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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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주일오전예배 설교(아모스 5장 4-15절/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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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1-06 14:46 조회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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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6viS8_WhoW0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면서 외친 말이 있습니다. 1절 끝에 “이 말을 들으라” 3장 1절에도 “이 말씀을 들으라” 4장 1절에도 “이 말을 들으라” 이렇게 “들으라”로 시작되는 설교가 3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단하고 그들의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책을 제시한 말씀입니다. 5장에서 고침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살길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래서 5장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말씀을 전해주어도 듣지 않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엎드러지고 멸망 당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으니 누가 일으킬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3절은 1000명이 살던 마을에 100명만 남고, 100명이 살던 마을에 10명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패하고 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살아남은 자들도 제대로 살 수 없고 슬퍼하며 탄식할 뿐입니다. 12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하나님이 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은 극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교만하여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탈취하여 사치와 향락에 취하여 있었고, 사업가들은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여 ‘저울’과 ‘자’를 속여가면서 이익을 취했습니다. 관리들과 재판장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잘못하여 국가의 기강을 뒤흔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백성들은 방탕하고 탈선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까지 타락하여 우상숭배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재앙이 예고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기 직전에 아모스 선지자를 보내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를 앞에 들어야 할 심각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다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살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딱 하나 하나님을 찾는 것뿐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1. 여호와를 찾으라.
4절에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여호와를 찾으라’ 이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할 리가 없습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망합니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이스라엘이 살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밖에 없습니다.
“찾으라”는 말은 가만히 있다가 우연히 만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힘쓰고 노력해서 찾으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귀한 물건을 잃으면 얼마나 열심히 찾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잃어버리면 물불을 안 가리고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도 그런 간절함과 열심을 가지고 찾아야 합니다. 시편 42:1에 ‘갈급한 사슴’이란 말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비가 안 오면 시냇물들이 다 마릅니다. 그러면 사슴은 물을 찾아 이 산, 저 산 헤매면서 물을 찾습니다. 또 이 사슴은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달아나는 사슴인데 그때 물을 구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때 사슴은 절박하게 물을 찾아 헤맵니다.
물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함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헤매는 것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절박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성도에게는 영적인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표시입니다. 한의원에 가면 죽은 사슴을 박제로 만들어 벽에 걸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사슴이 목말라 하는 것 보셨습니까? 죽은 나무가 목말라하는 것 보셨습니까? 죽은 사람이 배고픔을 느낍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심(예레미야 2:13)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으면 살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죽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힘쓰고 노력한다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죄와 고통과 실패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것을 얻게 되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생사를 주관하심. 8절에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여기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라는 말은 하나님이 하늘의 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밤과 낮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되는 것, 사계절의 변화, 자연적 질서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더 나아가 밤과 같은 죽음, 실패, 고통, 불행을 다 물러가게 하시고 아침과 같이 밝고 기쁘고 행복하고 소망이 넘치게 만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고난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성공이 변하여 실패와 고통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찾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역대하 15:2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구원받을 길이 있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 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살길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 수 있었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우리도 살 길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됩니다.

2. 벧엘, 길갈,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
5절에 벧엘, 길갈,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옛날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고 큰 은혜를 받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후에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처음 진을 쳤던 곳이고 엘리야 때에 선지자의 제자들이 모여서 말씀을 배웠던 곳입니다. 그런데 후에 여기에도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 아모스 4:4에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곳이고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 주셨던 곳입니다. 그런데 후에는 우상숭배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런 곳은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찾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3. 살려면 선을 구하라
14절에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이스라엘이 살기 위해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이렇게 죄를 회개하며 찾아야 합니다. 모든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모든 불의를 버리고 의를 행하고, 거짓을 버리고 진리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7절에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정의는 공평하고 의로운 것인데 그것을 쓴 쑥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법을 사람을 죽이는 독초로 생각하고 싫어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법을 다 변질시키고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쓰게 여기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성경 읽기를 싫어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정의를 내어버린 사람들은 책망받게 됩니다. 9절에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갑자기 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지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자라도 망합니다.
10절에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대부분의 사람은 책망을 싫어합니다. 쓴소리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도자들이나 재판자들이 성문에서 판결하며 지시를 내렸습니다. 선지자들이 책망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책망해 줄 때 회개하고 바로 서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고 살길이 생깁니다.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정직히 말하는 사람,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니 아무도 바른 말을 못합니다. 오히려 거짓말하고 술수를 쓰는 자들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망할 길로 가는 것입니다.
11-12절에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하게 세금을 착취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발로 밟았습니다. 그렇게 착취한 돈으로 다듬은 돌을 사서 자기 집을 건축하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습니다. 또한 의인을 학대했습니다. 이처럼 의인이 고난받는 시대는 타락한 시대입니다. 의인을 칭찬하고, 의인을 상주고, 의인을 본받게 해야 하는데, 반대로 학대했습니다. 12절에는 “성문에서” 즉 재판하면서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만들었습니다. 13절에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세상에 악이 들어차고, 죄악의 세력이 너무 강할 때는 옳은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런 때는 지혜자가 잠잠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소망이 없게 됩니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신은 없어지고 아부꾼만 늘어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 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15절에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문은 재판하는 곳이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곳입니다. 그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24절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성도들에게서부터 시작해서 정의가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나도 살고, 남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지금은 말세의 고통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 사회에 정의가 사라졌습니다. 선을 구하고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내가 사는 것입니다. 이 같은 회복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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