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8 주일오전예배 설교(창세기 43장 11-14절/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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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8-28 15:36
조회6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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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보면 야곱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5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야곱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의 일생을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거짓말 잘하고, 사기도 잘 치는 야곱이 어떻게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는가를 보여줍니다. 본문에 야곱의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고백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후 야곱은 변화됩니다.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야곱이 고백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1. 야곱의 삶
야곱의 삶을 한마디로 움켜쥐는 삶입니다. 내가 이겨야 하고, 남의 것이라도 빼앗으려고 하고, 한번 움켜쥐면 절대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형과 서로 싸우고, 태어날 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옵니다. 세상에 이런 아이 보셨습니까? 그리고 자라서는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을 팔고 장자의 명분을 삽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긴 것은 좋은데 형 에서가 배고플 때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은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고 ②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로 살 줄 안 것이 잘못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은 것은 그의 수단이나 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정했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꾀를 쓰지 않았다면 형 에서와 원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형을 피하여 도망가서 고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움켜쥐며 삽니다. 20년간 악착같이 일해서 움켜쥐고 나니 외삼촌 라반과 사촌들의 안색이 달라졌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어서 도망칩니다. 물론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시며 돕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야곱이 욕심을 품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켜쥐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 야곱의 갈등
그렇게 평생 움켜쥐고 살던 야곱에게 큰 갈등의 순간이 왔습니다. 야곱 가정의 형편을 보겠습니다. 1절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2절에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왔는데 다 먹고 남아 있는 곡식이 없습니다. 야곱은 식구들이 많습니다. 자식도 많고 종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애굽에 갔다 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굶어 죽든지,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 오든지, 살 길은 어느 길입니까?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 아니고, 방법을 모르는 것 아닙니다. 다만 결단을 못 내립니다.
드디어 야곱이 말합니다. “다시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 그때 유다가 말합니다. 애굽 총리가 ‘다음에 양식을 사러 올 때는 너희 동생과 함께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했기 때문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원망합니다(6절). 왜 애굽 총리에게 가정 일을 시시콜콜 말해서 아우가 있다고 했느냐고 따집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는 것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베냐민을 절대 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은 가장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으나 라헬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그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 동안이나 외삼촌 밑에서 일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라헬이 일찍 죽었습니다. 라헬이 죽자 야곱은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그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의 장사꾼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이제 라헬의 피붙이는 베냐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베냐민만은 절대 잃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야곱에게 베냐민은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양식을 사 오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됩니다. 양식을 사 오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베냐민을 절대로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다가 팔아버린 것처럼 베냐민에게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꼭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우상이 되어 있으므로 그 우상을 내놓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말하면서 아버지 야곱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9절에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 일에 유다가 나섰습니다. 유다는 손해 볼 결단을 하고 앞장섰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담보가 되겠다고 합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지고 동생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겠다고 합니다. 훗날 하나님이 이 유다를 귀하게 쓰십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오랫동안 고민하며 갈등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힘으로 아들 베냐민을 지키겠다고 생각하고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야곱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다 힘들었습니다. 고통의 시간만 연장되고 있었습니다.
