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주일오전예배 설교(빌레몬서 1:1-7절/사랑을 받는 동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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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11-27 15:01
조회6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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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기록한 것이라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이어주기 위해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빌레몬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1. 편지를 보내는 사람(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혹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데 여기서는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불법을 행하거나 죄를 지어서 갇힌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갇혔습니다. 9절에도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그 당시 바울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많이 늙었습니다. 평생 복음 전하며 많은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혔었는데 나이 먹고 늙은 지금 또 감옥에 갇혔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혔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특권으로 여기며 기뻐했습니다.
오늘날 자유 국가에서는 복음을 전한다고 감옥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 때문에 자유를 빼앗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얽매이고, 갇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 것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 위해 낮아지셨는데 우리는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는데 우리는 움켜쥐려고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 종이 되셨는데 우리는 왕 노릇 하려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지만 그것을 기뻐합니다. 주님 때문에 감옥에 갇혀서 많은 제약이 많고 힘들게 지내면서도 그것을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까? 어디에 갇혀서 지내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19-20에 보면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부당하게(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그것은 참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2) 죄가 있어 매를 맞고 벌을 받는 고난입니다. 죄가 있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칭찬받을 것이 없습니다. 유익도 별로 없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얻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기는 한데 상 받을 일은 아닙니다. 3)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고,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고난 중에 제일 좋은 것은 바로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5:11-12에 보면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양심과 믿음과 영혼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딤후 2:9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복음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며 사람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될 줄로 믿고 기뻐합니다. 요한복음 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맘대로 자유롭게 다니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지만 진정한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심은 자유롭지 못하고 영혼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늘 불안하고 늘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삶의 기쁨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과 함께 갇힌 사람들”
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여기 디모데의 이름이 나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바울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가 바울과 함께 갇혔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23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에바브라가 바울과 함께 갇혔습니다. 24절에는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이며 함께 갇힌 자들입니다(골 4:10). 왜 함께 갇혔습니까?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갇혀서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 바울이 천국에 들어가서 면류관 받아 쓰고 영광을 누릴 때 이들도 같이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에 함께하고 고난에도 함께하는 사람이 됩시다. 고난에 함께해야 영광에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2. 편지를 받는 사람(1-2절)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
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빌레몬은 골로새 지방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며 바울을 통해 예수님 믿고 바울을 많이 도와주고, 교회를 많이 도와준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 등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목이라도 내놓을 만큼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롬 16:3-4). 그리고 빌레몬을 “동역자”로 불렀습니다. 동역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동역하려면 뜻이 같아야 합니다. 한 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합시다.
“자매 압비아.
빌레몬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7절에서 빌레몬을 향해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압비야는 자매로 불렀습니다. 그만큼 바울과 친한 사람들입니다. 혈연적 관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 같은 관계입니다. 로마서 16:13에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나 디도는 아들로 불렀습니다. 압비아는 자매처럼 바울 사도를 돕고 섬겼습니다.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입니다. 바울은 아킵보를 가리켜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라고 했습니다. 아킵보가 하나님의 일군(교역자)인 것 같습니다. 빌레몬의 모든 식구가 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자기 아들을 주님의 병사로 키웠습니다. 우리 자녀를 그리스도의 병사로 키웁시다. 하나님의 일군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네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모인 것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배당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좋은 성도들이 자기 집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도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많이 도와준 루디아의 집도 교회로 사용되었고,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도 교회로 사용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바울은 이런 빌레몬의 가정을 향해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귀한 복입니다. 은혜와 평강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복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즉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 주시고, 중생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의롭다고 해 주시고, 천국의 시민권을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신 것들입니다. “평강”은 은혜받은 결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참 평안과 만족이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가정이라면 행복할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주는 것인지, 어디로부터 오는지 아는 것입니다. 은혜는 누가 줍니까? 평강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4:7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요한복음 3:27에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특히 은혜와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귀한 모든 것들은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오고 그리스도를 통해 옵니다.
3.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4-7절)
4절에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항상 감사하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하면서 항상 빼놓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빌레몬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도가 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 자기만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위해 기도해주고, 교인은 교역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빌레몬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한 것은 그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5-6절에 보면 빌레몬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입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도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듣고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이 말은 고통과 슬픔을 멈춘다는 뜻입니다. 즉 빌레몬이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 빌레몬의 사랑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슬픔과 고통을 덜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나 때문에 성도들이 평안함을 얻고, 나 때문에 성도들이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빌레몬이 이렇게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바울이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기록한 것이라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이어주기 위해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빌레몬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1. 편지를 보내는 사람(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혹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데 여기서는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불법을 행하거나 죄를 지어서 갇힌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갇혔습니다. 9절에도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그 당시 바울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많이 늙었습니다. 평생 복음 전하며 많은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혔었는데 나이 먹고 늙은 지금 또 감옥에 갇혔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혔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특권으로 여기며 기뻐했습니다.
