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2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1장 14-28절/귀신을 쫓아내시고 교훈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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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2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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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크게 세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낸 것이고, 둘째는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오는 내용이고, 세번째는 복 있는 자가 누구인가 라는 내용이다.
14절
어떤 사람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었다. 신체 기능상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 귀신을 쫓아내니 다시 말할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다고 했다.
본문에는 세가지 반응이 나온다. 첫째는 14절 끝에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다고 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니 다시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놀랐다(마 12:23).
15절
둘째는 많은 무리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억지 소리를 하며 비방을 했다. 이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역사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보통의 역사가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할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해서 억지 소리를 했다.
16절
세번째 무리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이들도 바리새인들이다. 금방 귀신을 쫓아내서 벙어리를 고쳐주시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봤으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믿기는 커녕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그런데 표적을 구하는 이유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셨지만 믿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며 비방하는 일들만 하고 있다.
좋은 일을 보면서도 감사하지 못한다. 기적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나쁘게만 생각하고 말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하는 일을 하고 만다.
바리새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믿을 증거를 다 보여주셨는데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영적으로 보자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은 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전도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른 말은 잘 하는데 복음은 전하지 못한다.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안된다고 한다. 말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다 해결된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능력이 생긴다.
나는 못합니다 하고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17절
예수님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생각을 다 아셨다. 예수님을 대적하며 비방하는 생각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망할수 밖에 없다. 적이 침략하지 않고 가만 두어도 무너지게 된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가만 내버려 두어도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18절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귀신 졸개를 쫓아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마귀끼리 싸웠다는 말이 된다. 마귀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억지 소리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해주셨다.
19절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바리새인들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이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한 일이라면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억지 소리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울 교훈은 귀신도 스스로 분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많다. 편을 갈라서 좌파, 우파로 싸우고 있다. 국가적 손실과 낭비와 피해가 많다. 힘을 결집 시켜서 다른 일을 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나라도 가정도 교회도 스스로 분쟁하면 안된다. 스스로 분쟁하면 약해지고 쪼개지고 없어지게 된다.
미국에 보면 한 지역에 한인 교회들이 없어졌다 생겼다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다시 세우고, 그러다가 또 없어진다.
반대로 서 나가고 강해지려면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고 단합하면 강해질수 있다. 외부의 적이 와도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된다. 스스로 다투어서 분쟁하여 넘어지는 일은 마귀도 하지 않는 일이다.
2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셨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귀신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통치하시는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귀신이 역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큰 은혜와 능력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믿지 않고 주님을 비방하고 대적만하고 있다.
21-22절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인생의 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생의 집을 잘 지키려면 강해야 한다. 그래야 누가와서 흔들거나 무너뜨리지 못한다. 마귀가 와서 늘 우리를 흔들고 시험하려고 한다. 세상의 공격이 강한다. 그래도 강한 자가 지키면 절대로 손대지 못한다. 말 못하게 하는 귀신처럼 내 인생 속에 들어와서 나를 방해하고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역사가 있다. 우리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수 없고 세상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집을 빼앗기지 않고 잘 지킬수 있는가?
마귀보다 강한 분이 오셔서 지켜주시면 된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면 능히 집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켜나갈수 있다. 예수님에게서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님 모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복받을 모습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니까 맹수들이 약한 동물들을 잡아 먹을때 무리에서 이탈되어서 떨어져나가는 한 마리를 추격해서 그 먹이가 지켰을때 잡아 먹는다. 무리 안에 있으면 잡아 먹히지 않을수 있다. 그런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잡아 먹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배울 교훈이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집을 지키면 좋지만 우리는 약하다. 내 힘으로 내 인생, 신앙을 지킬수 없다. 나보다 강한 대적이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마귀와 죄악의 시험과 유혹이 많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지켜줘야 감당할수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자이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 힘으로 뭐든지 다 해야 한다. 감당할수 없다.
23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함께 모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다. 빛과 어두움의 중간은 없다. 믿는 자와 불신자의 중간은 없다. 예수님과 마귀의 중간도 없다. 예수님의 편이 아니면 마귀의 편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야지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돕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면 결국 반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성도인가?
24절 부터는 한 귀신이 나갔다가 일곱 귀신을 데려온다는 말씀이다.
24절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갔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간 것이다.
25절에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이 있지 못하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간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라고 했다. 영적으로는 은혜 없는 곳으로만 다닌 것이다. 귀신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곳으로만 다닌다. 그래서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늘 곤고한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지옥을 가리켜 물 한방울도 없는 곳이라고 한다. 지옥간 부자가 물 한방울만 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다. 물이 없는 곳에는 쉼도 안식도 없다. 귀신이 지치고 피곤하여 옛날에 있던 사람에게서 다시 와보니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다.
