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4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20장 1-26절/사람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Dms5IAjEoIk
1-8절은 예수님의 권위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9-19절은 포도원 농부 비유이다.
20-26절은 납세에 관한 문제이다.
1-2절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한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물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왜 이런 질문을 하냐면 주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일을 했다.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고 그 상을 엎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셨다.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고, 누가 이 권위를 준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주님은 성전의 주인이시다. 주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가? 자기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는데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왕의 아들이시고 성전의 주인이시다. 주님이 성전을 보니 성전이 더럽혀져 있고 장사하고 환전하는 일을 하니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을 하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성전이 제 모습을 찾은 것을 보고, '성전에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기뻐해야 되는데, 오히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다. 예수님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시비하고 도전을 한다.
예수님이 큰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와같이 오히려 주님을 더 반대하고 더 대적하면서 어떻게든지 주님이 하시는 일을 막아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세 무리가 왔다. 대제세장, 서기관, 장로들이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의 대표자들이다. 재판권이 있는 최고 의결기관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각 지파별 6명씩 뽑아서 7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주님에게 어떤 권한을 준적이 없는데 주님이 여러가지 일들을 하니까 못마땅하고 싫어서 대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3-8절
주님은 대답 대신에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러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서로 의논을 한다.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세례요한이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세례를 베푸는지, 자기 마음대로 하는지를 물으셨다. 양심적으로 대답하려면 하늘로부터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인정하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책망하다가 순교를 당했는데, 모든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고 서로 의논을 했다. 이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 것이 분명한데도 믿지 않고 세례요한에게 세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을 믿었으면 예수님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반대로 만일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돌에 맞을 일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선지자가 아니라고 해버리면 백성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그래서 두려워서 그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의논한 다음에 "모른다"고 대답을 했다. 이것은 진짜 몰라서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고 양심을 안쓴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식만하는 악한 자들이다. 정치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곤란하면 아는 것도 모른다고 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양심도 쓰지 않고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모른다고 하시지 않고 가르쳐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가르쳐줘도 이 사람들이 안받아들이고,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르쳐주시지 않은 것이다. 주님이 많은 말씀을 가르치셨고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지만 이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르쳐주시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에 보면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비유의 말씀을 하신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면 돼지는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는데 귀한줄 모르고 복음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들인 것을 주님이 아시고 제대로 알려주시지 않은 것이다.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다가 자기들이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9-12절
포도원 농부 비유이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한 사람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킨다. 농부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있었다. 농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오래 있다가 열매를 요구하신다고 했다. 종들을 보내시는데, 종들은 선지자들을 의미한다. 주님이 한 종을 보내셨는데 농부들이 종을 때리고 거저 보냈다. 이것은 종들을 능욕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주인은 두번째 다른 종을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이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냈다. 세번째 종을 보냈는데 그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았다.
하나님이 구약교회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에 맡기셨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믿음의 열매를 거두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를 박해하고 멸시하고 때로는 죽였다.
13-16절
포도원 주인이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고 생각했다. 종이기에 때리고 멸시하고 내쫓았지만 아들을 보내면 존경해서 잘 대접하지 않겠는가? 기대하고 아들을 보냈다.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찾아오셨다. 그런데 종들은 서로 의논한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아들을 죽여버리고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것인데 아들까지 죽이고 자기 것으로 삼았다. 도적이요 강도요 살인자이다. 배은망덕한 참으로 악한 자들이다. 주인에게 감사하기는 커녕, 열매를 드리기는 커녕, 수많은 종들을 멸시하고 능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아들이 왔을 때에는 죽이고 하나님의 포도원을 빼앗아 버렸다.
