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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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수요예배 설교(고린도후서 4장 1-7절/질그릇에 담긴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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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2-15 21:18 조회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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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lxgeUlO3Tt4


1.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직분을 맡겨 주심(1-2)

2.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의 상태(3-4)

3. 복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의 상태(5-6)

4. 보배가 질그릇에 담김(7) 


1절

바울은 사도직을 감당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3장을 보면 복음의 직분은 영의 직분이고, 살리는 직분이고, 영광스러운 직분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성도들을 잡는 일을 했다.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그는 심판받고 멸망받아 마땅한 자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셨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님과 성도들을 대적하는 일을 했기에 벌받고 망하고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사도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6)

주님이 바울을 긍휼히 여겨주신 까닭을 밝혀주셨다. 그를 구원하시고 사도로 삼아주신 이유는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해주신 일을 체험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대적하는 자, 방해하는 자, 바울을 미워하는 자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런 자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가 주님을 본받아 참고 인내하며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깨닫고 보니 사도직을 감당하면서 방해자와 대적자와 핍박하는 자들을 만날 때 낙심하기는 커녕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자신을 긍휼히 여겨 사도로 삼아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도 긍휼히 여겨주셨다. 행한대로 갚으시고 지은 죄로 벌을 내리셨다면 몇번 죽고 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주셨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난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복음의 직분이 살리는 영광스러운 직분이며,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이 직분을 맡겨주셨기에 낙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욕먹을 일 없고 힘들 일도 없다. 그러나 앞장 서서 일하다가 보면, 복음을 위해 힘쓰다 보면 대적이 생기고 욕을 먹는다. 선한 일 하고 희생했는데 알아주기는 커녕 욕을 먹으니까 낙심을 하게 된다. '그만 둬야겠다. 더이상 못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낙담은 신앙생활의 적이다. 마음이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람이 높은데서 떨어지면 다치거나 죽는다. 우리 마음도 높이 매달려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떨어지면 큰 상처를 입고, 잘못하면 마음이 절망에 빠진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낙심은 신앙생활의 큰 장애물이다. 어떤 일을 만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직분이 영광스럽고 복된 직분이며 천사도 흠모할 만한 직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난을 당하고 반대와 대적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2절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방법이 뭔가? 이 귀한 직분을 받아서 낙심하기는 커녕 오히려 잘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렸다. 둘째, 속임으로 행하지 않았다. 남을 속여서 자기 욕심을 챙기려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사람은 속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았다. 말씀 자체가 순수하고 하나님이 준 진리이다. 생명의 복음이다. 말씀 자체가 완벽하다.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섞으면 말씀이 더러워지고 혼잡해지는 것이다. 순수한 물에 더러운 것을 섞으면 무조건 더러워진다.

예전에 나이 많은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성형은 별로 안좋은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멋있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존재로 나답게 만들어놓으셨는데, 내가 조금씩 바꾸면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류 화가가 그린 그림에 내가 붓질을 하면 망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누가 바꾸려고 하는가? 

진리는 우리 육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복음은 생명이다. 그 자체로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하거나 빼서는 안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자체보다 좋은 것이 없다. 건들면 건들수록 나빠지는 것이 복음, 말씀을 건드는 것이다.

넷째,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스스로 추천했다. 진리만 증거하고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추천한 것이 사도직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바울이 알고 있었다.

스스로 추천한다는 것이 뭔가? 다른 사람은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했는데, 바울은 그런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 고린도교회 자체가 바울의 추천서이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다른 추천서가 필요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울 자신의 삶이 추천서이다. 진실되고 거짓없이 숨김없이 사는 자신의 삶을 보라는 것이다. 추천서가 필요한가? 삶보다 위대한 추천서는 없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추천서이다. 진실하고 참되게 살면 그런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 속이고 눈 가림해서 욕심이나 채우려고 하면 결국 그런 사람으로 드러난다.

바울은 삶을 통해 진리를 증거하면서 자신을 추천했다. 양심이 있고 생각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라면 바울이 참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추천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한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이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서 많은 사람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이 자신의 추천서라고 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새생명을 얻고 사도가 된 바울이 이렇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다.

거짓 선생들은 잘못된 것을 숨기고 가만히 들어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 말씀에 이것저것 섞어서 진리를 변질시킨다. 바울은 그런 자들과 차원이 다르다. 


3절

복음이 나빠서 안믿는 것이 아니다. 복음 자체가 나쁘고 틀리고 잘못된 것이라서 사람이 안믿고 망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복음을 잘못 전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복음은 좋은 것이다. 100% 순수한 생명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참 진리를 드러내셨다. 바울은 이 복음에 아무것도 섞지 않고 순수하게 복음을 드러내놓고 증거했다.

