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수요예배 설교(고린도전서 6장 9-20절/죄를 떠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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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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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9-20절 죄를 떠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 불의를 떠나라(9-11)
2. 음행을 피하라(12-18)
3.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19-20)
9-11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성도에게 최고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가 있다고 했다. 불의한 자이다. 언뜻 오해하기 쉬운 내용인데 의와 선을 행하면 그 행위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불의와 악을 행하면 그 행위 때문에 천국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하면 성경 전체의 말씀과 맞지 않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런데 교회 나오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아닌지 알기 쉽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믿음은 삶을 통해서 입증을 한다. 삶이 불의하다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참 신자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참 신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내용을 갖고 이해해야 본문에 적합한 해석을 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에 삶이 엉터리인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성도 간에 소송하고 음행을 저지르고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행함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미혹을 받지 말라" 고 말하고 죄를 주욱 나열한 다음에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받았으므로 행동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유 방종주의이고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폐법주의 정신이다. 오늘날도 이렇게 치우치는 경향이 종종 있다. 앞의 내용은 맞는데 뒤의 내용은 틀렸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구원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만 강조하고 치우치니까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 않으니까 행함에 대해서 중요성을 망각하고 불의를 행하고 잘못을 하면서도 심각하게 깨닫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받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에 못간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은혜로 구원받지만 참 신자라면 행함이 의롭고 거룩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행함은 아무렇게나 하고 불의를 행하면 그런 사람이 참 신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욕,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다.
성적인 죄악들, 물질에 대한 죄악들, 방종, 방탕하는 죄악들, 인격모독하는 죄악들이다. 이런 죄들은 대체적으로 불신자들이 많이 짓는 죄이다. 이런 죄를 짓는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올바른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없다.
고린도 교회에 이런 자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불의한 자들도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와 깨끗이 죄씻음 받고 거룩함과 의로움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보면서 책망하고 권면하는 것이다.
참 믿음을 가진 진짜 성도들도 일시적으로 부패성에 빠져서, 육신의 욕심에 취애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다윗과 베드로가 그런 죄를 지었다. 참 구원받은 신자가 일시적으로 이런 죄에 빠지면 지옥에 가지 않지만 책망을 받는다. 그리고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믿는 사람에게 최고의 복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인데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신앙생활하는 삶이 뒷받힘 되어야 한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반드시 삶도 변화가 되고 행위도 따라야 참 신자라고 인정(증거)할 수 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앞에 언급한 죄에 빠져 지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에 죄를 사하고 구원하고 마귀를 이기고 병을 고치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죄씻음을 받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고 의롭다 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셨다. 불의를 떠나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인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함을 얻었다. 모든 성도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우리는 얽매인 것이 없다. 죄와 마귀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할 수 있지만 유익한 것도 있고 유익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할 수 있다고 다 하자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익한 것을 하라고 권면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전 10:23)
가하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할 수 있다고 다 하지 말라고 했다.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아야 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유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삼아 방탕하고 욕심 부리면 안된다.
무슨 유익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영적으로 유익이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옳은 일이라고 해도 거기에 얽매여서 종노릇하면 안된다. 옳은 일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가하다는 것에 종이 되어서 마음대로 살려고 하다보면 죄만 짓고 방탕하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절제하라는 것이다.
앞의 내용과 연결 시키면 음식을 내 마음대로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음식 먹는 것이 남에게 시험거리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면 절제해야 한다. 찬송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말씀 전하는 시간에 혼자 찬송하고 있으면 전체에 손해가 된다. 유익이 하나도 없다. 한가지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체의 유익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 없이 방탕, 방종하면 안된다. 이것이 유익한가? 덕이 되겠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도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13절
음식은 배를 위해서 있다. 배는 음식을 위해서 있다. 왜 음식 문제를 말하냐면, 고린도 교회가 송사할 때 음식, 물질 문제로 재판을 한 것 같다.
몸은 음란을 위해서 있지 않다고 했다. 고린도 교회에 음란죄가 들어와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교훈한다.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어서 욕심 대로 살면 안된다. 음식 때문에 남에게 시험이 되고 걸림돌이 되면 먹지 않는 것이 낫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시험이 된다면 평생 고기를 안먹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폐하신다고 했는데, 음식과 배를 가리킨다. 죽을 때가 되면 음식도 필요없고 육신도 사라진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는 동안에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인데 너무 얽매이면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지으실 때 음란하게 살라고 지으시지 않았다. 주를 위해 영광을 올려드리라고 지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에 쓰임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14-16절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지체는 몸의 일부분이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되어 있는 지체, 연합체이다. 그러므로 몸에 유익한 것을 먹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아가야 한다.
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죄가 들어와서 창녀와 음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창녀에게 합하는 자는 창녀의 몸과 한 몸이 된다. 그러므로 그런 음행죄에 빠지면 안된다. 주님과는 멀어지고 하나님과 원수되고 창녀와 하나가 되면 심판받고 망할 수 밖에 없다.
성도가 주와 합하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창녀와 하나가 되어서 몸이 더러워지면 그 몸은 징벌 받아 마땅하다. 몸을 욕망에 빠뜨려 죄짓는데 기울어지면 안된다. 우리의 몸이 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몸이 거룩한 도구가 되고 산 제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우리 몸은 존귀하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했다. 성도의 몸은 주님과 연합된 주님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존귀하고 소중하다.
18절
"음행을 피하라"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죄와 싸우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피하라고 말씀한다. 다른 죄는 싸워야 이기지만 음행은 피해야 이길 수 있다,
창세기 39장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다. 요셉이 그 여자와 있지도 않으려고 했다. 또 다른 때 그 여자가 또 유혹할 때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고 했다. 삼손은 피하지 않다가 음행죄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죄는 몸 밖에 있다. 그러나 음행죄는 자기 몸이 도구가 되어 몸에 죄를 짓게 되는 죄이다. 쉽게 말해 몸을 더럽히는 죄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지체인 몸을 더럽히는 것이기에 심각한 줄 알고 그런 죄를 짓지 말라고 했다.
19절
우리 몸이 어떤 몸인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깨우쳐 주고 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것이다. "내 몸"이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다. 사실 내 몸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 성경은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왜 하나님의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없던 존재인데 우리를 만드셨다. 처음에는 죄 없이 깨끗하게 만드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므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 그런 죄인을 하나님께서 값을 주고 구속하셨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지불하고 주님의 몸과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 안된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성령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주님께서 구속하셨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옛날 노예들은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형편이 달라진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행복하게 살고 악한 주인을 만나면 인생이 고달프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것이라도 조금도 섭섭하거나 안타깝게 여길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을 존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소중한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20절
그런즉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몸으로"를 강조하고 있다. 생각으로 입술로만 말고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아름답게 잘 가꾸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
소요리문답 제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으면 열심히 하고 영광이 되지 않는다면 멈춰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시고 영원토록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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