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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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21장 29-38절/말세 징조와 성도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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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5-25 21:19 조회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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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LmF9bwTJksw


29절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무화과 나무는 유대 나라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적이 있다. 열매는 없고 의식만 무성한 유대교가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든 나무는 열방을 가리킨다. 모든 나라를 보라는 것은 세상나라와 민족들에 대한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나무를 통해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무의 변화는 계절을 짐작하게 한다.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고 여름이 다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세상의 흐름과 말세의 징조들을 보면서 세상 끝날,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자체만 보지 말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시대를 분별하고 영적인 것을 깨닫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때가 어느 때이고 무엇을 할 때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0절

나무에 싹이 나서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자연히" 안다. 주님이 말씀하신 여러 말세 징조들을 보면서 말세,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야 한다. 알아야 준비할 수 있고 믿음으로 살 수 있다.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르면 믿음으로 살 수 없고 준비할 수도 없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2)

이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주후 70년에 로마 타이투스 장군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그리고 유대민족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서 1,900년간 나라 없이 방황했다. 그러다가 1948년에 독립을 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 말세 징조가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리키는 무화과 징조는 단회적인 사건이다. 지진이나 기근은 역사상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이스라엘의 독립은 역사적으로 한번만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것을 통해 말세가 가까이 왔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가 가까이 온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1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미혹, 난리와 소요의 소문, 나라간 전쟁, 기근, 지진, 박해, 환난 등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무화과 나무의 징조가 이루어졌고 세상 나라들에 대한 징조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주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32절

주님의 모든 말씀, 예언이 다 이루어진다.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이루어지지 않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 모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말세 징조들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그대로 안되면 성경말씀이 틀린 것인데, 그런 일은 없다.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말씀대로 환난, 전쟁, 기근, 지진, 전염병, 말로 할 수 없는 시험, 박해가 일어나겠지만 주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면 성도가 승리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까지 믿어야 한다. 


33절

천지보다 말씀이 더 권세 있고 능력 있고 크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이 천지보다 강한 것이다. 마지막에도 말씀으로 심판하신다. 환난과 징조도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고, 승리와 구원도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믿음으로 환난 때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34절

여러가지 말세 징조를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걱정하라는 말씀은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스스로 조심하라" 환난이 많이 일어나도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성도 스스로 타락해서 스스로 믿음을 못지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만 걱정한다. 전쟁, 기근, 지진, 박해를 걱정한다. 어디로 도망가면 안전할까? 그 생각만 한다.

문제는 스스로 조심하지 않고 방탕하고 술취하고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서 믿음을 못지키는 것이다. 성도가 신앙이 타락되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지 않으면 환난이 많고 환경이 변화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다. 깨어서 방주를 예비한다. 온 가족이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짓는다. 불신자들은 노아를 조롱하고 세상에 빠져 방탕하여 죄를 지으며 지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방탕하고 죄짓다가 홍수로 다 멸망당했다. 

홍수가 노아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홍수는 말씀을 믿지 않고 죄지은 자를 심판한 것이지 노아와는 상관이 없었다.

말세에 믿음을 지키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는 스스로 타락하는 것이다. 


첫째, 방탕함이다. 방탕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무절제하게 사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성도에게 "깨어라, 근신하라, 정신 차리라"고 말씀한다. 방탕한 자들이 너무 많다. 그것이 문제이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고 방탕하면 그것이 죄이고 주님 오실 때 부끄럽게 된다. 주님 만나는 자리에 믿음으로 설 수 없다. 삼가 조심하여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 술취함이다. 실제로 술을 마시는 것과 세상에 취해서 제정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도 술취함이다. 술이 시키는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비틀거리며 산다. 자신을 조심하지 않고 세상에 취해서, 쾌락과 방탕에 취해서 살면 마음이 둔해지고 타락된 생활을 하게 된다. 


