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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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9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2장 12-31절/교회를 몸과 지체에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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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1-09 21:01 조회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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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TwyoYGw_FV8


1. 모든 교회는 한 몸임(12-19)

2. 모든 지체는 상부상조함(20-27)

3. 자기 본분을 지켜야 함(28-31) 


본문에 아주 귀한 내용이 많은데 언뜻 읽으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각 부분 마다 강조점이 있는데 그 부분을 짚어 내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12절

우리 몸은 많은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많은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룬다. 어느 하나 필요 없는 것이 없고 무가치한 것이 없다. 이렇게 우리 몸과 지체를 예를 들어 주님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한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 된다. 주님과 교회는 하나이다. 생명적 연합 관계에 있다. 뗄래야 뗄 수 없고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 관계이다. 

더 나아가 이 말씀 속에는 지체와 지체의 관계, 즉 성도와 성도의 관계도 생명적 연합 관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7)

성도 전체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 각 사람은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다. 나 한 사람이 교회의 참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몸의 여러 지체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 하나만 없어도 비정상이 되고 몸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 중에는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몸의 지체 중에 쓸데 없는 것은 없다.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 역시 참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룬다. 그것처럼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나도 소중하지만 다른 성도도 굉장히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지체는 귀하지 않고 쓸모 없다고 하면 본문의 내용을 모르는 것이다. 


13절

그리스도 안에서 혈통적 구분이나, 신분적 구분을 다 초월해서 모든 성도가 한 몸이라고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가 여러 사람이지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 몸이 된 것이다. 성령의 내적인 변화의 역사를 말씀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믿어지게 하시고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 물 세례도 받는다. 한 성령 때문에 한 몸이 되었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심령에 새생명을 주셨다. 이 새생명의 역사를 요한복음에서는 생수라고 말씀한다.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거듭났고 죄씻음 받고 세례받고 한 몸이 되었다. 성령으로 세례 받지 않은 자는 신자가 아니다. 신자는 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생명을주셔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다. 신령한 영적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성도들끼리도 연결되어 있는 지체의 한 부분이다. 


14-16절

지체의 다양성을 설명한다. 몸은 하나이지만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그것처럼 교회도 하나이다. 한 교회 안에 수많은 지체, 성도들이 연결되어서 한 몸을 이루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몸을 비유로 해서 교회를 설명하는 것이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고 그것이 모두 몸에 연결되어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말씀한다. 만약에 지체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살 수 없고 그런 몸은 장애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되어야 하고 영적으로 성령 안에서 교통과 교제를 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지체가 각 자리에서 각각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만일 발이 자기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 붙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귀가 자기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와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된다. 지체간의 다양성을 말씀하고 있다. 

한 몸에 수많은 지체가 있는 것처럼 한 교회 안에 많은 성도들이 지체로서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지체끼리는 서로 비교하거나 다툴 필요가 없다. 역할과 기능과 사명이 각각 다 다르다. 각자가 자기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하면 자기도 살지만 전체에 유익을 준다.

음식을 먹으면 위로 들어가고 위가 소화를 시킨 음식물들이 장으로 가고 온 몸에 영양분을 나눠준다. 위가 그 기능을 할 때 온 몸이 살고 위도 튼튼해진다. 만약 위가 자기는 음식을 소화시켜서 다른 데로 다 보내니 손해 보는 것 같으니까 일을 하지 않는다면 몸 전체가 약해지고 결국 위도 죽는다. 

자기 역할을 잘 하므로 온 몸을 살리고 온 몸이 살면 자신도 건강해지고 활성화 되고 잘된다. 몸에는 이렇게 다양한 지체가 있는데 사명과 역할과 쓰임새가 다르고 하는 일들이 다 다르다. 


17절

각 지체마다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한다. 몸에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어야지 눈만 많이 붙어 있으면 괴물이 된다. 온 몸이 귀만 들려있고 코는 없으면 얼마나 이상한가? 그런 몸은 비정상이다. 몸에는 많은 지체가 함께 있어서 다양한 모양으로 기능과 사명을 감당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것처럼 교회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다양한 역할과 사명과 기능을 하면서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18-19절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우리 몸에 많은 지체를 두신 분이 누구신가? 누가 눈과 입과 귀와 코와 손과 발을 만드셨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창조하시고 주권적으로 지으셨다. 코가 필요해서 코를 만드시고 눈과 입과 손과 발이 다 필요해서 만드셨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교회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성도들을 세운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이것을 믿으면 지체끼리 분쟁하거나 다투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역할을 감당하고 충실하면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잘 발휘하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교회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하므로 교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한다. 나와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눈이 귀에게 뭐라고 하면 안된다. 다른 역할과 기능을 할 지체들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서로 존중하며 도우면서 협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20-21절

지체의 다양성을 말하다가 여기서부터는 몸이 하나임을 다시 강조한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이다. 지체가 많다고 해서 몸이 여러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눈이 손더러 쓸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지체 간에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이것이 지체끼리 할 일이다. 눈이 아무리 귀하지만 눈만 있고 손이 없으면 안된다. 머리는 있고 발이 없으면 안된다. 우리는 한 몸이다. 여러 성도들이 우리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체들끼리는 서로 비교할 필요 없고 무시하거나 갈등할 필요가 없다. 


