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3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3장 1-13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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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1-23 21:06
조회6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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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가치(1-3)
2. 사랑의 성질(4-7)
3. 사랑의 영속성(8-13)
모두가 잘 아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1-3절
은사와 사랑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은사라도 존재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이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참 사랑을 의미한다.
아무리 방언을 말하고 천사같은 아름다운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없는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고린도 교회는 방언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방언이 문제가 되어서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여러가지 교훈을 한다. 사랑 없이 방언을 많이 한 것이다. 그래서 무질서하게 되고 시끄럽게 되었다. 요점은 방언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방언을 해도 사랑을 통해서 덕을 세우는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지식과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예언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랑을 많이 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예언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 특별한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씀이 좀 충격적이다. 이런 믿음이 조금 도움은 될 것이라고 해야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요즘 방언하면 큰 은사 받았다고 하고 예언하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러러 볼텐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한다. 이 모든 것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이 핵심이다.
내가 가진 전체를 바쳐서 남을 구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있는 것을 조금 떼서 구제하는 경우는 있어도 전재산을 다 구제하는 일에 쓰는 사람은 없다.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
방언, 예언, 산을 옮길만한 믿음, 구제, 선행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요점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은사를 행할 때 가치가 있고 덕이 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많은 일을 해도 가치 없는 일이 된다. 이런 것이 다 없다고 하더라도,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것 뿐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진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가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살려고 한다면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방언과 예언과 기적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은사 없는 것에 대해서 한탄하는데 사랑이 더 중요하다. 사랑으로 행하면 더 큰일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더 위대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행하기를 힘쓰고 사랑을 추구해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문제와 사건에 대해서도 잘 참는 것을 의미하지만, 특별히 사람에 대해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노하지 않고 참는 것이다. 사랑의 끝은 참음이다. 참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 참으시고 기다리신다고 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오래 참는다.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해도 자녀에 대해서 참아주고 기다려준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사랑을 가지면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을 수 있다. 참는 것이 믿음이고 사랑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참지 말라고 한다. 참는 것을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참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일을 많이 한다. 성경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고, 참는 자가 승리하는 자라고 말씀한다.
"사랑은 온유하며" 온유는 부드럽고 너그러운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지고 순종하는 상태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했다. 온유의 반대는 완고함, 포악함, 강포함, 사나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했다. 굉장한 칭찬이다. 우리도 온유한 마음을 갖고 주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이 나보다 우월한 것이 있으면 시기하고 미워한다. 사랑이 없으면 남의 성공을 시기한다. 끌어내리려고 한다. 이것은 유익하지 않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을 훼방하는 것이다. 남을 끌어 내린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해서 죽였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보다 높아지지 않았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괴롭혔다. 그러나 다윗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팔았다. 그러나 요셉은 높아지고 형제들은 비참해졌다. 시기한다고 내가 높아지지 않는다. 사랑은 절대로 시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녀가 잘될 때 부모가 시기할까? 성도가 잘될 때 예수님이 시기하실까? 기뻐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아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려고 힘쓴다. 성도에게는 감사와 회개만 나와야 한다. 원망, 불평, 자랑은 다 필요없다.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정말 사랑하면 많이 주고도 부족함을 느낀다. 사랑은 나를 앞세우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자랑을 하면 아름다운 일을 해놓고도 무가치하게 만들고, 자랑하면 칭찬받을 일을 해놓고도 무효시킨다. 남이 칭찬하게 두고 내가 나를 자랑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교만은 마음이 높아진 상태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 다른 사람보다 높이지려는 마음이 교만이다. 타락한 죄인은 저절로 마음이 높아지려고 한다. 수소를 넣은 풍선과 같이 놓으면 자꾸 올라가려고 한다. 우리는 마음을 자꾸 끌어내려서 낮추도록 힘을 쓰고 노력해야 현상 유지라도 하고 조금이라도 낮아진다. 기도하고 힘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두면 한없이 높아진다. 자기는 땅을 안딛고 사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간다. 금덩이가 아니다. 이렇게 지음 받은 존재가 타락하고 범죄했다. 교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 속에 자랑과 교만이 가득차 있다. 이것을 자꾸 낮춰야 한다. 그래야 겸손해져서 사랑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허물을 다 안다. 그러나 멸시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아시겠는가! 모르는 것 없이 속속들이 다 아신다. 그러나 멸시하지 않으시고 허물을 덮으시고 사랑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무례는 합당치 않고, 도리와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가리킨다.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 남들에게는 예의를 갖춘다. 그러다가 친해지면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다. 존대도 하지 않고 함부로 한다. 그런데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뒤에서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선이 있어야 한다. 너무 함부로 대하면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라. 사랑의 세계는 질서와 평강의 세계이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특징은 주는 것이다. 자기 욕심 차리고 이익 구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사랑을 떠난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희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자꾸 내 이익을 생각하고 욕심만 챙긴다면 사랑에서 멀어진 것이다. 사랑을 떠난 마음 상태이다.
