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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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22장 39-46절/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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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6-15 21:34 조회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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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9Hw2Ebqh7rw


1.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심(39-40)

2.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심(41-44)

3. 잠을 자는 제자들(45-4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고 했다. 주님은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셨다. 사역 내내 기도를 많이 하셨다. 40일 금식 기도로 사역을 시작하셨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밤 늦게까지 기도하셨다. 이렇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다. 중요한 것은 기도가 습관이 된 것이다. 습관은 전부터 오랫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한두번 하다 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 베어 있는 것이다. 새벽 기도가 습관이 되면 새벽 4시에 그냥 일어나진다. 예수님은 늘 감람산에서 기도하기를 힘쓰셔서 기도가 습관이 되셨다. 습관이 나쁜 의미로 쓰여질 때도 있다. 믿음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교회 다닌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좋은 의미의 습관이다.

좋은 습관을 많이 들이면 신앙생활에 유익이 많다. 매일 성경 읽기, 날마다 새벽기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주님과 동행하며 은혜를 누릴 것이다. 주일성수, 매일 감사 찬송, 전도가 습관이 되면 자체로 은혜이고 큰 유익과 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가지면 안된다. 모이기를 빠지다가 습관이 되면 나중에 모이기 싫어진다. 그러면 신앙이 죽는다. 주님과 멀어지고 영적 침체에 빠진다. 예수님의 습관을 보면서 우리도 신앙생활에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 나의 좋은 습관은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에게는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좋은 습관이 있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감당하실 수 있으셨다. 예수님 생애에 가장 크고 막중한 사명이 십자가이다. 가장 큰 순종과 믿음을 보여주는 자리이고, 영적으로 가장 크게 승리해야 하는 자리이다. 동시에 가장 수치스럽고 무서운 순간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면서 준비하시고 은혜 받으셔서 승리하셨다. 

사람들은 위기에 부딛히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라고 말한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위기의 순간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평소에 기도가 습관이 안되면 어려울 때 기도가 안된다. 기도가 습관이 되고 훈련이 되고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특별할 때 특별한 곳에 가서 기도 많이 해야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좋지만 늘 기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니엘도 이렇게 기도했다.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기도했다.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했다. 그런 기도로 사자굴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했다. 


40절

주님 기도하러 가시는 자리에 제자들이 따라갔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제자들에 함께 가니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도할 때 한두 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면 힘과 도움이 될 것이다. 특별히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잠시 후면 주님이 붙들려가시고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닥쳐올 것이다. 많은 유혹과 시험이 올 것을 아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세상은 어디에나 마귀가 역사하고 유혹하고 시험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을 금식 기도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감람산에서 기도하신다. 그렇게 기도하심으로 승리하신다. 시작도 기도, 중간도 기도, 끝도 기도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다. 변화산에서도 제자들은 졸다가 내려왔다. 산 아래 있는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서 망신당하고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제자들은 기도하다가 졸다가 예수님 붙잡히실 때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했다.

기도해서 능력 받고 힘을 얻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해야 되지만 평상시에 기도해야 한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41절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겸손한 모습이다. 간절한 태도이다. 심히 낮아진 모습이다. 직접 이렇게 기도하셨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그리고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기도하셨다. 우리가 너무 형식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어떤 모습으로 기도해야 되는가? 정해놓을 필요는 없다. 앉아서, 서서, 걸어다니면서도 기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기도하지만 속으로는 딴 생각하고 졸면 안된다.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처음에는 잡념이 생기고 방해가 일어나도 그것을 이기고 힘써 기도하면 기도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힘써서 은혜 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44절에 "힘쓰고 애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라고 했다. 얼마나 기도하려고 애를 쓰셨는지 보여주고 있다. 적당히 하시지 않았다. 주님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우리도 노력해야 하겠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주님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42절