집은 얼마나 크냐, 어떤 재료로 지었느냐 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에 누가 사느냐 이다.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개가 살면 개집이고, 도적이 살면 도둑의 집이고, 왕이 살면 왕궁, 마귀가 살면 마귀의 집, 성령이 계시면 성령의 전이다.
우리 마음 속에 누가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느냐에 따라 집의 특징이 완전히 달라진다.
말못하는 귀신이 들어와서 귀신이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성령이 들어와 계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그런데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마태복음 12: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그 집이 비어있었다고 했다. 청소도 되고 수리도 되서 좋아졌는데, 아직 주인이 없었다. 빈집인 것이 문제이다. 만약에 주인이 있었다면 귀신이 들어올수 없다. 그런데 주인 없는 빈집이니까 귀신이 나갔다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빈집을 폐가, 흉가라고 부르는데, 짐승들이 들락날락한다. 도둑도 들어와서 한번씩 쉬었다가 간다. 사람의 마음도 비어놓으면 아주 위험하다. 우리 마음에 주인이 들어와계셔야지 들어오시지 않으면 마귀가 엿본다. 주인이 없으면 마귀가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한다.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된다. 성령이 임재하여 함께 하는 사람이 되면 마귀가 손도 대지 못한다.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좋은 자동차도 누가 운전하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누가 내 마음 속에 와서 내 몸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선하게 살기도 하고 악하게 살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고 믿음으로 살기도 한다.
그래서 들어오는데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거한다고 했다. 더 악한 귀신이 있는 것 같다. 깡패 중에서도 더 무서운 깡패가 있는 것처럼 더 무섭고 악한 귀신이 있는 것 같다. 일곱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주인 노릇을 하면 더 악하게 죄를 짓고 인생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귀신이 한참 돌아다니다가 주인 없는 집으로 쏙 들어왔다. 결국 더 타락하게 되어 나중 형편이 더 악해지게 되었다. 믿다가 타락하게 되면 처음부터 안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된다. 전에 믿어봤다고 하고, 성경 읽어봤다고 하면서 더 강퍅하게 행동한다. 교회 비판만 한다. 하나님과 은혜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더 나빠진다. 믿다가 타락하면 무섭다.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를 보면 은혜를 받은 다음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을 배반하면 무서운 일이 된다고 경고하셨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우리는 절대 타락의 길, 죄악의 길에 빠지면 안된다. 김일서도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가 되어서 교회를 다 없애고 믿는 사람들을 다 죽였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잘 섬기고 살아야 은혜와 복을 받고 살수 있다.
27-28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은 한 여인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잉태해서 낳고 젖을 먹인 자는 마리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만 복있다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하고 젖을 먹일수 없지만 말씀을 듣고 지킬수는 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오병이어를 받아 먹은 사람은 얼마나 복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주님을 만나지 못해도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으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키고 행하면 복이 있는 자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복받는 길로 잘 걸어가야 하겠다.
본문에는 크게 세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낸 것이고, 둘째는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오는 내용이고, 세번째는 복 있는 자가 누구인가 라는 내용이다.
14절
어떤 사람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었다. 신체 기능상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 귀신을 쫓아내니 다시 말할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다고 했다.
본문에는 세가지 반응이 나온다. 첫째는 14절 끝에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다고 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니 다시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놀랐다(마 12:23).
15절
둘째는 많은 무리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억지 소리를 하며 비방을 했다. 이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역사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보통의 역사가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할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비방하기 위해서 억지 소리를 했다.
16절
세번째 무리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이들도 바리새인들이다. 금방 귀신을 쫓아내서 벙어리를 고쳐주시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봤으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믿기는 커녕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그런데 표적을 구하는 이유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충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셨지만 믿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며 비방하는 일들만 하고 있다.
좋은 일을 보면서도 감사하지 못한다. 기적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나쁘게만 생각하고 말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하는 일을 하고 만다.
바리새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믿을 증거를 다 보여주셨는데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영적으로 보자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은 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전도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른 말은 잘 하는데 복음은 전하지 못한다.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안된다고 한다. 말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다 해결된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능력이 생긴다.
나는 못합니다 하고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17절
예수님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생각을 다 아셨다. 예수님을 대적하며 비방하는 생각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망할수 밖에 없다. 적이 침략하지 않고 가만 두어도 무너지게 된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가만 내버려 두어도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18절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귀신 졸개를 쫓아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마귀끼리 싸웠다는 말이 된다. 마귀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억지 소리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해주셨다.
19절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바리새인들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이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한 일이라면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억지 소리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울 교훈은 귀신도 스스로 분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많다. 편을 갈라서 좌파, 우파로 싸우고 있다. 국가적 손실과 낭비와 피해가 많다. 힘을 결집 시켜서 다른 일을 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나라도 가정도 교회도 스스로 분쟁하면 안된다. 스스로 분쟁하면 약해지고 쪼개지고 없어지게 된다.
미국에 보면 한 지역에 한인 교회들이 없어졌다 생겼다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다시 세우고, 그러다가 또 없어진다.
