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죄에서 떠나고 말씀을 순종하고 잘못하면 회개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거룩함을 이루어가게 된다. 성도가 세상을 부러워하고 쫓아가다 보면 세상의 종이 된다. 세상이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잡아 먹어서 종을 삼는다. 세상의 종이 되어서 끌려가는 삶을 살지 말고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만 의미하지 않고 삶의 거룩함을 뜻한다. 성도는 영이 자나라 온전해지기를 힘써야 하고 뿐만 아니라 생활의 거룩함도 이루어가야 한다.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실제로 살아가는 우리 생활 가운데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르게, 세상 유행과 풍속과 다르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한다.

육의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 육의 더러운 것은 음행, 호색, 술취함, 방탕, 연락, 사치,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영의 더러운 것은 우상숭배하고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이다. 우리 육신도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하고 영적으로도 구별된 생활을 해서 깨끗한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것이다. 


2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했다. 즉 일꾼을 영접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오해하고 비난하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그 오해가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교인들을 속인 일이 없다. 착취한 것이 없다. 불의를 행한 것이 없다. 해롭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하며 믿는 일을 잘 하고 사명을 감당했다. 그런데도 오해가 있었다. 거짓 선생들이 바울을 비난하고 거짓된 소문을 퍼뜨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은 외면하고 멀리했다. 바울은 그것에 대해서 이유를 대라는 것이다. 누구를 속이거나 해롭게 하거나 빼앗거나 불법을 행한 것이 없다. 


3절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역사하고 일하신다. 바울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시고 말씀을 전하신다. 그런데 바울에 대해서 오해하고 바울을 밀어내면 손해보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다. 은혜 받지 못하고 믿음 생활을 바로 할 수 없다.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다고 했다.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다. 그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품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전에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특별히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관계이고 관계를 회복하게를 원하고 하나님 안에서 가족의 공동체를 세워나가고자 한다. 


4절

바울의 마음 속 깊은 곳이 고린도 교회가 있었다. 그들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5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디도를 보냈다. 고린도 교회 사정을 살피고 고린도 교회가 죄를 회개하고 바로 섰는지 아니면 계속 당파를 만들고 분쟁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지 모든 것을 권면하고 살피고 오도록 보낸 것이다.

디도를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니까 바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마게도냐로 갔다. 그곳에서 많은 환난을 겪었다. 육체적으로 큰 환난을 받았다. 사방에서 환난이 밀려왔다. 끊임없는 환난이다. 대적과 싸워야하고 안으로는 두려움도 많았다. 교회를 향한 염려과 걱정과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6절

"하나님이 위로하셨으니" 바울이 근심 가운데 염려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위로해주셨다. 그것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디도가 온 것 뿐 아니라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 고린도전서를 받고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고쳤다. 바울을 사모하고 존경한다는 소식을 디도가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디도가 온 것 자체도 기쁨이 되는데, 좋은 소식을 가져와서 큰 위로를 주었다. 고린도교회의 염려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가 믿음에 서고 회개해서 걱정할 것이 없다는 소식이다.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기다린다는 소식을 전하니 얼마나 바울에게 기쁨이 되었겠는가?

바울은 언제 기뻐하고 근심하는가? 교회가 잘 안 되고 어려울 때,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근심했다. 마음이 한없이 걱정되고 근심되고 무거워졌다. 편하지 않았다. 교회가 평안해질 때, 문제가 해결되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에 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할 때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교회가 어려우면 자기가 힘들다. 늘 근심하며 기도하며 회개한다. 교회를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 교회가 잘되면 늘 감사하고 찬송이 넘치고 기뻐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이다. 교회에 아무 상관하지 않고 남의 집 구경하듯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교회를 위해서 근심하고 늘 기도하고 애통해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결국 위로를 주셨다. 디도를 통해 위로를 주시고 좋은 소식을 듣게 하시고 어려움도 해결해주셨다.

