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7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7장 17-40절/결혼생활과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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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17-24)
2. 미혼과 결혼에 대하여(25-28)
3. 주 안에서 행할 것(29-40)
17절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앞에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해서 바울이 세가지로 답해주었다. 결혼했으면 분방하지 말고 서로 의무를 다하고 살라고 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면 독신으로 지내도 좋고 결혼할 마음이 있으면 결혼하라고 했고, 부부 가운데 신자와 불신자가 있는데 불신자가 함께 살고자 하면 갈라서지 말고 함께 살라고 했다. 단, 불신자가 갈라서자고 하면 믿음을 버리지 말고 갈라서도 된다고 했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서 말한 것이 17절이다. 결혼했으면 결혼한대로, 독신이면 독신인대로, 갈라섰으면 갈라선대로 형편 따지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이같이 하라고 했다.
18-19절
할례를 가지고 예를 든다. 할례 받았으면 받은 상태로 믿음을 지키면 된다. 할례 받지 않았으면 받지 않은 상태로 믿음생활을 잘 하면 된다. 할례 가지고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할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7장에 할례가 처음 시작되었다.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오실 것에 대한 언약의 표징이었는데, 언약의 실체이신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표징인 할례는 필요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말씀 지키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6)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상관이 없다. 구원에 도움이나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할례 때문에 고민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 이런 권면을 덧붙였냐면 바울은 복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증거했는데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덧붙인 자들이 있기에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20절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했다. 상황, 형편 상관 없이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21절
어떤 사람이 노예 신분으로 있다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구원에는 노예인 것이 상관이 없다. 신분, 지위고하는 구원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자유인이 될 수 있거든 자유인이 되라고 했다. 종으로 지내는 것보다 자유인이 되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종이라고 해서 믿음생활을 못하거나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성경에 하나님이 종의 제도를 인정해주신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많다. 민주주의에서는 종 제도를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왜 성경에는 종을 인정하는가? 성경에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1. 지나간 때에는 하나님이 묵인하시고 방임하신 것이다(행 14:16).
원래는 그렇지 않지만 지나간 때에 방임하신 것이 있다. 종의 제도와 일부다처제(첩)가 대표적인 예이다.
2. 제도 자체를 하나님이 한번에 바꾸시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성장하여 사람이 변화되므로 점진적으로 법과 사회제도가 바뀌게 하신 것이다.
3. 사람의 행복과 불행, 믿음생활 잘하고, 못하고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셉은 종살이하면서도 믿음생활을 잘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그가 노예로 살든지, 자유인이든지 상관이 없었다. 사울은 왕이면서도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지옥이었다. 마귀가 역사하여 번뇌하는 괴로운 고통의 삶을 살았다. 자유롭지 못했고 은혜 가운데 지내지 못했다. 종이라고 해서 항상 불행하고 믿음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인이라고 해서 항상 행복하고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형편에 있든지 그것 때문에 못한다고 하지 말고 어느 형편에 있든지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22절
신분이 종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자유인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마귀에게서 해방된 자유인이다.
자유인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은 자는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내 마음대로, 말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안된다.
세상 신분, 제도와 영적인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느 형편에 있든지 부르심을 받은대로 지내라고 했다. 어느 상황에 있든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면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양심에 꺼리낌이 없고 세상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신앙의 자유를 항상 누리면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2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바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삶, 생명이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인이지만 주를 위해서 말씀 지키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종노릇을 하면 안된다. 권세와 형편과 상황에 매여서 신앙이 빼앗긴채로 살면 안된다.
신앙의 자유를 참으로 누린 대표적인 자가 다니엘이다. 포로로 잡혀 왔지만 기도하고 말씀 순종하며 믿음을 지켰다. 박해와 방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승리했다.
24절
할례를 받았든지 안받았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결혼했든지 미혼이든지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살라는 것이다. 결혼하게 하셨으면 결혼하고 사는 것이고 독신의 은사를 주셨으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 비판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사와 뜻 안에서 믿음 지키며 담대하게 걸어가야 한다.
25절
"처녀에 대하여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 총각에 대한 말씀이다.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께서 살아계실 때 직접 가르쳐주시지 않았지만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주신 말씀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바울이 자기 의견, 생각을 말한다. 결혼이 좋은가? 독신이 좋은가?
성경 전체의 원리는 결혼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2)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고 가정의 원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바로하는 것이다.
26절
그런데 바울이 독신으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당시를 비상상황으로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큰 환난이 닥칠 것을 보았다. 당시에 성도들에게 큰 박해가 있었다.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주님 재림 직전에 말세 극심한 환난이 있을 것을 내다보았다. 이것을 전제로 하여 그냥 지내는 것이 낫다고 한 것이다. 바울이 결혼을 부인한 것이 아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 7:29)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고전 7:31)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한 것으로 본 것이다. 세상 끝날이 곧 올 것으로 보았다. 이런 조건 안에서 바울이 말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바울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고, 결혼을 부인했다고 해석하면 안된다.
27절
"아내에게 매였느냐?" 결혼한 상태를 의미한다.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사별 등 혼자 된 상태를 의미한다.
28절
결혼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했다.
29-31절
비슷한 전제를 가지고 몇가지를 길게 설명한다.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것이 중요하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배우자에게 너무 집중해서 믿음생활 못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상태로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또 지나치게 슬퍼하므로 믿음생활을 못하면 안된다고 했다. 세상 살다보면 기쁜 일도 있다. 일이 잘되고 성공하고 유익이 있고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는데 기쁨에 취해서 주님 잊어버리고 세상 쾌락에 빠져 믿는 일 못하면 안된다. 사업을 해서 유익을 많이 얻은 경우에 거기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마음 빼앗기지 말고 신앙의 손해를 보지 말라고 했다. 좋은 물건을 사서 그 재미에 푹 빠져 지내지 말고 다 쓰지 못하는 것같이 세상 것은 내려놓고 믿는 일 중심으로 힘쓰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기쁜 일, 슬픈 일, 많이 가진 것, 많이 가지지 못한 것도 다 지나간다. 세상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32-34절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일반적인 내용을 말했다. 일반적으로 결혼한 자는 배우자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오해하면 안된다. 부부가 서로 기쁘게 해주고 위해주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대면대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 9:9)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아내와 남편을 너무 기쁘게 하려다 보면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생활 중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겠다. 부부간에 행복하고 기쁘게 지내는 것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
35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나와 같이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올무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사람보고 자기처럼 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 19:11~12)
독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독신을 유행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믿는 자는 그런 유행을 따라가면 안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을 잘 확인해야 한다. 정말 독신으로 살라고 부르셨다면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살면서 충성, 헌신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따라 믿음으로 해나가야 한다.
36-38절
결혼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 말씀도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결혼하는 자가 주님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가 신앙생활을 못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은사가 있고 사명을 위해서 독신으로 사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정을 이루며 신앙생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39절
결혼한 상태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매여 있다. 그러나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는 재혼할 수 있다. 그때 주 안에서 해야 한다. 믿음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40절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 그래서 독신생활을 하는 것이다.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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