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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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0 주일오전예배 설교(창세기 47장 7-10절/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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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7-10 15:17 조회7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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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yDxqQgptCaM


야곱은 유난히 축복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형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으려고 꾀를 쓰고,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습니다. 형에게 팥죽 한 그릇도 그냥 주지 않고 팔아먹은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귀하게 여긴 것을 잘한 것이지만 그러나 욕심으로, 그것도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였고, 그곳에서 양을 치면서 잔꾀를 부립니다. 건강하고 살진 짐승이 자기 것이 되게 하려고 애씁니다. 야곱은 참으로 악착같이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축복을 받기 위해 애쓰던 야곱이 이제 나이를 먹고 늙어서는 남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축복을 받으며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더 아름다운 일입니다. 본문에는 야곱이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서 바로 왕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세상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바로 왕과 초라한 노인 야곱이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어떤 모습이 연상 되십니까? 바로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연상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1. 바로에게 축복하는 야곱

7절에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는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인 애굽의 왕입니다. 애굽 최고의 자리에 앉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살고 있습니다. 총리 요셉이 아니면 야곱은 바로 왕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야곱은 초라하고 늙고 힘없는 노인입니다. 7년간의 극심한 기근으로 온 나라에 양식이 끊어지고 굶어 죽게 된 상황에서 애굽의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입니다. 남에게 축복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형편에 있는 야곱이 바로 왕을 만나자마자 축복합니다. 바로 왕에게 축복받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바로 왕보다 복 있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8-9절에 보면 바로가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그러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은 야곱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말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로 비유한 것은 이 세상이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세상에 잠깐 살다 가는 순례자입니다. 나그네는 세상에 애착이나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잘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바로 왕에게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13-16에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들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하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10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은 바로 왕을 처음 만났을 때 축복하고, 돌아서 나오면서도 축복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바로 왕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도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내 아들 요셉이 잘 보살펴주십니다. 우리 가족들 신세 지러 왔으니 잘 도와주십시오.’ 이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믿음이 성숙했습니다. 참 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복을 누가 주는지 알았습니다. 바로에게 당당하게 축복하고 당당하게 인사하고 나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이렇게 축복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축복하십시오. 그리고 돌아서 나올 때 또다시 축복하십시오. 인간관계를 이렇게 가꾸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축복하며 만났다가 축복하며 헤어지는 관계가 참 좋습니다.


2. 자손들에게 축복하는 야곱

야곱은 바로 왕에게 축복하였고, 요셉의 아들들 즉 자기 손자들에게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손을 어긋 맡겨서 오른손은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48:9에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야곱은 또 죽기 전에 자기 열두 아들에게 축복합니다. 창세기 49:28에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신앙의 지도자 위치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위치에서 자녀들에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의 축복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믿음으로 자녀들의 장래를 예언합니다. 

야곱은 가는 곳마다 축복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했습니다. 야곱이 전에는 가는 곳마다 욕심을 부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속이고 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다투고 싸웠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제는 가는 곳마다 축복하고 다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화된 것입니다. 성숙해진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축복하며 살아갑시다. 자녀들에게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남편을 칭찬하고, 아내를 칭찬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는 가족들에 대한 축복에 인색합니다. 우리가 바꿔봅시다. 

야곱은 젊을 때는 축복을 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고,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해서라도 자기만 복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돈을 더 벌고, 물질적으로는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야곱은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9절).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20년이나 함께 살았던 외삼촌도 야곱을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야곱은 어디 가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너무나 이기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야곱의 신앙이 어리고 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남을 축복할 줄 아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3. 축복하는 사람이 높은 자임

축복받는 사람보다 축복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7:6-7에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설명하면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하면서 내가 당신보다 높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축복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높은 자리에 선 것입니다. 우리도 이왕이면 축복하는 자리에 섭시다. 그러면 존귀해집니다. 이 원리를 모르고 사람들은 남이 나에게 축복 안 해준다고 속상해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왜 받으려고만 합니까? 남 밑에 서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남들 위에 서는 방법은 남을 축복하면 됩니다. 


4. 성도는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복의 기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12:3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성도가 그런 위치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0:5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축복을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 가서도 축복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6:20에 보면 다윗이 자기 집에 들어갈 때,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집에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누가복음 6:27-28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의 요셉이 그렇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니까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가니까 감옥이 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니까 애굽 온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런 삶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 예수님이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13-16). 베드로전서 2:23-24에 주님은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욕하지 않고 고난을 받아도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남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일평생 항상 축복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4:12-13에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남들에게 욕을 들어먹을 때 오히려 축복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나는 항상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면서 어느 집에 가든지 평안을 빌라고 하시면서 그 사람이 복을 받기에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마태복음 10:11-13). 시편 35:11-13에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다윗은 원수가 악한 입으로 자기를 치고, 미워하는 말로 두르고, 아무 까닭 없이 거짓되게 미워하고, 악으로 다윗의 선을 갚고, 조롱할 때 다윗은 오직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도가 다윗 자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내가 복 받는 길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변화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무려 130년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시련을 겪으며 연단을 받고 징계를 받으면서 깨어지고 낮아지면서 믿음이 자라고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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