그런데 복음을 듣지 않고 믿지 않으면 망한다. 망하는 이유는 복음이 나빠서가 아니고, 바울이 잘못 전해서가 아니고 복음이 가리워졌기 때문이다. 복음이 전해졌는데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수건으로 마음이 덮여져 있으면 보이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는다. 가리워져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복음을 전하면 잘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길을 가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같이 들었는데 믿지 않고 은혜 못받는 자들이 있다. 택자와 불택자가 있어서 그렇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이 들었다. 그런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듣고 믿었다. 그러나 예정되지 않은 자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복음을 듣는데 믿지 않는다. 복음을 거부한다. 이와같이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격스러워하며 믿음의 길을 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는데도 망한다. 가리워져서 그렇다.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6~27)

복음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이유가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은 주인의 음성을 듣고 안다. 그러나 염소나 이리들은 주인의 음성을 모른다. 

가리워지는 것은 마음이 완고한 것이다. 수건으로 가린 것처럼 마음을 덮어서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절

복음을 전했는데도 망하는 자는 가리워졌기 때문이다. 누가 가리웠나? 세상의 신이라고 했다. 이는 마귀, 사탄, 공중 권세 잡은 자, 세상 임금, 미혹하는 자이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깨닫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한다. 망할 때가 되면 귀부터 망한다. 듣는 것부터 못한다. 말씀이 안들리면 망하는 것이다. 귀가 열려야 한다. 들려야 한다.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 은혜와 복이다. 깨달아지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말씀을 전해도 못듣는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외쳐도 듣는 자들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믿고 구원받는 자가 있다.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귀가 깨어 있어야 하고,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 완고한 마음이 되면 말씀을 듣지 못한다. 그런데 마귀가 마음을 완고하게 만든다. 일차적으로는 예배당에 가지 못하게 하고, 예배당에 가도 졸리게 하고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잡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딴 생각만 하다가 한 말씀도 듣지 않고 돌아가는 자들도 있다. 많은 욕심이 우리 마음을 미혹한다.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행 8:20~21)

마술사 시몬이 돈으로 성령을 사려고 했다. 자기는 속임수로 마술을 하는데, 베드로를 보니 속임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하니 베드로가 책망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이 온유해지고 순결해지고 진실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는 심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 받고 생명이 사는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빛을 비추면 빛을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은혜의 길, 생명의 길을 간다. 빛이 비춰지는 것이 은혜요 복이다.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일을 마귀가 한다. 


5절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전파하고, 자기를 믿게 만들고, 자기를 따라오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이런 일을 해서 자기를 믿고 따라오게 만든다. 그런데 참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바울은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를 살리신 유일한 구주시라는 것을 전파했다. 그리고 자기들은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전파한다고 했다.

참 종들은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그리스도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한다. 그리고 자기는 종의 자리로 내려간다. 세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다. 복음만 높이고 자랑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을 믿고 따라가면 반드시 실망한다. 목사라고 해서 믿지 말라.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믿어라! 사람을 믿으면 반드시 실망하고 후회할 때가 온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 


6절

우리는 어두운데 있었다. 흑암과 죄악 가운데 살았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실 때 맨 처음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셨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 빛을 비춰주는 것이 은혜받는 일이고 복받는 일이다. 

악한 마귀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을 막아서 빛을 못보게 하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신다. 마귀의 역사는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시는 빛을 비추는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7절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에 비유한다. 질그릇은 그릇 가운데 가장 연약하다. 깨지기 쉽고 가치도 별로 안나간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상처가 나고 깨지기도 하고 부서질 수 있다. 귀한 것은 그 안에 보배가 있다고 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그릇이 은 그릇이냐 금 그릇이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금수저, 흙수저가 있다. 그런데 금수저냐 흙수저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수저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가 중요하다. 금수저라도 죄만 짓고 다니면 하찮은 것이다. 흙수저라도 복음 전하는 일을 하면 귀한 것이다.

그릇의 재료보다 그 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있느냐? 가 더 중요하다. 금그릇이라도 쓰레기를 담아 놓으면 쓰레기통이다. 흙항아리여도 보물이 담겨져 있으면 보배 항아리이다. 

바울은 자신이 보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당당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도의 직분, 복음 증거하는 직분이 보배이고, 복음이 보배이고, 자기 안에 있는 예수님이 보배이고, 말씀과 진리가 보배이다. 

우리도 외모만 가지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잘사나 못사나?를 생각하지 말고 내 속에 뭐가 들어있나?를 봐야 한다. 보배가 담겨 있는 보배로운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보배와 생명이 있다. 진리를 많이 깨달으면 보배가 많은 것이다. 예수님을 많이 닮았으면 보배가 풍성한 질그릇이다. 점점 예수님을 많이 닮아서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하겠다. 복음을 전하므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하겠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참 많은 일을 했다.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일을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은 질그릇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가치 없고 드러낼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다. 흙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속에 보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쓸만하고 가치가 있고 귀한 존재인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복음이 사라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 쓰임받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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