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1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9장 1-22절/전도자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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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심(1-3)
2. 먹고 마실 권리가 있음(4-13)
3. 신령한 것을 나눠 주어야 함(14-22)
바울이 9장에서 자신의 사도됨을 변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가장 상처와 시험이 되는 말은 "네가 사람이냐?"라고 지적하는 말이다. 성도에게는 "네가 성도냐?" 공격하는 것이고, 목사에게는 "당신이 목사냐?"라고 하는 것이다. 선생에게는 "당신이 선생이냐?"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을 흔들고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낙담시켜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공격을 당했다. 만약에 바울이 사도권을 지키지 못하면,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지 못하면 바울이 전하는 말씀, 복음, 전도, 일하는 것이 다 헛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큰 일을 해도 그가 하는 일이 다 무너지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도의 권위로 모든 일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도권이 부정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는 심각한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강조하고 명백하게 밝힌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바울은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했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도 자유인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가 아니냐"라고 하면서 자신이 사도임을 분명히 밝힌다. 예수님이 불러서 일꾼 세우시고 보내신 사도임을 힘있게 강조한다.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자신이 주님을 직접 보고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워서 보내셨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의 헌신과 수고로 고린도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고린도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부인하더라고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증거하면서 자신의 삶과 그 열매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증거하는 방법은 내가 살아온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삶의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로 인해 은혜 받고 변화된 자들이 많다면 그 사람이 신자요 전도자요 일꾼이다. 그런데 신자인데 열매가 없는 자들이 있다. 삶의 열매를 보면 불신자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1절에서 확실하게 붙들어야 할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남이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확실한 소명감과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교사가 맞다!' 라고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하고 있으면 그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내가 성도가 맞는가? 교회를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를 고민하고 있으면 안된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 어떻게 사나? 분명하고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맡기셨다.
2절
바울이 전도해서 고린도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말씀을 가르쳐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졌다. 다른 사람은 부인하더라도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사도됨을 부인할 수 없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반사임을 증명한다. 거짓교사들이 바울의 사도됨을 부인하고 바울을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바울은 당당하게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하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3절
바울은 거짓선생들에게 반박한다. 그들에게 지고 굴복하고 자신감을 잃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반박해서 물리치고 당당하게 사도의 권리를 행사한다. 이것이 생명 있는 믿음의 모습이다.
4-5절
바울이 사도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 설명한다.
먹고 마실 권리는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면서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아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 전할 권리가 바울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독신의 길을 걸으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했다.
6-7절
"일하지 않을 권리"는 세상 일 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복음 전하고 하나님의 일만 하면서 사례비를 받으면 되는데 바울은 사례비를 받지 않고 세상 일을 했다. 그러면서 몇가지 원리를 설명한다.
첫째는 일반적 원리이다. 모든 군인들은 국가에서 먹이고 입힌다. 어떤 군인이 자기 도시락을 싸면서까지 군복무를 하겠는가? 농부가 농사지으면 열매를 거두어서 먹을 권리가 있다. 양을 기르는 사람은 양의 젖을 먹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권리라는 것이 있다.
마태복음 10장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전대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대접할 자들이 있을 것이니 자연스럽게 대접을 받으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도 사례비를 받고 대접 받을 권리가 있었는데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8-9절
율법에도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다(신 25:4). 이 말씀은 소에 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꾼들을 대접하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10절
밭을 사는 자도 얻을 소망을 갖고 밭을 갈고 곡식 떠는 자도 얻을 소망을 갖고 곡식을 떤다. 여러가지 이치들을 설명하면서 사도에게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했다. 바울은 이것을 찾아서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고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했다.
11절
신령한 것은 말씀, 복음이다.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자라게 하는 영적 양식을 가리킨다. 반면에 육적인 것은 세상의 먹을 양식을 가리킨다. 신령한 것을 뿌렸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고 육적인 것을 거두었다는 것은 사례비를 받아서 생활한다는 의미이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15:27)
12절
중요한 말씀이다. 바울에게 이런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는데,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참겠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도" 그는 정당한 권리를 포기했다. 바울은 물질 때문에 복음이 지장을 받고 복음 전도가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시비가 생기거나 공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복음이 잘 전파될까? 말씀을 능력있게 전파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썼다.
