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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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7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6장 1-8절/성도 간의 송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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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8-17 21:04 조회5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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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IOXMZAUlppY 


1. 성도 간에 불신 법정에서 송사하지 말 것(1-5)

2. 할 수 있는 대로 소송을 안 해야 함(6-8)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부끄러운 일 또 한 가지를 드러내어 책망한다. 성도 간 송사에 대한 문제이다. 교회는 거룩한 성도만 모이는 곳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아직 부패성이 있고 죄의 연약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믿음생활을 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 성도 간에 다툼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고린도교회 안에도 이런 성도 간의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서 처리하려고 하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성도가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불신자가 고소하거나, 성도가 불신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세상 법정에서 재판 받을 수 있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행 25:11)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다.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재판을 바르게 받아보고자 했다. 이처럼 성도도 세상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갈등을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세상 법정에서 재판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2천년 전 고린도교회에 고소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날도 교회 안에 소송하는 일이 참 많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고 말씀 배우고 교제하고 사랑으로 은혜 받는 곳이 교회이다. 하나님은 교회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돌보신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연결이 되고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영광이 가려진다. 


1절

성도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바울이 설명한다.

1절 끝에 "구태여" 라고 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법정 자체가 불의하다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는 불의하다는 표현이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지만 불신자는 불의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성도 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믿음으로 해결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세상 법정에서 고소 고발해서 재판 받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당시 재판은 성문 입구나 큰 광장에서 성읍 사람들이 다 모인 상태에서 재판이 벌어진다. 사건의 내용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고소하고 반박하고 재 반박하면서 잘못된 것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보통 부끄럽고 챙피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교회, 성도들이 불신자들 앞에서 경멸을 당한다.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전도의 문이 막힌다. 복음을 전해야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데 공개적으로 재판이 되면 전도의 문이 막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교회, 성도들 때문에 욕을 먹으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2절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성도를 판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구체적으로는 세상 마지막 날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성도가 함께 심판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불의한 것을 바르게 판단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성도는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 최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할 자이다. 

그런데 성도 사이에 일어난 작은 일을 판단하지 못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8)

예수님이 세상 심판하실 때 성도들도, 제자들도 열 두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성도의 위치가 존귀하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훨씬 높고 존귀한 자리에 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우리가 다 왕들이고 제사장들이다. 재판관의 자격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존귀하게 살아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바르게 판단하고 분별하고 살아가라고 하셨다.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성도는 세상을 판단하는 자인데 성도 간에 일어난 지극히 작은 일 조차 판단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3절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다. 시공을 초월해서 활동을 한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신비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인간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존재처럼 보이지만 본문은 우리가 천사를 판단한다고 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히 1:14)

천사는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한다. 천사를 판단할 일을 성도가 해야 한다. 특별히 타락한 천사인 마귀들을 예수님이 최후 심판하시는데 성도가 주님과 함께 이들을 심판할 것이다.

천사도, 영적인 문제들도 성도가 판단할 위치에 있다. 하물며 세상에 속한 물질적이고, 사소한 것은 당연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신다. 말씀을 통해 지혜를 배워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안믿는 일반 사람들과 성도는 다르다. 세상과 천사를 판단할 수 있는 존귀한 성도가 교회 안의 문제를 잘 조절하고 해결해야 한다.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 없는 집안은 없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다. 사방으로 소문내고 집안 사람들을 망신줘서 다른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집안에 흉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교회 전체의 흉이 되는 것이다. 


4절

바울이 책망한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할 자가 하나도 없어서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신자에게 재판을 받으면 얼마나 원통하고 속상한 일이냐고 책망한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6)

믿음을 잘 지키고 말세의 여러 환난과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예수님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이기고 승리한 자를 예수님의 보좌, 왕의 자리,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성도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은혜와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모르고 성령의 인도와 감동도 없다. 영적이고 신령한 것에 깜깜한 자이다. 이들은 교회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인 것이다. 존귀한 성도가 불의하고 말씀을 모르고 성령도 모르는 자에게 재판을 받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5절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어른들이 다투다가 해결을 못해서 아이에게 가서 물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같은 상황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문제 해결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불신 재판을 받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성도는 무슨 일이 생기든지 간에 교회 안에서 해결하고 믿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말씀으로 해결하고 기도로 해결하고 그래도 안되면 믿음의 선생들과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이다.

교회에서 판단을 해줄 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응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복있는 모습이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출 22:28)

자기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6절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이런 고발 자체가 합당하지 않다. 더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재판을 받는 것은 더 부당한 일이다. 


7절

피차 고발한 것 자체가 "뚜렷한 허물"이다.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왜 재판을 하는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내용이다. 왜 세상 법정에까지 가서 송사를 하는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생각과 내용을 바울이 다 짐작하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내 것을 절대 잃지 않으려는 욕심, 어떻게든지 내 것을 지켜야 되겠다는 욕심, 상대방의 것까지라도 빼앗아야 되겠다는 욕심으로 고소 고발하고 세상 법정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겨봤자 얼마나 유익이 되겠는가? 성도 간에는 차라리 속고 불의를 당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재판에서 이겼다고 하면 개인적으로는 이겼어도 교회 전체로는 손해를 본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진 것이다. 나 개인은 재판에서 이겨서 유익이라고 할 수 있어도 신앙적으로는 손해를 본 것이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재판을 하겠다는 것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어코 이기려고 재판을 하는 건데 합당하지 않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38~44) 


주님은 하늘 보좌 영광을 내놓고 희생하셔서 이 땅에 오셨다. 사람이 되셔서 종살이 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죄를 대속하셨다. 이렇게해서 세워놓은 것이 교회이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구원한 것이 성도이다. 주님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주님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 되고 주님이 손해보신 것처럼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8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불신자의 가치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이 이미 불의를 행하고 있다. 불신 법정에 송사한 것 자체가 불의이다. 그리고 옳지 않은 소송을 하면서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속이는 일이다.

아무리 자기는 옳은 것 같아도, 소송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어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속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너희 형제로다" 핵심을 콕 찝어서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다. 집안에 큰 갈등이 생겼다. 아브라함이 잘 해결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방 사람들이 볼 때 덕스럽겠지만 잘못하면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우리는 한 친족이다"라고 말하고 다투지 말자고 했다.

양, 사업, 돈보다 같은 친족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서 양보한다.

누가 복을 받겠는가?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다. 그 말씀을 하는 것이다. 이 한가지만 붙들어도 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고 온 교읹들은 형제라는 사실만 붙들면 세상 법정으로 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재판을 하지 않는 교회와 성도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갈등, 재판하는 일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일이다. 굉장한 문제이다. 교회들이 재판을 많이 하고 수년째 재판이 이어지는 일들이 있다.

해결도 나지 않는 문제를 갖고 계속해서 싸운다. 교회를 욕먹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전도 문에 막히고 자신도 욕을 먹는다.

우리는 깨달아서 이런 길을 가지 않도록 스스로 믿음으로 은혜로 잘 해결하고 승리의 길 가기를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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