"성내지 아니하며" 성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성나서 말을 하지 않고, 성내면서 밥을 안먹고, 성나서 잠을 안자고 교회도 안오고 기도도 안한다. 성나면 손해보는 것이 많다. 성내는 것이 감정 문제일까? 이성 문제일까? 감정만은 아니다. 이성도 개입된다. 남에게는 성을 내지 않고 집에서만 성낸다. 직장 생활할 때 상사에게는 성을 내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성내면 안될 사람에게는 성내지 않고 성내도 될 사람에게는 막 화를 낸다.
성내는 것은 사랑에서 멀어진 것이다. 성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 믿음생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성내면 은혜받은 것 다 쏟아버리고, 기도도 안되고,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상하니까 모세가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았다. 화가 나면 아무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은혜 받을 수 없다. 성내는 마음이 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랑의 세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두고두고 생각하면 사랑이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녀의 잘못을 두고두고 새기고 묵상하는 부모가 있나?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잘한 것은 기억했다가 갚아주고,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유익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버리셨다고 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사랑을 잘못 알면 마귀, 죄, 공산주의도 사랑해야 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마귀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죄와 악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참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불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참으로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 97:10)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 이것이 참 사랑의 특성이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
사랑의 특성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딘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6)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8절
고린도 교인들은 일시적인 것들(예언, 방언, 지식)을 자랑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예언도 폐할 때가 온다. 방언도 그칠 때가 온다. 지식도 폐해진다. 당시는 귀하지만 없어질 때가 온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없고 집이 없고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모든 것이 풍부해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사랑 없는 세상은 끔찍하다.
9-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폐해진다. 천국에서는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필요 없다. 하나님을 다 보고 알고 저절로 다 누리게 된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11절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처럼 산다. 말과 행동,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 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성하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린다.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 짓을 하지 말라고 하면 잔소리 밖에 안된다. 언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나? 장성하면 버린다. 장성한 자가 사탕 하나 때문에 싸우고 울고 잠 못자겠나? 장성한 자가 장난감 때문에 울고 싸우겠나? 그런 수준을 넘어서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장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 어린아이로 태어난다. 나이가 어린데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다. 연단을 많이 받아서 일찍 철든 사람이 있다. 생각이 어른스럽다.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다 거듭날 때 갓난아기처럼 태어난다. 신앙생활하면서 장성해야 한다. 점점 성장해서 어린아이를 벗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은사를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고 판단하는 어린아이 짓을 하니까 바울이 교훈하는 것이다. 장성하면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사랑으로 생각을 넓게 하고 크게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12절
"그때" 주님 재림하시는 때이다. 그때는 주님을 직접 보고 모든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된다. 지금은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해도 부분적일 뿐이다. 전부가 아니다. 자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보면 작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자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3절
믿음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살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고 사람 사이의 믿음도 중요하다.
소망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사람이 어렵고 힘들어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소망이 없으면 절망에 빠진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믿음을 만들어내고 소망을 든든하게 한다. 사랑이 최후까지 남는 가장 귀한 것이다.