13-14절
구약시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5절
12절에서 말한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한다.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을 헛된대로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권리를 다 포기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쓰지 않고 복음만 증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했다. 그런데 만일 바울이 사례까지 받았으면 삯군이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바울이 이것을 예상, 짐작하고 사례비를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다. 다른 교회에서는 여러 차례 선교비를 받았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일절 받지 않았다.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않았고" 물질적 권리를 전혀 쓰지 않고 자비량 선교사가 되었다.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게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말하는 것이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바울의 결심, 각오이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대접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정신과 각오를 가진다면 어딜 가서도 승리할 것이다. 복음을 잘 전하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것이다. 모든 일꾼들에게는 이런 자세와 정신이 필요하다.
16절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다. 사명감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꼭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복음을 많이 전하고 여러 교회를 세웠더라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어 있다고 말한다. 만약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말씀이 에스겔 3:17이하에 나온다. 파수꾼을 세우시고 "나를 대신해서 악인들을 깨우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파수꾼이 악인들을 깨우치지 않아서 악인이 죽게되면 악인은 죄값으로 죽는 것이지만 파수꾼은 깨우치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 바울은 이런 정신을 갖고 생명 내놓고 복음을 전했다.
17절
스스로 희생정신을 갖고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책임을 맡기시고 직분을 맡기시고 사명을 맡기셨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18절
바울은 복음을 잘 전하면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는 것,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상을 받을 이유라고 했다. 대접, 섬김, 존경 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다 쓰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내려놓았다. 죽을지언정 각오하면서 이 권리를 다 내려놓았다. 이렇게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많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서 권리를 다 누리면 세상에서 다 받았으니 하나님께 받을 상이 줄어들게 된다.
19절
바울이 1절에서 자기가 자유인이라고 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누구의 종도 아니고 억지로 뭔가를 해야 되는 위치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했다. 제도적 종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 섬기는 종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스스로 종이 되어서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주께 인도하는 것은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으로 압력을 넣어서 강제로 이끌어서는 믿게 할 수 없다. 바울처럼 낮아져서 희생하고 섬기면서 종살이 하면서 복음을 전해서 자원함으로 믿게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도 한 사람이라도 더 믿게 하려면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 그 사람을 섬겨야 한다.
20-21절
바울이 몇몇 사람을 더 얻으려고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접근했다. 상대방이 거부감을 갖지 않고 마음을 열도록 접근을 했다. 종이 주인을 대하듯이 낮은 자세로 섬기는 모습으로 다가갔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가서 종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히 희생하고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분 나쁘면 문도 열어주지 않고 욕하고 때리고 죽일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다 참고, 화내지 않고, 잘 견디고 , 계속해서 복음 전하는 일이 쉬운 일인가? 자기 속을 다 버려야 한다. 제 정신으로 할 수 없다. 그만큼 낮아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한다. 그런 노력과 희생에 상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당당하고 자신 만만하던 사람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율법으로 흠잡을 데가 없고 열심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였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로 종처럼 살았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서 애를 쓰고 부탁하면 다 들어주면서 어떻게든지 복음을 전해서 살려보려고 했다.
22절
바울이 이렇게 했다. 전도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영혼 구원해서 살리는 것이 말 한마디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노력하고 마음 졸이고 애타고 속상하고 섬기면서 한 영혼이라도 얻으려고 힘쓰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고린도교회이다. 그런데 거짓선생들이 바울을 부인하고 고린도교회를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
중요한 내용은 우리도 '내가 누구다' 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보통 사명이 아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주일학생 한 사람만이라도 잘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면 성공한 것이다. 영혼 구원, 전도하는 일을 위해서 온갖 힘들고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상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부득불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 내 권리만 생각하고 주장하지 말라. 권리를 생각하면 속상하고 기분 나빠서 아무것도 못한다. 바울처럼 내가 죽을지언정, 각오하고 희생하고 작정하고 굶을 각오하고 손해볼 결심하고 복음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고 영혼 구원도 잘 되도록 하실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상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후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고 많은 상을 받는 자리에 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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