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주일오전예배 설교(마가복음 3장 13-19절/열두 제자를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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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0-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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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무리가 따름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7절 끝에 “큰 무리가 따르니” 8절에는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들을 가리켜 “무리”라고 불렀습니다. “큰 무리, 많은 무리”라는 말에서 그 수가 매우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유익 때문에 우- 몰려왔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손 털고 떠날 사람들입니다. 군중심리에 끌려서 몰려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직접 부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사명도 없고 책임감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다 제자는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몰려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에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예수님이 하신 큰일을 듣고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이 무리들은 호기심으로 혹은 구경하기 위해서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또 10절에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은 일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일군을 세워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열두 제자를 부르심
첫째. 원하는 자들을 부르심
13절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세상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고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께서 직접 찾아다니면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중요한 것은 주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원하는 자들의 자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한결같이 평범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열두 제자 주에는 학자나 선비나 문벌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또 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명성 있는 종교 지도자도 없으며,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고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룟유다 한 사람만 유대인이고 그 외의 열 한 사람은 모두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이 제자가 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12-13에 보면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날이 밝으매 열두 제자를 불러서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특수한 성직을 맡은 자들로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열두 명입니다. 숫자가 많지 않지만 헌신 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헌신 된 사람을 주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적은 수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힘없고 약한 자들도 얼마든지 귀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이유를 밝히면서 그것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종처럼 일이나 시키고, 부려 먹으려고 일군 삼은 것이 아니고 그냥 함께 있어달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과 사귀며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역사의 주인, 전지전능하셔서 부족한 것이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인 교제와 사귐의 대상자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은 죄인과 교제하고 싶어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9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주님과 교제하는 것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있자고 하신 말씀은 교제하자는 뜻입니다. 사랑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에게서 배우고, 주님을 본받고, 주님을 닮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함께 있으면 본받게 되고 닮아가게 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습니다. 닮으라고 훈련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닮습니다. 왜 그럴까요?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면 닮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닮게 됩니다. 같이 있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주님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과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과 대화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대화하고 교제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말씀에 무관심하고 날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과 교제가 어렵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과 함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배입니다. 성도가 모여 예배드릴 때 주님은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예배자로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같이 예배가 성도의 일차적인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셋째.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4절에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또 보내사” 즉 보내려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보냄을 받기 위한 존재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은 후 이들은 보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은혜받고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받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 다음 세상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직접 전도의 본을 보여주시고,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보내면서 전도 훈련을 시키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복음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마 28:19). 이것이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흥분되고 마음이 들뜨고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칩니다.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제자들에게만 사명이 있는 것 아니고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할 일이 있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게 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은 사명이 길고 짧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명이 다하면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사명이 남아 있으면 그 사명 마칠 때까지 더 살도록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명에서 이탈할 때 실패하는 것이며 죽는 것입니다. 디도서 1:3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도는 전도하라고 세우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사명입니다. 전도만이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고, 전도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넷째.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5절에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능도 주셨습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육체와 정신까지도 구하는 전인적인 구원 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나 병든 자나 귀신들린 사람을 볼 때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도, 남편을 여섯씩이나 두고 살던 사마리아 여자, 세리장이 삭개오도,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고쳐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비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훌륭한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말없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귀신 들게 만들고, 믿음 생활 잘하는 사람을 시험 들게 만들고,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서 있는 사람 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성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성도가 할 일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고, 시험에 든 사람을 도와주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내가 섬기고 돌봐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하시던 일이고 제자들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명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고, 나가서 전도도 하고,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한다면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 큰 무리가 따름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7절 끝에 “큰 무리가 따르니” 8절에는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들을 가리켜 “무리”라고 불렀습니다. “큰 무리, 많은 무리”라는 말에서 그 수가 매우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유익 때문에 우- 몰려왔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손 털고 떠날 사람들입니다. 군중심리에 끌려서 몰려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직접 부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사명도 없고 책임감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다 제자는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몰려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에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예수님이 하신 큰일을 듣고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이 무리들은 호기심으로 혹은 구경하기 위해서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또 10절에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은 일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일군을 세워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열두 제자를 부르심
첫째. 원하는 자들을 부르심
13절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세상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고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께서 직접 찾아다니면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중요한 것은 주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원하는 자들의 자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한결같이 평범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열두 제자 주에는 학자나 선비나 문벌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또 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명성 있는 종교 지도자도 없으며,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고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룟유다 한 사람만 유대인이고 그 외의 열 한 사람은 모두 천한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이 제자가 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12-13에 보면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날이 밝으매 열두 제자를 불러서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특수한 성직을 맡은 자들로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열두 명입니다. 숫자가 많지 않지만 헌신 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헌신 된 사람을 주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적은 수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힘없고 약한 자들도 얼마든지 귀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이유를 밝히면서 그것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종처럼 일이나 시키고, 부려 먹으려고 일군 삼은 것이 아니고 그냥 함께 있어달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과 사귀며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역사의 주인, 전지전능하셔서 부족한 것이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인 교제와 사귐의 대상자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은 죄인과 교제하고 싶어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9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주님과 교제하는 것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있자고 하신 말씀은 교제하자는 뜻입니다. 사랑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에게서 배우고, 주님을 본받고, 주님을 닮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함께 있으면 본받게 되고 닮아가게 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습니다. 닮으라고 훈련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닮습니다. 왜 그럴까요?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살다 보면 닮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닮게 됩니다. 같이 있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주님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과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 생활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과 대화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대화하고 교제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말씀에 무관심하고 날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님과 교제가 어렵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과 함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배입니다. 성도가 모여 예배드릴 때 주님은 그곳에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예배자로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같이 예배가 성도의 일차적인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셋째.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4절에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또 보내사” 즉 보내려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보냄을 받기 위한 존재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은 후 이들은 보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은혜받고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받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 다음 세상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직접 전도의 본을 보여주시고,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보내면서 전도 훈련을 시키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복음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마 28:19). 이것이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흥분되고 마음이 들뜨고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칩니다.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제자들에게만 사명이 있는 것 아니고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할 일이 있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게 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은 사명이 길고 짧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명이 다하면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사명이 남아 있으면 그 사명 마칠 때까지 더 살도록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명에서 이탈할 때 실패하는 것이며 죽는 것입니다. 디도서 1:3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도는 전도하라고 세우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사명입니다. 전도만이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고, 전도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넷째.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5절에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능도 주셨습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육체와 정신까지도 구하는 전인적인 구원 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나 병든 자나 귀신들린 사람을 볼 때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도, 남편을 여섯씩이나 두고 살던 사마리아 여자, 세리장이 삭개오도,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고쳐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비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훌륭한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말없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귀신 들게 만들고, 믿음 생활 잘하는 사람을 시험 들게 만들고,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서 있는 사람 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성도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성도가 할 일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고, 시험에 든 사람을 도와주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내가 섬기고 돌봐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하시던 일이고 제자들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명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고, 나가서 전도도 하고,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한다면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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