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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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4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복음 6장 63절/영과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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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7-24 14:39 조회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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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4v0364BcPMM


오늘 말씀은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합니다.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고치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사람들의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적을 베풀어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이적은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하고,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신 것을 알게 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고 이튿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이들이 찾아온 것은 이적의 참 의미를 알고 온 것이 아니고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예수님께서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고 떡도 먹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말씀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하시고 ‘믿는 것이 먹는 것이다.’ 하시면서 어려운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떡은 아무리 먹어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하고 영혼을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은 떡이나 먹이고 병이나 고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영혼을 살리고 그들에게 영생 얻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사 떡이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지만,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 자는 나와 상관없다”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됐고 거부감을 가지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결론처럼 말씀하신 것이 본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이 말씀이 핵심이고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음

우선 생각할 것은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흙으로 육신을 만드셨습니다. 영과 육이 합하여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물은 육체만 있고 영혼이 없습니다. 따라서 동물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들에게는 영적인 고민이나 영적인 문제는 전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종족 번식하고, 그러다가 죽으면 없어집니다. 반면에 천사는 영물입니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천사에게는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우리는 원칙적으로 천사를 볼 수 없습니다. 천사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며,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물질적인 문제로 인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사람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인 육신과, 눈으로 볼 수 없는 비물질인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으로는 물질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만물을 다스리며 이용할 수 있게 하셨고, 영으로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몸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상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인 세계와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기 전에 영계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 보인다고 영혼이 없다고 하거나 천국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을 무시하고 육신만이 전부인 줄 생각하고 살거나, 신령한 세계를 부인하고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산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몸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처럼 잠간 머물다 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영적세계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물질세계만의 제한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신앙생활 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거의 전부가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이다, 지옥이다, 구원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천국 봤나, 지옥 봤나?’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에 주님을 찾아왔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주님,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날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라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은 영적인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니고데모는 그것을 물질세계의 것, 육신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르는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고 믿음 생활이 어려운 법입니다. 당장 예배 끝나고 집에 가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문제가 눈앞에 있습니다. 먹을 것 걱정해야 하고, 시험공부 해야 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해야 하고, 집세 낼 것 걱정해야 하고, 자동차 할부금 걱정해야 하고, 아이들 학비 걱정해야 하고, 에어건 고장 나면 고쳐야 하고, 참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막 닥쳐옵니다. 이것들은 전부 물질적인 문제이고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일들이 막 부딪혀 오는데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대부분 하늘나라에 속한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들을 가르치니까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 영혼이 예수님을 믿을 때 다시 살아나고, 그 거듭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자라나야 하고, 그리고 몸이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고 하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아라.’ 하면서 영적인 말씀들을 전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본질은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세상적인 문제도 취급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가 우선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세계를 모르고 신령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 믿기 전에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영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서 잘 살 생각만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인간에게 영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천국과 지옥 같은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어릴 때는 어디까지나 생각하는 것이 육신 중심이고, 사는 것은 세상 중심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많이 배우고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점점 자라면 영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고, 신령한 것들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점점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점점 달라집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것보다 영혼에 관련된 것을 더 귀히 여기고,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더 귀히 여기고, 세상 나라의 것보다 하늘나라의 것을 더 귀히 여기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귀히 여기게 됩니다. 믿음이 더 자라서 아주 신령한 사람이 되면 육신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은, 먹고 입고 자는 정도로 만족하고, 그 이상의 것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영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물질적인 손해도 얼마든지 감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돈 좀 적게 벌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감당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좋아진다는 말은 물질적인 것을 초월해서 점점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먼저 모세를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24-26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마귀가 사람을 시험할 때 주로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먹는 문제, 명예영광 문제, 권세 문제, 정욕 문제 등 전부 육신에 속한 것이고 물질에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물질에 대해서 초월한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사드라,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우상에게 절하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왕이 직접 설득해도 소용없습니다. 풀무불에 던진다고 해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이 건져주실 줄로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왕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바울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성령이 바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그럼에도 바울은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생명까지도 초월하고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물질과 육체의 생명을 초월하여 살면 세상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2. 주님 사역의 목적은 영을 살리는 것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영이시며 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에 대한 교훈을 육으로 이해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영으로 생명을 살리고 살아 있게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해야 유익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영을 살리러 오신 분입니다. ‘육은 무익하니라’ 말한 것은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 육신은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영혼이 떠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을 때 육신도 귀한 것이지만 그러나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영혼이 나 자신의 본질이고 주체입니다. 영혼이 더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영을 살릴 수 있을까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뜻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앞에서 하신 말씀, 즉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고 한 그 말은 문자적으로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의미로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살을 먹과 내 피를 마시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 믿는 자를 성령이 거듭나게 하십니다. 말씀과 성령 외에 다른 것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먹으러 온 자들에게 신령한 말씀을 가르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은 말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 유대인들은 진리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먹을 것을 많이 주고, 병 고쳐주는 것만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근본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먼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신앙생활은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으로 난 것은 백번을 다시 낳아도 육입니다. 육의 사람은 아무리 공부하고 수양하고 노력해도 육의 사람입니다. 육의 사람이 변해서 영의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에 의해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야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속에 이런 영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신의 생명과는 다른 영적으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이 영적인 일을 이해하고 신령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믿어지고 영적인 일들이 깨달아지고 신령한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신 것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적을 행하신 것도 영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병도 고치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런 모든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만들려는 수단으로 사용하신 것이고, 주님의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68절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가 참 아름다운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12-14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위에 것을 사모하고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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