우리도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8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 때문에 근심하고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다.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문제를 낯낯이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했다. 죄를 지은 자에게 회개하라고 했다. 그런데 교회를 사랑해서 편지를 써 보내놓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 한편에서 염려가 되었다. 부득이 책망해야 되서 책망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후회했다고 했다. 왜 이런 마음이 들까? 혹시 책망들은 사람이 시험에 들면 어떨까? 그 책망을 받은 사람이 상처받으면 어떻하나? 그러니까 범죄하고 잘못 나가기에 책망했는데, 책망을 잘못 받아들여서 어긋나면 어떻하나? 시험들어서 교회를 멀리하면 어떻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교역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런 염려와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다. 디도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시험들지 않고 회개할 사람이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가 평안해지고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기뻐한다고 했다. 근심한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회개한 것 때문에 기뻐한다고 했다.

처음에 바울이 책망했다. 고린도전서 편지로 책망하고 꾸짖었다. 그 말씀을 들은 고린도교인들이 근심했다. 그러다가 회개함에 이르렀다. 바른 길로 간 것이다. 책망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에 섰다. 그렇게 회개함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 되었다(10절). 

구원을 점점 이루어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결과적으로 기뻐한다. 좋은 열매를 거두고 성도들이 믿음에 서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이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이다. 


10절

근심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 근심,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세상 근심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근심이다. 이런 근심은 쓸데 없는 것이고 결국 우리를 마음에 둔해지게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4)

세상 근심은 버려야 한다. 마귀는 우리를 근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어서 믿는 일 못하게 한다.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 마음 못잡고 방황하게 만들고 누가 한마디 하면 그 말에 붙들려서 정신 못차린다. 말씀에 내 속에 있어야 한다. 말씀은 한마디도 없고 사람의 말만 가득 차서 그것 때문에 흔들리고 넘어지고 방황하고 살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세상 근심은 물리치고 버려야 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다. 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부딛혀 오는 말씀이 있다. 마음을 찌르는 역할을 한다. 자기 잘못한 것이 생각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잘 안되서 근심하고,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근심한다. 이 근심은 유익한 것이다. 근심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런 근심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근심은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야 한다. 그래야 말씀 순종도 잘하고 믿음도 자라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커진다. 말씀 지키려고 하는데 잘 안되면 근심해야 한다. 아주 포기하고 말씀 지키지 않고 살겠다고 하면 되겠는가? 

잘 안될 때 힘을 써야 한다. 근심하며 힘을 쓰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런 근심을 하게 되면 우리 마음에 생기는 것이 있다. 


11절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다 보면 간절한 마음, 변증하는 마음, 분한 마음,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사모하고 열심있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잘못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꾸짖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 생긴다. 바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순종하려고 하면 열심이 생긴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자신을 벌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간절했다가 분했다가 열심을 냈다가 사모하는 마음에 생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전혀 없으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으니라" 모두가 다 깨끗하게 되었다. 한사람도 거역하는 사람 없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 없고, 바로 살지 못한 사람 없고, 모두가 깨끗한 사람으로 서나가게 되었다. 


12절

바울이 고린도전서 5장에서 교회의 불의한 자를 왜 물리치지 않느냐고 책망했다.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교회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은혜가 넘치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한 두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 전체를 위해서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13절

고린도 교회가 바르게 서므로 바울이 큰 위로를 받고 안심하게 되었다. 디도가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니 더 기쁘게 되었다. 디도를 보내고 걱정을 했었다. 디도를 배척하고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바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디도가 힘을 얻고 왔다. 이 모든 것이 바울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14절

바울이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면서 디도에게 자랑을 했다. 문제를 말하지 않고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었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에게 협력하고 순종하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섰기 때문에 바울의 자랑이 헛되지 않으므로 기뻐한다고 했다. 


15절

디도가 올 때 고린도 교인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디도를 영접했다. 바울이 보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기에 잘 협력하고 순종했다. 디도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게 했다. 


16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믿었다. 책망하면서 걱정했지만, 혹시 비뚤어지면 어떻하나 염려했지만 잘 받고 바로 서므로 기뻐하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교인들이 믿음에 서서 하나님 말씀 잘 순종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교역자가 담대해진다. 자신감이 생기고 힘을 얻는다. 반대로 교인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다투고 갈등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교역자가 힘이 빠진다. 자신감이 없어진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서니까 바울이 자신감이 생기고 담대해졌다. 힘있게 말씀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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