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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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5 주일오전예배 설교(히브리서 10장 25-39절/영적 침체로부터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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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5-15 15:32 조회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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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Cf6Yf9Sv8FM


3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었다는 소식을 많이 듣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파산하고,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모두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힘들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답답한 것이 사실입니다. 함께 기도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경기침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신앙생활이 약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던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서서히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신앙의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침체에 빠지면 생활의 의욕과 활기를 잃어버리고,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도 망각합니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경제적 의무도 소홀히 하며,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고 싸웁니다. 또 주님과의 교제가 식어지고, 하나님과 교회에 무관심하게 되고, 마음속에 뜨겁게 타오르던 믿음의 불길은 식어집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방탕에 빠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 죄와 타협하며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즉시 회복하지 못하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신앙의 잠을 자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우리 믿음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식어지고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즉시 회복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면 “그럴 때도 있지” 하면서 가만히 보고 있습니까? 대부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이 안될 때 평안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침체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올라가고 있습니까? 내려가고 있습니까? 오늘은 신앙이 침체 된 상황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침체된 사람의 특징

첫째,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생김.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믿음이 타락하여 침체에 빠지면 첫 번째 나타는 증세가 모이기를 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에 잘 참석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으로 침체된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는 나오는데 실제 삶에서는 전혀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그런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기 “모이기를” 이 모임은 무엇을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까? 예배와 신앙생활을 위한 모임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모여서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배는 모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무너뜨리는 일이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1:13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번거롭게 여겼다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예배를 싫어하고, 주일날인데도 교회에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퇴보할 때 첫 번째 특징은 모이기를 폐하는 것입니다. 새벽예배부터 빠집니다. 다음 수요예배를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주일 예배도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안 나옵니다. 이것이 신앙이 타락할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예배 시간에 등산을 간다든지, 집에서 TV나 보든지, 낮잠이나 자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 예배를 싫어하고 귀찮게 생각할까요? 영적으로 병이 들고, 신앙의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중단됩니다. 믿음이 강해질 때는 기도에 열심을 냅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 건강한 모습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질 때는 기도를 힘쓰지 않고 쓸데없는 고민만 합니다. 또 말씀의 맛을 잃어버립니다. 전에는 말씀에서 힘과 능력을 얻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말씀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성경 어디를 펴도 은혜가 안된다면 신앙이 병든 것입니다. 전도나 봉사도 중단됩니다. 믿음이 퇴보하면 믿는 사람 만나서 교제하는 것을 안 하려고 하고, 세상 사람 가까이하면서 세상 사람과 친근히 하고 교제합니다. 우리 믿음이 퇴보하면 이렇게 됩니다.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심각한 죄에 빠질 수 있음. 26-29절은 신학적으로 해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믿는 자가 타락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일시적인 타락이냐, 영원한 타락이냐?’ 하며 논란이 많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은 배교자들 즉 이단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 깊은 내용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요점만 말씀드리면 믿음 생활하다가 타락하는 것이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타락하면 큰 죄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택함받은 백성, 한번 구원받은 자들은 다시 타락하여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아는 사람도, 성경을 잘 배운 사람도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맛보고, 믿음으로 살던 사람도 죄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 퇴보는 무서운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안 나오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큰소리치면 안 됩니다. 신앙이 타락하는 것은 우리를 큰 죄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빛에 거하지 않으면 어둠에 빠지게 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성도가 은혜 가운데 거하지 않으면 죄 아래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절대 믿음이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작은 죄라도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38절에 믿음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계속 물러가다 보면 결국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신앙이 타락하지 않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침체에 빠지면 마음이 무디어져서 감각 없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는 일들을 조금씩 하기 시작합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조금씩 합니다. 죄에 대하여 너그러워지고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해서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으며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생활이 점차로 타락되어 가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변해갑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갑니다. 에베소서 4:18-19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2. 침체로부터 회복하려면

첫째, 서로 권하여 모이기를 힘쓰라.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흐르는 강물에 배를 띄워 놓으면 이 배가 위로 올라갈까요, 아내로 내려갈까요? 아래로 내려갑니다. 구태여 노를 저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놓아둬도 내려갑니다. 마찬가지로 죄악 된 세상에서 성도들이 가만히 있으면 믿음이 저절로 올라갈까요, 내려갈까요? 내려갑니다. 타락합니다. 사람은 타락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타락하게 되고 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좋아지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힘써야 합니다. 서로 권하여 힘써 모여야 합니다. 

영적 회복은 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모이는 것이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모이기를 힘쓰지 않으면 은혜받을 수 없고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에도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이 회복하고 신앙적으로 부흥했습니다. 학사 에스라 때에도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이스라엘이 회복했습니다. 초대교회 때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사도행전 2:46-47). 정상적인 신앙,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의 모습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고,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 배우기를 즐거워합니다. 어느 시대, 누구나 이렇게 믿음 생활합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예배가 안 되면 신앙생활이 완전히 무너지고 신앙생활이 무너지면 그 인생은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과 나와 영적인 관계가 어떠함을 알려면 예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배는 관계성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므로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냅니다. 그리고 다시는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없도록 천사로 하여금 화염검을 가지고 지키게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두 번 다시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관계도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창세기 3장이 이렇게 해서 끝납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말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다 막혀버리고 인간과 하나님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는데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딱 한 가지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제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매일 만나고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에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사란 인간의 죄를 없애는 의식이며 죄인이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제사 외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갈 수가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 제사가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은혜와 축복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둘째. 믿음의 담력과 인내가 필요함. 32-34절에 보면 전날을 생각하라 권합니다. 전날에 평안한 환경에서 믿음 생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핍박과 고통과 죽음과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큰 고난이 올 때 믿음으로 싸웠고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비방과 환난을 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면서도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를 동정하면서 돌봤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자기 소유를 빼앗기면서도 기쁘게 당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빼앗기고, 자기 사업체를 빼앗기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34절). 믿음의 눈으로 하늘나라를 보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도 기뻐하고, 소유를 다 빼앗기면서도 기뻐했던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눈으로 천국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5절에서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담대함은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생깁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믿음의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약해지지 마십시오. 담대함을 버리지 마십시오.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의 상급이 바라보십시오. 36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믿음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믿음을 온전케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참고 인내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사람은 끝까지 인내합니다. 이런 사람이 상급을 받습니다.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 때문에 산다. 믿음을 위해서 산다. 믿음을 쓰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잠시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믿음 지키는 성도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잠시 잠깐 후에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재림은 결코 더딘 것이 아니며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방심하지 말고, 신앙의 잠을 자지 말고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믿음을 회복하고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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