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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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1장 1-17절/고린도교회에 대한 축복과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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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6-29 21:22 조회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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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waROLuKEHN8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그 곳에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서 세운 교회이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뒤에 교회에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을 때 바울이 편지로 책망과 권면을 함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에 있는 교회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없다. 고린도서를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고 믿음생활 바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1절

"사도"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스스로 사도가 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임명한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시고 믿게 하시고 택하셔서 사도로 세워주셨다. 사도의 직분은 권위있고 존귀하다. 사람들이 무시할 수 있는 가벼운 직분이 아니다. 바울이 사도의 자격으로 고린도서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잘 지켜 순종해 나가야 한다. 


2절

교회의 정의가 나온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소유로 삼으시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돌보시는 교회임을 강조하신다.

교회는 무엇인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 그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라고 서론에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편지로 보내주신 말씀이다. 


3절

바울서신에 자주 사용되는 인사말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사람과 세상이 줄 수 없다.

은혜를 받으면 은혜의 결과로 마음에 참 평강과 기쁨이 생긴다. 은혜는 구속에 관한 신령한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것이고 은혜 받은 성도의 심령에 기쁨과 평강이 있게 된다. 


4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감사하노니" 항상 기도하며 감사했다. 고린도교회를 위해서 항상 감사의 기도를 했다. 감사한 이유가 뭘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한 것이다. 바울 자신이 받은 은혜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아무리 복을 받고 부흥되고 은혜를 받아도 내가 은혜를 못받으면 감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과 환난과 박해를 당하는 가운데 있지만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한다고 했다. 물론 뒤에 가서 보면 고린도교회에는 문제와 실수가 많았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더 많았음을 볼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가 참 많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5-6절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위해 감사하는 이유가 나와 있다. "모든 언변과 지식에 풍족하므로" 언변은 말 잘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 말씀을 가리킨다.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말씀을 가르쳤다. 고린도교회는 말씀이 풍성했다.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다. 바울을 통해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철저히 배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깊이 배운 교회였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이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그리스도를 바로 배워서 말씀과 지식이 풍성한 것이 은혜 중의 은혜이고 복 중의 복이다. 이것이 튼튼해야 진리 위에 굳게 서 나가는 교회가 될 수 있다. 


7절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고린도교회에 은사가 풍성했다. 은사에 대해서는 12장 이하에 자세하게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면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다. 


8절

고린도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 재림하시는 날 책망하실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소망하며 감사했다. 재림하시는 날을 고대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 지금 힘들고 어렵고 문제가 많아도 그날을 고대하며 신앙생활 잘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끝까지" 예수님 재림 하시는 그 날까지, 그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잘 지키고, 낙오자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해야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역자들이 교회를 이동할 때가 있다. 한 교회에 있다가 얼마 후에 다른 교회로 갈 때가 있는데, 한참 지나서 전에 있던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가 있다. 가보면 한결같이 있는 성도들이 있고, 다음에 가면 안보이는 성도도 있다. 부득이한 경우도 있지만 낙심하고 믿음 잃어버리고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바울은 교회에 그런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다. 끝까지,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성도들이 말씀 잘 붙들고 믿음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 내고 큰 일을 하고 믿음이 좋아도 끝까지 가지 못하면 아름답지 못하다. 솔로몬이 얼마나 믿음 좋은 사람이었나? 일천번제를 드리고 전무후무한 지혜를 갖고 성전을 건축했다. 그런데 끝에 가서 변질된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고 다윗과 같이 믿음을 지키지 못했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마지막을 잘 장식했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주님 재림하시는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환난과 시험 가운데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9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다.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다. 기도하게 하시고 말씀 듣고 순종하고 믿음생활 하도록 인도해 주신다. 이 신령한 교제가 끝까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신실하신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들어주시기를 소원하고 있다. 


10-17절은 분파와 당파에 대한 권면이다. 


10절

"형제들아"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고린도교회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분쟁, 당파였다. 오늘날 교회에도 종종 이런 문제가 있기는 한데 좋은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배척하는 일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분열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악한 일이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갖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라" 하나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 마음, 자기 뜻이 사라져야 한다. 나는 내 마음, 내 뜻을 주장하고 저 사람은 자기 뜻을 고집하고 나가면 절대로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없다. 자기 뜻은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모든 성도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계신다. 성령님의 인도와 주장을 잘 받으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성령님은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반면에 사탄은 갈등하게 하고 싸우게 하고 나눠지게 한다.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12절

고린도교회에 생겨난 당파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 넷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리스도파는 예수님만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 파도 저 파도 싫다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마귀 역사이고 절대로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당파 만드는 것 다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당파가 있을 수 없다. 


13절

그리스도는 나눠질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넷으로 갈라져서 다투고 싸우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는 일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주님이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주님의 구속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세례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 파다' 라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만 믿고 따라가야 한다. 


14-15절

바울이 세례 문제를 여러번 말했는데, 당파가 만들어진 이유 가운데 누구에게 세례 받았는지에 따른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여러 파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자기를 따르는 바울파에 속한 자를 먼저 책망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세례를 많이 베풀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파라고 하면서 당파 만든 것을 없애라고 했다.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부터 제재하고 있다. 그래야 당파가 없어질 수 있다. 자기를 지지하는 자들은 두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자들만 제재하면 당파가 사라질 수 없다. 목사님들 때문에 생기는 당파들이 있다. 그러면 목사가 자기 지지하는 사람들부터 제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목사 세습하려고 하는 경우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야 당파가 없어질 수 있다. 바울에게 세례 받고 바울에게 은혜 받은 것을 말하면서 바울을 따르려고 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이라고 바로 알려주었다. 


16절

바울이 세례 준 사람이 몇명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을 지지하는 당파를 없애라고 말하고 있다. 


17절

세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하면 세례를 받는다. 세례는 매우 중요하다. 신앙생활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교회의 일치와 단합이 더 중요하다. 교회의 단합을 깬다면, 누구에게 세례 받았다고 하면서 분열하면 안된다. 

바울은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세례 베풀게 하려 함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게 함이라고 했다. 세례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세례는 바울이 아니어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세례 주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바울도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복음을 전해서 생명 살리는 일에 더 중점을 두었다. 세례보다 복음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세례보다 교회의 일치와 단합이 더욱 중요하다.

바울은 전도할 때 말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증거했다. 자기가 말을 잘해서, 말 제주로 전도해서 바울을 위대한 사람으로 알고 바울을 따르는 자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주님만 믿고 주님만 따르는 자가 되게 하려고 힘을 썼다. 


교회는 편이 갈라지면 안된다.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 안에서 교회가 하나되고 일치되어야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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