"아버지여"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나아가 사정을 다 털어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민을 내려놓고 기도했다. 자녀가 혼자 고민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기뻐할 수 없다. 이렇게 맡기고 기도할 때 기뻐하신다.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십자가의 고통을 의미한다. 최고의 수치요 형벌이다. 육체적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큰 고통이다. 마태복음에 "고민하고 슬퍼하사,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셨다. 왜 이렇게 고민하고 슬퍼하셨을까? 단순히 죽는 것이 두려워서 고민하고 슬퍼하신 것이 아니다. 세상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조직과 단체를 위해 담대히 죽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이 죽음이 두려워 고민하시고 슬퍼하셨다고 하면 말이 안된다. 주님은 전부터 여러번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십자가가 무서워서 고민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고민하고 슬퍼하셨는가? 십자가는 그냥 죽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창세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 가운데 택한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시는 것이다. 그 죄값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그 모든 사람의 저주를 대신 받는 순간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는 순간이다.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 하나님과 끊어지는 아픔과 고통을 겪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로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신데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끊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흠 없는 제물로 구속사역을 완성해야 되는데 육체를 가진 사람은 심한 고통을 당하면 자기도 모르게 원망 불평이 나올 수 있다. 자신과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흠없는 제물로 구속사역을 완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흠없는 제물로서 구속사역을 다 이루시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셔야 한다. 이 중압감과 책임감으로 힘든 순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십자가에 죽을 때 저주를 퍼붓고 욕을 하고 온갖 심한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귀를 막고 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은 일곱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사랑과 용서와 은혜의 말씀을 하셨다. 은혜 충만한 모습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기도로서 이루신 것이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시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해달라고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했다. 자기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십자가까지 순종하셨다. 위대한 순종을 보여주셨다. 


43절

주님이 간절히 기도하실 때 천사가 와서 힘을 주고 도와주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도 천사가 와서 도와주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하셨다.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 


44절

주님이 기도하신 모습이다. 기도를 얼마나 힘쓰고 뜨겁게 간절히 기도했는지 땀이 흘렀고 피가 섞여서 흘렀다. 심혈을 기울인 기도였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다. 기도하다가 피곤해지는 것은 복된 일이다. 기도하다가 땀이 나면 감사한 일이다. 기도하다가 목이 쉬면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큼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하다가 몸살 나봤는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면 그렇게 될 수 있겠나? 

주님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때 제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45절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주님은 한참 피땀 흘려 기도하셨는데 제자들은 다 잠을 자고 있었다. 깨어놓고 기도하고 오셨는데 또 잠을 자고 있다. 또 기도하고 오셨는데 또 자고 있었다. 마태복음에 세번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피곤한 것을 아셨다. "슬픔으로 인하여"라고 된 부분이 마태복음에는 "피곤함"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때 너무 피곤해서 못 일어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자게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깨우셨다. 세번 깨우셨다. 피곤해서 자는데 깨우시고 지쳐있는데 깨우셨다. 기도해야 산다고, 기도해야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우리를 깨워주시는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번쩍 일어나 주님과 함께 기도해야 하겠다. 

주님은 목숨을 바쳐 생명을 걸고 기도하셨다. 이렇게 기도에 승리하시니 십자가를 이기셨다. 기도에 실패한 제자는 다 도망을 가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46절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결심, 장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 많이 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써 기도해야 하겠다.

기도에 승리하신 주님께서 담대하셔서 승리하셨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 26:46)

기도를 마치시고 은혜 받은 주님께서 졸고 잠자는 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다. 상황이 바뀐 것이 없다. 죽이려는 자들이 가까이 왔다. 그러나 더욱 담대해 주셨다. 고민하고 슬퍼하셨는데 그런 마음 다 사라지고 담대하게 일어나 나가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다. 이렇게 승리하신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왔나? 기도 때문이다.

말세가 되면 세상에 큰 환난과 시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도 기도하면 은혜 입고 어떤 시험과 환난도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주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말씀을 붙들고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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