최고의 가치, 최고로 중요한 것은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것 다 잃어버려도 사랑만은 붙들라는 것이다.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위대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랑의 가치(1-3)
2. 사랑의 성질(4-7)
3. 사랑의 영속성(8-13)
모두가 잘 아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1-3절
은사와 사랑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은사라도 존재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1-3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이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참 사랑을 의미한다.
아무리 방언을 말하고 천사같은 아름다운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없는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고린도 교회는 방언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방언이 문제가 되어서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여러가지 교훈을 한다. 사랑 없이 방언을 많이 한 것이다. 그래서 무질서하게 되고 시끄럽게 되었다. 요점은 방언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방언을 해도 사랑을 통해서 덕을 세우는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지식과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예언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랑을 많이 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예언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 특별한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씀이 좀 충격적이다. 이런 믿음이 조금 도움은 될 것이라고 해야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요즘 방언하면 큰 은사 받았다고 하고 예언하면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러러 볼텐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한다. 이 모든 것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이 핵심이다.
내가 가진 전체를 바쳐서 남을 구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있는 것을 조금 떼서 구제하는 경우는 있어도 전재산을 다 구제하는 일에 쓰는 사람은 없다.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
방언, 예언, 산을 옮길만한 믿음, 구제, 선행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요점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은사를 행할 때 가치가 있고 덕이 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많은 일을 해도 가치 없는 일이 된다. 이런 것이 다 없다고 하더라도,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것 뿐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진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가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살려고 한다면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방언과 예언과 기적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은사 없는 것에 대해서 한탄하는데 사랑이 더 중요하다. 사랑으로 행하면 더 큰일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더 위대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행하기를 힘쓰고 사랑을 추구해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문제와 사건에 대해서도 잘 참는 것을 의미하지만, 특별히 사람에 대해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노하지 않고 참는 것이다. 사랑의 끝은 참음이다. 참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 참으시고 기다리신다고 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오래 참는다.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해도 자녀에 대해서 참아주고 기다려준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사랑을 가지면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을 수 있다. 참는 것이 믿음이고 사랑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참지 말라고 한다. 참는 것을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참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일을 많이 한다. 성경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고, 참는 자가 승리하는 자라고 말씀한다.
"사랑은 온유하며" 온유는 부드럽고 너그러운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지고 순종하는 상태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했다. 온유의 반대는 완고함, 포악함, 강포함, 사나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했다. 굉장한 칭찬이다. 우리도 온유한 마음을 갖고 주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다른 사람이 나보다 우월한 것이 있으면 시기하고 미워한다. 사랑이 없으면 남의 성공을 시기한다. 끌어내리려고 한다. 이것은 유익하지 않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을 훼방하는 것이다. 남을 끌어 내린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해서 죽였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보다 높아지지 않았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괴롭혔다. 그러나 다윗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팔았다. 그러나 요셉은 높아지고 형제들은 비참해졌다. 시기한다고 내가 높아지지 않는다. 사랑은 절대로 시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녀가 잘될 때 부모가 시기할까? 성도가 잘될 때 예수님이 시기하실까? 기뻐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아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려고 힘쓴다. 성도에게는 감사와 회개만 나와야 한다. 원망, 불평, 자랑은 다 필요없다.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정말 사랑하면 많이 주고도 부족함을 느낀다. 사랑은 나를 앞세우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자랑을 하면 아름다운 일을 해놓고도 무가치하게 만들고, 자랑하면 칭찬받을 일을 해놓고도 무효시킨다. 남이 칭찬하게 두고 내가 나를 자랑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교만은 마음이 높아진 상태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 다른 사람보다 높이지려는 마음이 교만이다. 타락한 죄인은 저절로 마음이 높아지려고 한다. 수소를 넣은 풍선과 같이 놓으면 자꾸 올라가려고 한다. 우리는 마음을 자꾸 끌어내려서 낮추도록 힘을 쓰고 노력해야 현상 유지라도 하고 조금이라도 낮아진다. 기도하고 힘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두면 한없이 높아진다. 자기는 땅을 안딛고 사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한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간다. 금덩이가 아니다. 이렇게 지음 받은 존재가 타락하고 범죄했다. 교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 속에 자랑과 교만이 가득차 있다. 이것을 자꾸 낮춰야 한다. 그래야 겸손해져서 사랑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허물을 다 안다. 그러나 멸시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아시겠는가! 모르는 것 없이 속속들이 다 아신다. 그러나 멸시하지 않으시고 허물을 덮으시고 사랑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무례는 합당치 않고, 도리와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가리킨다.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 남들에게는 예의를 갖춘다. 그러다가 친해지면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다. 존대도 하지 않고 함부로 한다. 그런데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뒤에서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선이 있어야 한다. 너무 함부로 대하면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라. 사랑의 세계는 질서와 평강의 세계이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특징은 주는 것이다. 자기 욕심 차리고 이익 구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사랑을 떠난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희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자꾸 내 이익을 생각하고 욕심만 챙긴다면 사랑에서 멀어진 것이다. 사랑을 떠난 마음 상태이다.