3. 야곱의 결단
11절에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드디어 야곱은 결단을 내립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내려고 하면서 많은 선물을 보내 애굽 총리의 마음을 사려고 합니다. 야곱은 어려울 때마다 뇌물을 써서 위기를 넘기곤 했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도 선물을 준비했었죠?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많은 선물을 준비해서 앞서 보냅니다. 이것이 야곱의 처세술입니다. 이번에도 베냐민 보내려고 하면서 또 잔머리를 굴려서 많은 선물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 방법으로 애굽 총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사람은 뇌물에 약하다. 돈으로 안 되는 일 없다’ 야곱은 이런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13절에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야곱은 마침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 야곱의 입장은 무엇이었습니까? 베냐민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베냐민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에서 최고의 결단입니다. 피눈물 나는 마음으로 자식을 내놓은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결정이었습니다. 자기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베냐민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며, 우상적 존재였으나 마침내 그를 내놓았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쉽게 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었으면 죽었지 이렇게 내놓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우상이었습니다. 절대로 내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끝까지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베냐민을 내놓으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야곱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야곱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살에 낳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빼앗아 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삭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 부모가 모세를 계속 숨겨서 기르려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세 부모는 갈대 상자를 만들어서 모세를 떠내려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도 살고 모세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베냐민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들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권세가 베냐민입니다. 그 우상을 버려야 신앙이 바로 되고 앞길이 열립니다. 신앙이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된 신앙은 "살든지 죽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잃지 않으려고 하면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살려고만 하면 죽을 수 있지만 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살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나보다 더 잘 지켜주십니다.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른 자식들과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그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베냐민을 내놓습니다. 머리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베냐민만은 절대로 잃을 수 없습니다. 죽어도 못 보냅니다.’ 그런 야곱이 자식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맡기지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사업도 맡기고, 자녀도 맡기고, 노후도 맡기고, 죽고 사는 것까지 다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더 잘되게 하십니다. 시편 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베냐민을 맡겼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더 잘되었습니다. 야곱 가정에 살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양식도 사 오고, 베냐민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요셉까지 만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서 남은 인생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참으로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니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내 손으로 쥐고 있어야 안전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만은 절대로 놓을 수 없다고 하는 것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더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욕심만 부리던 야곱, 악착같이 움켜쥐고 빼앗으려고 하던 야곱, 욕심쟁이 고집쟁이 꾀쟁이로 살던 야곱이 변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변하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 이후 야곱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누립니다. 이 고백 후 신령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야곱이 좀 더 일찍 포기했다면 좀 더 일찍 이것을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130세에야 모든 것을 맡기고 17년 동안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좀 더 일찍 포기하고 일찍 놓았더라면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험악하고 힘든 세월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훨씬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삶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놓아야 한다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놓고 살면 평안하고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깁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평안을 누리며 사십시오.
창세기를 보면 야곱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5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야곱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의 일생을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거짓말 잘하고, 사기도 잘 치는 야곱이 어떻게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는가를 보여줍니다. 본문에 야곱의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고백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후 야곱은 변화됩니다.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야곱이 고백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1. 야곱의 삶
야곱의 삶을 한마디로 움켜쥐는 삶입니다. 내가 이겨야 하고, 남의 것이라도 빼앗으려고 하고, 한번 움켜쥐면 절대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형과 서로 싸우고, 태어날 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옵니다. 세상에 이런 아이 보셨습니까? 그리고 자라서는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을 팔고 장자의 명분을 삽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긴 것은 좋은데 형 에서가 배고플 때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은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고 ②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로 살 줄 안 것이 잘못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은 것은 그의 수단이나 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정했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꾀를 쓰지 않았다면 형 에서와 원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형을 피하여 도망가서 고생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움켜쥐며 삽니다. 20년간 악착같이 일해서 움켜쥐고 나니 외삼촌 라반과 사촌들의 안색이 달라졌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어서 도망칩니다. 물론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시며 돕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야곱이 욕심을 품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켜쥐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 야곱의 갈등
그렇게 평생 움켜쥐고 살던 야곱에게 큰 갈등의 순간이 왔습니다. 야곱 가정의 형편을 보겠습니다. 1절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2절에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왔는데 다 먹고 남아 있는 곡식이 없습니다. 야곱은 식구들이 많습니다. 자식도 많고 종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애굽에 갔다 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굶어 죽든지,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 오든지, 살 길은 어느 길입니까?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 아니고, 방법을 모르는 것 아닙니다. 다만 결단을 못 내립니다.