셋째, 생활의 염려이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가 왜 죄일까?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염려는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염려하면 마음이 둔해진다. 영적으로 무뎌진다. 세상 것에만 집중하고 믿음으로 실지 못하게 된다.

주님이 말세 징조,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걱정하라는 것이 아니고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씀대로 되는 것을 믿고 구원과 심판도 말씀대로 될 것이다.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면서 승리하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방탕하고 술취하고 염려하면 짐승이 덫에 걸리는 것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삼가 조심해야 한다. 말세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셨다. 방탕해지지 않도록, 나태해지지 않도록, 술취하지 않도록 염려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 빠지면 실패한다. 


35절

환난의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어디 도망간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 전체에 환난과 재앙이 임한다.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노아 홍수도 지구 전체에 홍수가 난 것이다. 도망갈 수 없었다. 환난과 심판은 피할 수 없다. 


36절

"피하고" 장소적으로 도망갈 곳은 없다. 숨으면 환난을 당하지 않는 피난처는 없다. 그러면 "피하고"는 무슨 의미일까? 환난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지구 전체에 임할 건데, 그 때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는 것이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이것이 피난처이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면 환난과 재앙이 아무리 일어나도 문제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될 중요한 내용이다. 환난 때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품으로 피할 수 있다. 환난이 와도 이긴다. 

구약에 다니엘이 그렇게 살았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렇게 살았다. 말세 변천하는 세상에 수많은 환난과 시험이 올텐데 다니엘과 세친구처럼 살면 이길 수 있다. 다니엘서는 말세 성도에게 주는 본보기요, 교훈이다. 다니엘이 무시무시한 시험 환난을 당했지만 다 이겼다. 포로생활, 사자굴, 풀무불을 다 이겼다. 

말씀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피난처이다. 말세가 될 수록 걱정하지 말고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방탕, 술취함, 염려와 반대이다. 말씀 붙들고 믿음 지키면 피난처로 들어가는 것이고 모든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주님 앞에 믿음으로 설 수 있다. 


37절

주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가 많았지만 낮에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셨다. 주님은 끝까지 하실 일을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시간에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셨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낮은 일해야 할 때이다. 힘써 일하셨다. 말씀을 부지런히 전하셨다.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는 것은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셨다. 밤에는 일할 수 없다. 주님도 쉬셨다. 쉬는 것이 죄가 아니다. 하나님이 육체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도록 만드셨다. 쉬는 것은 주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사는 것이다.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정하신 것을 따라가는 것이 겸손한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반대로 되면 안된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밤에도 일하고 낮에도 일하면 안된다. 낮에는 부지런히 일하고 밤에는 자고 쉬어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것을 깨뜨리면 생활의 질서가 깨지고 병든다. 주님도 이렇게 사셨는데 우리가 거스리면 되겠는가?

밤에 감람산에 가서 쉬셨다. 그 산에서 기도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말씀을 묵상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재충전하시고 쉼을 가지셨다. 

우리는 안식일에 쉰다. 주일날 예배 드리고 말씀 듣고 기도하면서 쉰다. 그러면서 재충전한다. 육체는 쉬고 영적으로 은혜 받고 재충전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쉬셨다. 주님은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주님은 하나님을 안식처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까이하시면서 사셨다. 


38절

아침에 성전에 가면 주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니 모든 백성이 성전으로 나갔다. 주님은 끝까지 사명 감당하시다가 때가 되매 붙들려 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셨다. 


말세에 대해서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많은 사람들이 시한부 종말론에 미혹된다. 지금도 이것으로 미혹한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간과 장소를 안다고 하는 것은 성경 위반이고 이단이다. 모든 교단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절대로 속지 말라. 성경은 재림의 날짜, 장소에 관심 두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0~12)

거룩한 행실을 갖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다가 언제 주님이 오시든지 주님을 맞이하면 된다. 날짜 장소에 관심 두지 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아라. 매일 매일 이렇게 삶으로 영광 가운데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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