주인이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나?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리라 하시니" 주인이 직접와서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목사 것도 아니고 교인 것도 아니다. 교회를 통해서 욕심 채우고 이익을 보려고 하면 안된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섬겨드려야 한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 일해야 한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종들을 능욕하고 때리고 돌려보내고 아들은 죽여버렸다. 그러다가 결국 진멸을 당하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를 빼앗겨서 신약시대에는 이방인들에게 넘어갔다. 이방인들이 포도원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주님의 이 비유를 바리새인들이 주욱 듣다가,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고 했다. 자기들이 다 진멸당한다고 하니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종의 위치에서 충성하고 주인에게 순종하고 열매를 드렸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17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성전을 건축하는데 돌을 여러개 골라다가 건축을 하다가, 버린 돌이 있다. 예수님을 버렸다. 그런데 예수님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18절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대적자들이다. 이들이 돌을 부서뜨리려고 하고 대적하다가 자기들이 깨지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대적하면 다 멸망을 당하고 만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믿지 않는 자들, 대적자들, 모든 악을 행한 자들 위에 떨어져서 그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대만 하고, 대적만 하는 사람들이 심판 때에 다 벌을 받게 될 것이다.
19절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에 대한 말씀인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백성들을 두려워했다. 예수님을 당장 잡아다가 박해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두려움이 없고 백성들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해하지 못했다.
20절
주님을 대적하고 잡으려고 하다가 자기들이 곤란한 일을 겪고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한다. 어떻게든 주님을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방법을 또 하나 세웠다.
"엿보다가", "책 잡게 하니" 가만히 엿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유심히 살피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유심히 관찰하다가 책잡을만한 것, 한가지라도 꼬투리 잡을 것이 생기면 낚아 채려고 하는 것이다. 낚시하다가 물고기가 미끼를 물으면 낚아 채는 것처럼 하려고 했다. 참 악한 무리들이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도 변화되기는 커녕 점점 악해지고 죄만 더 많이 짓고 있다.
21-22절
주님을 한껏 추켜 세운다. "주님은 참 바른 말만 하십니다. 말씀을 잘 가르치십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칩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이 긴장을 풀고 말씀하실 때 책잡을 일을 있으면 낚아 채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라고 질문했다. 예수님을 궁지에 몰려고 질문한 것이다. 예수님을 칭찬해놓고 곤란한 질문을 한 것이다.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엄청난 일이 된다. 로마 정부의 반역자로 고소할 수 있다.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해서 매국노라고 몰아갈 수 있다. 로마의 압잡이라고 공격할 수 있는 곤란한 질문을 했다.
23-24절
예수님께서 그들의 간계를 아셨다. 악한 것을 아셨다. 그리고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고 하셨다.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물으시니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당시의 데나리온 화폐에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25절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대답하셨다. 아주 지혜롭게 대답하셨다. 주님의 지혜가 참 뛰어나시고 놀랍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러 사람들이 꾀를 내어서 주님을 잡으려고 해도 주님을 잡을 수 없다. 주님의 지혜를 누구도 당하지 못한다. 우리도 이런 주님의 지혜를 본받아야 하겠다. 성경의 지혜를 잘 배워서 지혜롭게 모든 시험을 이기고 살았으면 좋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당연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답으로도 주님을 책잡을 수 없도록 대답을 잘하셨다.
시간적으로 주일이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 마음대로 쓸 날이 아니다. 주님의 날, 주님을 위해 살라고 지정해주신 날이다. 온전히 구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날로 살아야 한다.
물질 중에서 십의 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인데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리라고 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믿는 자로 인정해주시겠다고 하셨다.
26절
주님의 지혜로운 대답을 들은 그들이 주님을 책잡지 못했다. 주님은 한 말씀도 그들의 올무에 걸릴만한 대답을 하시지 않았다. 주님의 대답을 듣고 놀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 되면 주님을 인정하고 믿어야 되는데 끝까지 믿지 않는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이 간 길이다.
주님이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아서, 말씀을 잘못 전해서, 자격이 부족해서 안믿고, 대적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악해서 믿지 않았다.
주님을 책잡으려고 했지만 주님이 대답을 잘 하시고 그들을 민망하게 만드시고 입이 다물어지도록 만드셨다. 주님이 승리하셨다. 우리도 주님의 지혜를 배워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해나가야 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