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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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1장 1-16절/머리와 몸의 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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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0-19 21:14 조회6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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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QLzIJ1ZqURI


1절

바울은 놀라운 말을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로서 권위를 갖고 한 말인데 참 놀랍다. 이것은 무엇을 본받으라는 의미인가? 서너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우상제물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음식이 성도를 실족하게 한다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먹는 것을 우선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데 강조했다. 이런 면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제물과 관련해서 그냥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 말고, 거치는 삶을 살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라고 힘을 쓰라고 말씀했는데 그 점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울은 진리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는 면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는 주의 일을 하다가 여러 환난과 시험을 당했지만 끝까지 주의 일에 힘썼다. 

조금 더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있는데,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힘써 노력했다. 주님만 알고, 배우려고 세상 것은 배설물처럼 여기면서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오직 주님 한분만 바라보고 따라가려고 했다.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주님을 본받으라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사실 우리가 주님을 본받기 위해 힘써야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주님을 본받으려고 힘쓴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 바울이 교만해서 한 말이 아니다. 바울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모든 사도보다 부족한 자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겸손한 자였지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2절

앞에서 바울이 여러가지로 고린도교회를 교훈하고 훈계하고 책망했다. 여기서 한가지 칭찬을 한다. 무엇을 칭찬했냐면,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고린도교인들이 늘 바울을 기억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해준 전통을 지킨 것에 대해서 칭찬했다.

전통이 뭘까? 바울 개인의 의견이나 인간적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가르쳐준 것인데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어떤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고린도교인들이 잘 배워서 실천했다. 예배 모범이나 성례로 추측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가르쳐주고 권면할 때 잘 배우고 실천했다. 


3절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강조하는 말이다. 모르면 안되고 꼭 알아야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영적인 질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가장 위에 머리 되시는 분이 하나님, 그 밑에 그리스도, 그 밑에 남자, 그 밑에 여자이다. 머리는 주장자, 인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남녀 차별의 말이 아니다. 남녀가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권은 동등하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고전 11:11)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 11:12)

이 말씀은 남자나 여자나 동등하다는 것이다. 서로 상호 의존하고 도와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계급과 차별이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 다 하나이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해서 차별이 아니다. 차별이 아니고 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가 머리라고 해서 마음대로 다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질서적인 면이다. 


7-9절을 보면 창조 원리에 의해서 그렇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시간적으로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다. 그래서 영적인 질서 면에서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했다.

왜 이런 것을 교훈할까? 교회 안에 갈등과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질서를 세워야 평안하고 안정이 될 것 같아서 말한 것이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남자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남자가 그리스도를 잘 순종하면서 주의 뜻대로 가정을 잘 다스릴 때 여자가 남자를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한 질서이다. 남자가 성경대로 하지 않고 세상의 죄를 짓고 나아갈 때 여자가 그 남자를 따라가야 하겠나? 그것은 아니다. 남자가 먼저 앞장 서서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존중하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남편의 인도를 받아 주님 섬기는 면에 같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동등하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6)

주님은 하나님과 권세와 능력면에서 동등하시나 주님께서 자기를 비워 낮아지셔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섬기셨다. 이것이 영적인 질서에 해당된다. 

오늘날 사회에도 질서가 필요하고 가정에도 질서가 필요하고 교회에소 질서가 필요하다. 질서가 없으면 혼란스러워지고 모두가 실패한다. 


4절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말라고 했다. 만약에 머리에 무엇을 쓰고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하거나 말씀을 가르치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말씀한다. 


5절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으면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가 반대이다.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

공예배시에 기도하거나 예언을 하는 경우 머리에 무엇을 써야된다고 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머리가 길지 않을 때에는 쓰라고 강조하는 말씀이 뒤에 나온다.

아무튼 이 말씀의 요지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므로 권세 아래 있다는 표로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것이다.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머리를 완전히 민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여자가 머리를 빡빡 밀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6절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으면 깎을 것이고, 깎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리라고 했다.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해야될 이유를 밝히고 있다. 꼭 써야만 아름답고 덕이 되고 머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당시 지역에 있던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예배시에 이같이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당시 관습은 여자가 머리를 짧게 깎거나 미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바울은 이런 관습을 인정하면서 창조질서와 성경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같이 권면하는 것이다. 


7-8절

남자는 왜 머리에 아무것도 쓰면 안되는가? 창조질서를 갖고 설명한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은 남자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써야 되는 이유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수건을 쓰는 것은 순결과 정결의 상징이고 복종을 의미한다. 이렇게 머리에 씀으로써 남편을 존중하고 영화롭게 만드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다는 창조의 질서상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빼서 지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9절

창조할 때 목적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하와를 만들면서 아담을 돕는 베필로 만든다고 하셨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써서 자신의 순결과 복종을 드러내고 창조의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된다. 


10절

"천사들로 말미암아" 천사는 하나님을 돕는 일꾼이고, 종이다. 욥기 38:7에 창조 때 천사가 함께 일했다고 했다. 히 1:14 천사는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할 때 천사들이 보았다.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지으셨는지 천사들이 봤다. 그것을 천사들이 보고 알고 있는데, 그 천사 앞에서 여자들이 위치를 잘 지키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복종하며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공예배시에 천사가 성도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살피고 하나님께 보고드린다. 그러므로 천사 앞에서 권세 아래 있는 표를 잘 드러내야 한다. 


11-12절

창조질서에 따라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고, 예배 시에도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지만 질서 면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된다. 하와는 아담에 의해서 나왔고, 그 이후 모든 인류를 여자를 통해 남자들이 태어난다. 서로에게서 났다. 그러므로 인권에 있어서는 동등하고 서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남자가 머리라고 해서 여자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교회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질서를 갖추기 위해서 이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태어나서 마음대로 살다 가는 인생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서로 존중하고 의존하고 세워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이다. 


13절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고, 신앙양심상 바른 일인가? 고린도교인들에게 묻고 있다. 여자는 권세 아래 있는 표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14절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면, 여자처럼 하고 다니면 본성이 부끄럽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것을 다 깨뜨리고 무시하고 포기해 버렸다. 본성이란 도덕적인 본성, 양심적인 본성, 자연의 직감 등인데, 이런 것을 통해 알게 해놓으셨다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나실인이다. 나실인은 태어날때 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특별한 사람인데 날때부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게 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바쳐진 존재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게 하셨다. 


15절

여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으면 본성에게 부끄러움이 되지만 여자의 긴 머리는 영광이 된다.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들이 예배 시에 수건을 쓰지 않는다. 천주교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쓰는데 이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16절

이 앞에 있는 내용을 주욱 들으면서 논쟁하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논쟁하지 말라고 했다. 사도들에게도, 교회에도 논쟁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딤후 2:23)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딤후 2:14)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딛 3:9~10) 


성경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말씀을 주신다. 성도들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된다. 성경에 대해서는 논쟁하면 안된다.

영적 질서에 관한 것도 바울이 가르쳐주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잘 순종하는 것이 바른 일이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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