오늘날 자유 국가에서는 복음을 전한다고 감옥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 때문에 자유를 빼앗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얽매이고, 갇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 것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 위해 낮아지셨는데 우리는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는데 우리는 움켜쥐려고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 종이 되셨는데 우리는 왕 노릇 하려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지만 그것을 기뻐합니다. 주님 때문에 감옥에 갇혀서 많은 제약이 많고 힘들게 지내면서도 그것을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까? 어디에 갇혀서 지내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19-20에 보면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부당하게(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아무 죄도 없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그것은 참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2) 죄가 있어 매를 맞고 벌을 받는 고난입니다. 죄가 있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칭찬받을 것이 없습니다. 유익도 별로 없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얻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기는 한데 상 받을 일은 아닙니다. 3)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고,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고난 중에 제일 좋은 것은 바로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5:11-12에 보면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양심과 믿음과 영혼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딤후 2:9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복음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며 사람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될 줄로 믿고 기뻐합니다. 요한복음 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 맘대로 자유롭게 다니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지만 진정한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심은 자유롭지 못하고 영혼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늘 불안하고 늘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삶의 기쁨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과 함께 갇힌 사람들”
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여기 디모데의 이름이 나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바울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가 바울과 함께 갇혔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23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에바브라가 바울과 함께 갇혔습니다. 24절에는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이며 함께 갇힌 자들입니다(골 4:10). 왜 함께 갇혔습니까?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갇혀서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 바울이 천국에 들어가서 면류관 받아 쓰고 영광을 누릴 때 이들도 같이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에 함께하고 고난에도 함께하는 사람이 됩시다. 고난에 함께해야 영광에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2. 편지를 받는 사람(1-2절)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
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빌레몬은 골로새 지방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며 바울을 통해 예수님 믿고 바울을 많이 도와주고, 교회를 많이 도와준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 등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목이라도 내놓을 만큼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롬 16:3-4). 그리고 빌레몬을 “동역자”로 불렀습니다. 동역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동역하려면 뜻이 같아야 합니다. 한 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합시다.
“자매 압비아.
빌레몬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7절에서 빌레몬을 향해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압비야는 자매로 불렀습니다. 그만큼 바울과 친한 사람들입니다. 혈연적 관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 같은 관계입니다. 로마서 16:13에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나 디도는 아들로 불렀습니다. 압비아는 자매처럼 바울 사도를 돕고 섬겼습니다.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입니다. 바울은 아킵보를 가리켜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라고 했습니다. 아킵보가 하나님의 일군(교역자)인 것 같습니다. 빌레몬의 모든 식구가 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자기 아들을 주님의 병사로 키웠습니다. 우리 자녀를 그리스도의 병사로 키웁시다. 하나님의 일군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네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모인 것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배당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좋은 성도들이 자기 집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도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많이 도와준 루디아의 집도 교회로 사용되었고, 고린도전서 16장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도 교회로 사용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바울은 이런 빌레몬의 가정을 향해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귀한 복입니다. 은혜와 평강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복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즉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 주시고, 중생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의롭다고 해 주시고, 천국의 시민권을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신 것들입니다. “평강”은 은혜받은 결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참 평안과 만족이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가정이라면 행복할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주는 것인지, 어디로부터 오는지 아는 것입니다. 은혜는 누가 줍니까? 평강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4:7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요한복음 3:27에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특히 은혜와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귀한 모든 것들은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오고 그리스도를 통해 옵니다.
3.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4-7절)
4절에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항상 감사하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하면서 항상 빼놓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빌레몬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도가 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 자기만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위해 기도해주고, 교인은 교역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빌레몬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한 것은 그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5-6절에 보면 빌레몬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입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도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듣고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이 말은 고통과 슬픔을 멈춘다는 뜻입니다. 즉 빌레몬이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 빌레몬의 사랑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슬픔과 고통을 덜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나 때문에 성도들이 평안함을 얻고, 나 때문에 성도들이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빌레몬이 이렇게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바울이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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