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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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0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3장 1-9절/성도와 교역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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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7-20 20:59 조회6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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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PAg3Js8vLjQ


1. 신령한 성도와 육신에 속한 성도(1-4)

2. 교역자와 교인과의 관계(5-9) 


2장 끝부분에 육신에 속한자, 신령한 자가 언급되었다. 본문에도 이 두그룹의 사람들이 나온다. 


1-4절

육신에 속한 자가 어떤 사람인가?

육신에 속한 자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한 자이다. 구원받은 자가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나지 못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있다. 그래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불신자와 비슷하다. 거듭난 자가 자라나지 못하니 육신적인 생각을 한다. 분명히 믿는 사람인데 실제 삶이 믿는 사람과 같지 못하다.

네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이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한다. 새생명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같다. 장성하려면 말씀을 먹고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 중에는 믿은지 오래되었는데 믿음이 성장하지 못해서 어린 아이 수준에 있는 자들이 많았다. 


둘째, 육신에 속한 자는 젖은 먹지만 밥은 먹지 못한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갓난 아기 때에는 젖을 먹는다. 몇달 지나면 이유식을 먹고, 더 자라나면 밥알을 먹는다. 부드러운 생선살, 연한 것들을 먹인다. 그러다가 더 자라서 성장하면 밥과 고기를 먹이고, 어른이 되면 완전히 단단한 것도 다 먹을 수 있게 된다. 이와같이 나이에 따라, 성장 정도에 따라 먹는 것이 다르다. 

신앙이 어린 상태에는 젖을 먹어야 한다. 성경말씀 중에 쉬운 말씀이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가고, 복받는다는 말씀은 젖과 같은 말씀이다. 들으면 기쁘고 부담되는 것이 없다. 쉽고 유익한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단단한 식물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예를 들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원수를 사랑하라, 죽도로 충성하라 는 말씀은 아주 부담되고 지키기도 힘들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순종하기가 어렵다. 말씀을 듣고 시험에 들고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어린아이 때에는 젖과 같이 부드럽고 쉬운 말씀을 가르치지만 장성한 때에는 단단한 식물을 먹여서 힘을 쓰게 해야 한다.

왜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가? 장성한 사람에게는 젖이 힘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젖을 먹고 힘을 쓸 수 없다. 장성한 사람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많이 쓸 수 있다. 그래야 영양분을 많이 공급 받아서 힘이 강해지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고린도 교인 들은 믿은지 오래 되었는데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이었다. 바울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단단한 식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한다. 


단단한 식물이 뭔가?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단단한 음식의 특징, 첫째는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감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기분이 좋으면 잘 하고 기분이 안좋으면 믿음생활을 잘 못한다.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은 감정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생활을 한다. 속상하고 기분이 나쁠때에도 이겨낸다. 성도로서 책임을 감당하면서 믿음생활을 한다.

둘째, "연단을 받아"이다. 환난과 시험이 올때 잘 참는다. 연단을 많이 받으면 믿음이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훈련이 된다. 나중에는 왠만한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연단받지 못한 상태여서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떼쓰고 말을 듣지 않는다.