"성내지 아니하며" 성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성나서 말을 하지 않고, 성내면서 밥을 안먹고, 성나서 잠을 안자고 교회도 안오고 기도도 안한다. 성나면 손해보는 것이 많다. 성내는 것이 감정 문제일까? 이성 문제일까? 감정만은 아니다. 이성도 개입된다. 남에게는 성을 내지 않고 집에서만 성낸다. 직장 생활할 때 상사에게는 성을 내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성내면 안될 사람에게는 성내지 않고 성내도 될 사람에게는 막 화를 낸다.
성내는 것은 사랑에서 멀어진 것이다. 성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 믿음생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성내면 은혜받은 것 다 쏟아버리고, 기도도 안되고,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상하니까 모세가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았다. 화가 나면 아무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은혜 받을 수 없다. 성내는 마음이 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랑의 세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두고두고 생각하면 사랑이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녀의 잘못을 두고두고 새기고 묵상하는 부모가 있나?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이다. 잘한 것은 기억했다가 갚아주고, 잘못한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유익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버리셨다고 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사랑을 잘못 알면 마귀, 죄, 공산주의도 사랑해야 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마귀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죄와 악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참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불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참으로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 97:10)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 이것이 참 사랑의 특성이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
사랑의 특성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딘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6)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8절
고린도 교인들은 일시적인 것들(예언, 방언, 지식)을 자랑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예언도 폐할 때가 온다. 방언도 그칠 때가 온다. 지식도 폐해진다. 당시는 귀하지만 없어질 때가 온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없고 집이 없고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모든 것이 풍부해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사랑 없는 세상은 끔찍하다.
9-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폐해진다. 천국에서는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필요 없다. 하나님을 다 보고 알고 저절로 다 누리게 된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11절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처럼 산다. 말과 행동,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 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성하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린다. 어린아이에게 어린아이 짓을 하지 말라고 하면 잔소리 밖에 안된다. 언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나? 장성하면 버린다. 장성한 자가 사탕 하나 때문에 싸우고 울고 잠 못자겠나? 장성한 자가 장난감 때문에 울고 싸우겠나? 그런 수준을 넘어서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장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 어린아이로 태어난다. 나이가 어린데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다. 연단을 많이 받아서 일찍 철든 사람이 있다. 생각이 어른스럽다.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다 거듭날 때 갓난아기처럼 태어난다. 신앙생활하면서 장성해야 한다. 점점 성장해서 어린아이를 벗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은사를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고 판단하는 어린아이 짓을 하니까 바울이 교훈하는 것이다. 장성하면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사랑으로 생각을 넓게 하고 크게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12절
"그때" 주님 재림하시는 때이다. 그때는 주님을 직접 보고 모든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된다. 지금은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해도 부분적일 뿐이다. 전부가 아니다. 자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보면 작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자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3절
믿음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살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고 사람 사이의 믿음도 중요하다.
소망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사람이 어렵고 힘들어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소망이 없으면 절망에 빠진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믿음을 만들어내고 소망을 든든하게 한다. 사랑이 최후까지 남는 가장 귀한 것이다.
최고의 가치, 최고로 중요한 것은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것 다 잃어버려도 사랑만은 붙들라는 것이다.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위대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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