22-24절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 "덜 귀히 여기는 것들", "아름답지 못한 지체"가 있다.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는 예를 들어 내장 기관들은 참 약하다. 이런 것은 몸 깊이 넣어놓고 가슴 뼈로 감싸고 살과 덮어서 보이지도 않게 하셨다. 요긴한 것이기에 잘 보관하고 다치지 않게 하셨다. 

우리 몸 중에 덜 귀하게 여기는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의복을 잘 덮어서 가리게 된다. 사람 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얼굴인데, 얼굴은 드러내고 다닌다.

교회 안에도 약한 성도가 있다. 덜 귀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귀하게 여기는데 어떤 사람은 덜 귀하게 여긴다. 아름다운 지체가 있는 반면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두를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고전 12:24)

하나님께서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셨다. 사람들이 볼 때 약한 것, 덜 귀한 것,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지체가 있는데 그것은 내장 기관들이 아주 귀한 것이라서 갈비뼈로 감싸고 살로 덮어서 보호받게 하신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약하고 덜 귀하게 보이고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하나님은 귀중함을 더하셨다. 우리가 볼 때에는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더 귀하다. 그래서 고르게 하셨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 사는 것도 보면 고르게 하셨다. 어떤 사람는 참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돈 많다고 해서 다른 것도 다 많은 것이 아니다. 돈만 많고 가족간에 불화한 사람들이 많다. 돈은 많은데 행복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권세는 많아서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그런 면에서도 고르게 하신다. 우리가 다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나에게 돈을 적게 주셨으면 다른 것을 더 주신 것이 있다. 믿음과 은혜와 신령한 것을 더 주신 것이 있다. 가족간에 화목하게 하시고 고난 중에 기도를 많이 하게 하셔서 천국의 소망을 더 가지게 하셨다. 


25절

그러므로 절대 분쟁하면 안된다. 비교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서로 돌아보게 하시고 협력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만드셨다.

이 내용을 잘 깨닫고 교회생활하면 참 은혜로울 것이다. 성도 간에 관계를 믿음으로 바르게 할 수 있다. 


26-27절

우리 몸은 세밀한 모세혈관까지 온 몸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신경세포들이 몸 전체를 연결하고 있어서 한 군데만 아파도 온 몸이 아프다. 반대로 한 곳이 영광을 얻으면 온 몸 전체가 즐거워하게 된다. 모든 지체는 고락을 같이 한다. 따로 따로가 아니다. 손가락이 아파서 불편하면 온 몸이 고통스럽게 힘들다. 발로 축구를 잘해서 영광을 얻으면 온 몸이 상받고 영광을 얻는다. 

성도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의 각 부분이다. 그리스도 안에 붙어 있는 지체이고 하나이기에 그런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28절

여러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직분에 대해서 말씀한다.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불러 세워서 보내신 자들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해주는 자인데, 요즘은 교역자가 이 비슷한 사명을 감당한다. 교사는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는 자로서 반사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능력을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 서로 돕는 자, 다스리는 자, 각종 방언을 말하는 자 등 다양한 직분을 세워서 서로 섬기게 하시고 돕게 하시고 협력하게 하셨다.

각각의 일꾼들에게 서로 다른 사명과 재능을 주셨다. 그래서 다른 역할을 하지만 다른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간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주셨고 직분을 감당할 때 교회를 위해서 해야 한다. 


29-30절

성도가 다 선지자 되거나 다 교사 되거나 다 능력을 행하거나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졌거나 다 방언하거나 다 통역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다. 다 방언해야 되고, 다 통역해야 하고, 다 병 고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 이 말씀에 맞지 않다. 

그리고 이 직분과 은사 가운데는 사도 시대에만 주신 은사와 직분이 있다. 사도는 지금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사도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신사도 운동은 비성경적이다. 


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더욱 큰 은사"는 말씀의 은사이다. 말씀대로 자기가 만들어지고 교회를 세워나가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 말씀이 가장 중요하고 성도가 가장 사모해야 할 것이다. 말씀 사모가 첫째이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병을 고쳤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방언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말씀의 은사는 사모하지 않는다. 어떤 은사가 더 중요한지 몰라서 그렇다. 더욱 큰 은사는 말씀의 은사이다. 이 은사를 사모하고 말씀을 잘 깨닫고 순종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 상을 많이 받고 영광을 더 많이 누리게 된다.

"가장 좋은 길"은 사랑이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믿음 생활하는데 가장 좋은 길은 사랑으로 행하는 길이다. 사랑이 있으면 허물을 덮고 용서하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다. 

말씀과 사랑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면서 이뤄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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