셋째, "선악을 분별하는 자"이다. 성경말씀의 지식이 풍부해서 선과 악을 잘 분별한다. 이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의 특징이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할 이유이다. 젖만 먹어서는 이런 수준에 이를 수 가 없다.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 셋째는 "시기와 분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내고 다툰다. 아이들은 작은 것 가지고 싸운다. 자기만 알아달라고 하고, 자기만 위해달라고 한다. 부모가 동생 안아주면 큰 아이가 자기도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어린아이라서 그런 것이다. 어른들이 먹을 것 가지고, 과자나 장난감 가지고 싸우면 얼마나 우스운가? 성숙하고 장성한 자가 되면 시기와 분쟁이 없어진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서로 섬기는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넷째는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자기 감정, 기분, 욕심에 따라 끌려다니면서 사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자기 인간적인 감정을 따라간다. 그리고 편을 갈라서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당파를 만든다. 자기 편이 아니면 싸우고 미워하고 대적한다. 자기 편끼리 똘똘 뭉쳐서 싸운다. 모두 유치한 것들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말씀을 전해서 세웠다. 아볼로와 베드로도 설교를 했다. 바울의 설교의 특징은 논리, 조직적이다.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보면 참 논리적이다. 아볼로는 구약에 능통한 자였다. 베드로는 인생이 나그네인 것을 강조하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을 강조한다. 여러 사람을 통해 배우면 다양하고 풍성하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성숙하지 못해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 사람을 따라 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다 육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신앙생활은 사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을 나누고 찢을 수 없다,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도, 깨닫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다. 어린아이에게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싸우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해도 또 싸우고 욕심 부린다.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다. 장성해지면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유치한 일들을 버린다. 그러므로 성숙해져야 한다. 영적으로 어른과 같은 자리에 서야 하겠다. 


5절

바울은 당파 만들어서 시기하고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책망한다. 아볼로와 바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사역자"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 하나님의 종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구는 더 귀하고, 덜 귀하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서로 편 가르지 말고, 누가 더 중요하다, 위대하다고 나누지 말라고 했다. 


6절

농사적인 비유로 설명했다. 바울은 심었다. 말씀을 전해서 심는 역할을 했고, 아볼로는 물주는 역할을 했다. 바울이 심은 싹에다가 물을 줘서 자라나도록 도왔다. 바울과 아볼로가 각각 자기의 역할을 했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자라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심어도 자라나지 못하는 씨들이 있다. 심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물 준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높이고 존경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을 따라 편을 가르면 안된다. 


7절

심는 바울, 물 주는 아볼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만 가장 귀하고 가장 높임을 받아야 되고 영광 받으셔야 되는 분이시다.

교회에서는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높아지고 대접받으면 안된다.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교회, 하나님 중심으로 뭉치는 교회, 하나님만 순종하면서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8절

교회의 파벌을 책망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의 영향을 받던지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했다. 바울, 아볼로,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배울 수 있지만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일꾼들은 자기들이 일한대로 상을 받을 것이고 온 성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을 따라다니면 안된다. 절대로 사람을 따라다니지 말라. 누구든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따라오게 만들려고 하지 말라. 그룹을 만들고, 편을 만들어서 자기가 대장 노릇 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다 옳지 않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일이다. 교만하고 위험한 일이다. 망할 일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존경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그래야 바른 교회이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9)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꾼으로 세움받아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동역자이다. 서로 원수, 대적이 아니다. 서로 적으로 생각하고 싸우고 대적하려고 하면 안된다. 동역자는 협력해야 한다. 싸우려고 하는 것은 다 잘못이다. 

바울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추종하지 말라고 했다. 누구든지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을 향해서 자기를 지지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당파가 없어진다. 자기 당파는 두고 상대편만 없애려고 하면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지지하는 자기 편을 깨부셔야 당파가 없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의 것이 아니다. 밭에서 씨가 심겨져서 자라나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알곡이다.

문제가 없는 교회는 이것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편 나눠져서 싸우는 교회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다. 모이기만 하면 싸운다.

미국  LA에는 싸우는 교회가 10개도 넘는다. 기를 쓰고 이기려고 재판을 한다. 그렇게해서 이기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누구라도 교회에서 당파를 만들면 악한 자이다. 절대로 지지하면 안된다. 아무도 따라가면 안된다. 한 사람이라도 편을 들면 세력이 된다.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당파를 만들어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은 교회 망하게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 잘되게 하려고 당파를 만든다고 한다. 당파가 없어져야 교회가 잘된다. 

교회 안에서 다투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모든 성도에게 해를 끼치고 전도의 문을 막는다. 마귀가 좋아할 일이지 아무도 좋아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씨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집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한상에서 먹고 마시며 찬양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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