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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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주일오전예배 설교(마태복음 5장 17-19절/그리스도의 율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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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0-09 16:05 조회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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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RoHSbMxE0w4

지난번에 우리는 율법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배웠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은혜를 강조하다 보니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지키지 않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상수훈에서 율법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율법이 무엇인지, 율법을 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그리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1. 율법
1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럼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5권의 말씀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기록한 이 5권의 책은 구약 전체의 핵심이고 하나님의 뜻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모세오경 이외에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구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16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구약을 요약하면 율법과 선지자인데 그 구약이 세례요한 때까지 마감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지만 실상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세례요한 이후부터 즉 예수님부터 신약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와 신약 시대를 나누는 기준이고, BC와 AD를 나누는 기준입니다. 그 예수님 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예수님 때부터 신약 시대가 시작되고 복음을 통한 구원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보여주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취하고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이 무엇이기에 예수님이 이 율법을 지키려고 이 세상에 오시고, 율법을 다 이루려고 목숨까지 버리셨을까요? 율법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거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과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습니다. 로마서 7:12에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14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율법의 주된 목적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셨습니다. 로마서 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3:24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우리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합니다.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성취하고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예수님은 어떻게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구약 즉 율법이나 선지자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잡아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흘려 대속하여 주실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의 제도, 제사 각종 절기, 의식과 의문에 대한 모든 것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둘째.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내용과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21-42절에 “살인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00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런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신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율법을 제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여 가르치는 말을 너희가 들었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해석을 잘못하고 의미를 변질시켰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시고 율법의 참뜻을 올바로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살인이 무엇인지, 진정한 간음이 무엇인지, 왜 이혼하면 안 되는지, 맹세를 금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복수하지 말아야 하는지, 원수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 율법의 근본정신을 바로 가르치시고 깨우쳐주셨습니다.
셋째. 자신의 삶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모든 계명을 다 지킨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완전한 의를 이루어서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주시고 우리의 죄를 완전히 대속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라는 표현은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까지도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축자영감, 즉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영감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경을 다 이루셨습니다.

2. 율법주의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나쁩니다. 신비는 좋은 것입니다. 성경에 신비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이적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주의는 나쁩니다. 율법주의가 뭐냐면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예를 들면 하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려고 최고로 노력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전체를 항목별로 연구하고 조사해서 정리했더니 모두 613가지라고 합니다. 그중 하라고 한 적극적인 명령은 248가지, 하지 말라고 한 소극적인 명령은 365가지라고 합니다. 이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10-11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못 지켜도 율법을 어긴 것이 되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0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 보면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모든 율법을 항상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 5:20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의라는 것은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의라는 것은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습니다. 착하고 선하게 산다는 것은 사람들 보기에 조금 선해 보이는 것이지,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 원죄는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그것으로 원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미 지어버린 죄는 없애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없이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3. 무 율법주의
많은 사람이 이 입장을 따릅니다. 나름대로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주장을 합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율법을 무시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선행과 노력으로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어느 날 성경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놀라운 사실에 눈을 뜹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내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나에게 율법이란 아무 필요가 없다. 나는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인용하는 구절이 에베소서 2:15에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고 18절에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폐했다는 에베소서 2:15과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고 완전케 했다는 마태복음 5:17은 어느 것이 맞습니까? 둘 다 맞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율법을 완전케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를 들면 콩 껍데기를 까서 내버리면 속에 있는 콩 알갱이가 나옵니다. 껍데기를 까서 버렸으니까 폐한 것이고, 콩 알갱이가 나왔으니까 완전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의 의식적인 부분, 즉 의문, 의식, 제도, 절기 등을 폐했으나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는 드러내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즉 율법에는 소나 양을 잡아서 그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직접 십자가에 달려 피흘림으로 우리 죄를 완전히 대속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구약시대 금했던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 초하루, 토요일 안식일도 지키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행하던 할례도 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4. 하나님 나라의 복음
누가복음 16:16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예수님 때부터 복음이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도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로마서 3:31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로마서 6:15에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됩니다. 혹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은혜 아래 있다고 죄를 지어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순종하고 믿음을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따라서 무섭고 두려움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고 성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버리면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19절에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와 같이 가르치면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되고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요 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23에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 영이 살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에 상급이 달려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죄이고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일입니다. 징계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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