드디어 야곱이 말합니다. “다시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 그때 유다가 말합니다. 애굽 총리가 ‘다음에 양식을 사러 올 때는 너희 동생과 함께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했기 때문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원망합니다(6절). 왜 애굽 총리에게 가정 일을 시시콜콜 말해서 아우가 있다고 했느냐고 따집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는 것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베냐민을 절대 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은 가장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으나 라헬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그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 동안이나 외삼촌 밑에서 일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라헬이 일찍 죽었습니다. 라헬이 죽자 야곱은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그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의 장사꾼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이제 라헬의 피붙이는 베냐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베냐민만은 절대 잃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야곱에게 베냐민은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양식을 사 오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됩니다. 양식을 사 오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베냐민을 절대로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다가 팔아버린 것처럼 베냐민에게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꼭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우상이 되어 있으므로 그 우상을 내놓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말하면서 아버지 야곱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9절에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 일에 유다가 나섰습니다. 유다는 손해 볼 결단을 하고 앞장섰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담보가 되겠다고 합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지고 동생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겠다고 합니다. 훗날 하나님이 이 유다를 귀하게 쓰십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오랫동안 고민하며 갈등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힘으로 아들 베냐민을 지키겠다고 생각하고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야곱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다 힘들었습니다. 고통의 시간만 연장되고 있었습니다.
3. 야곱의 결단
11절에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드디어 야곱은 결단을 내립니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내려고 하면서 많은 선물을 보내 애굽 총리의 마음을 사려고 합니다. 야곱은 어려울 때마다 뇌물을 써서 위기를 넘기곤 했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도 선물을 준비했었죠?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많은 선물을 준비해서 앞서 보냅니다. 이것이 야곱의 처세술입니다. 이번에도 베냐민 보내려고 하면서 또 잔머리를 굴려서 많은 선물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 방법으로 애굽 총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사람은 뇌물에 약하다. 돈으로 안 되는 일 없다’ 야곱은 이런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13절에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야곱은 마침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 야곱의 입장은 무엇이었습니까? 베냐민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베냐민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에서 최고의 결단입니다. 피눈물 나는 마음으로 자식을 내놓은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결정이었습니다. 자기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베냐민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며, 우상적 존재였으나 마침내 그를 내놓았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쉽게 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죽었으면 죽었지 이렇게 내놓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우상이었습니다. 절대로 내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끝까지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베냐민을 내놓으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야곱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야곱을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살에 낳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빼앗아 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삭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 부모가 모세를 계속 숨겨서 기르려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세 부모는 갈대 상자를 만들어서 모세를 떠내려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도 살고 모세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베냐민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들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이 베냐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권세가 베냐민입니다. 그 우상을 버려야 신앙이 바로 되고 앞길이 열립니다. 신앙이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된 신앙은 "살든지 죽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잃지 않으려고 하면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살려고만 하면 죽을 수 있지만 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살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나보다 더 잘 지켜주십니다.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른 자식들과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그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베냐민을 내놓습니다. 머리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베냐민만은 절대로 잃을 수 없습니다. 죽어도 못 보냅니다.’ 그런 야곱이 자식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맡기지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사업도 맡기고, 자녀도 맡기고, 노후도 맡기고, 죽고 사는 것까지 다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더 잘되게 하십니다. 시편 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베냐민을 맡겼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더 잘되었습니다. 야곱 가정에 살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양식도 사 오고, 베냐민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요셉까지 만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내려가서 남은 인생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참으로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니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내 손으로 쥐고 있어야 안전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만은 절대로 놓을 수 없다고 하는 것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더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욕심만 부리던 야곱, 악착같이 움켜쥐고 빼앗으려고 하던 야곱, 욕심쟁이 고집쟁이 꾀쟁이로 살던 야곱이 변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변하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 이후 야곱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누립니다. 이 고백 후 신령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야곱이 좀 더 일찍 포기했다면 좀 더 일찍 이것을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130세에야 모든 것을 맡기고 17년 동안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좀 더 일찍 포기하고 일찍 놓았더라면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험악하고 힘든 세월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훨씬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삶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놓아야 한다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놓고 살면 평안하고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깁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평안을 누리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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