반대로 서 나가고 강해지려면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고 단합하면 강해질수 있다. 외부의 적이 와도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된다. 스스로 다투어서 분쟁하여 넘어지는 일은 마귀도 하지 않는 일이다.
2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셨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귀신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통치하시는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귀신이 역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큰 은혜와 능력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믿지 않고 주님을 비방하고 대적만하고 있다.
21-22절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인생의 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생의 집을 잘 지키려면 강해야 한다. 그래야 누가와서 흔들거나 무너뜨리지 못한다. 마귀가 와서 늘 우리를 흔들고 시험하려고 한다. 세상의 공격이 강한다. 그래도 강한 자가 지키면 절대로 손대지 못한다. 말 못하게 하는 귀신처럼 내 인생 속에 들어와서 나를 방해하고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역사가 있다. 우리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수 없고 세상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집을 빼앗기지 않고 잘 지킬수 있는가?
마귀보다 강한 분이 오셔서 지켜주시면 된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면 능히 집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켜나갈수 있다. 예수님에게서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님 모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복받을 모습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니까 맹수들이 약한 동물들을 잡아 먹을때 무리에서 이탈되어서 떨어져나가는 한 마리를 추격해서 그 먹이가 지켰을때 잡아 먹는다. 무리 안에 있으면 잡아 먹히지 않을수 있다. 그런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잡아 먹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배울 교훈이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집을 지키면 좋지만 우리는 약하다. 내 힘으로 내 인생, 신앙을 지킬수 없다. 나보다 강한 대적이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마귀와 죄악의 시험과 유혹이 많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지켜줘야 감당할수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자이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 힘으로 뭐든지 다 해야 한다. 감당할수 없다.
23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함께 모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다. 빛과 어두움의 중간은 없다. 믿는 자와 불신자의 중간은 없다. 예수님과 마귀의 중간도 없다. 예수님의 편이 아니면 마귀의 편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야지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돕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면 결국 반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성도인가?
24절 부터는 한 귀신이 나갔다가 일곱 귀신을 데려온다는 말씀이다.
24절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갔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간 것이다.
25절에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이 있지 못하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간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라고 했다. 영적으로는 은혜 없는 곳으로만 다닌 것이다. 귀신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곳으로만 다닌다. 그래서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늘 곤고한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지옥을 가리켜 물 한방울도 없는 곳이라고 한다. 지옥간 부자가 물 한방울만 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했다. 물이 없는 곳에는 쉼도 안식도 없다. 귀신이 지치고 피곤하여 옛날에 있던 사람에게서 다시 와보니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다.
집은 얼마나 크냐, 어떤 재료로 지었느냐 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에 누가 사느냐 이다.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개가 살면 개집이고, 도적이 살면 도둑의 집이고, 왕이 살면 왕궁, 마귀가 살면 마귀의 집, 성령이 계시면 성령의 전이다.
우리 마음 속에 누가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느냐에 따라 집의 특징이 완전히 달라진다.
말못하는 귀신이 들어와서 귀신이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성령이 들어와 계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그런데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마태복음 12: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그 집이 비어있었다고 했다. 청소도 되고 수리도 되서 좋아졌는데, 아직 주인이 없었다. 빈집인 것이 문제이다. 만약에 주인이 있었다면 귀신이 들어올수 없다. 그런데 주인 없는 빈집이니까 귀신이 나갔다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빈집을 폐가, 흉가라고 부르는데, 짐승들이 들락날락한다. 도둑도 들어와서 한번씩 쉬었다가 간다. 사람의 마음도 비어놓으면 아주 위험하다. 우리 마음에 주인이 들어와계셔야지 들어오시지 않으면 마귀가 엿본다. 주인이 없으면 마귀가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한다.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된다. 성령이 임재하여 함께 하는 사람이 되면 마귀가 손도 대지 못한다.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좋은 자동차도 누가 운전하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누가 내 마음 속에 와서 내 몸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선하게 살기도 하고 악하게 살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고 믿음으로 살기도 한다.
그래서 들어오는데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거한다고 했다. 더 악한 귀신이 있는 것 같다. 깡패 중에서도 더 무서운 깡패가 있는 것처럼 더 무섭고 악한 귀신이 있는 것 같다. 일곱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주인 노릇을 하면 더 악하게 죄를 짓고 인생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귀신이 한참 돌아다니다가 주인 없는 집으로 쏙 들어왔다. 결국 더 타락하게 되어 나중 형편이 더 악해지게 되었다. 믿다가 타락하게 되면 처음부터 안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된다. 전에 믿어봤다고 하고, 성경 읽어봤다고 하면서 더 강퍅하게 행동한다. 교회 비판만 한다. 하나님과 은혜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더 나빠진다. 믿다가 타락하면 무섭다.
히브리서 6장 4절 이하를 보면 은혜를 받은 다음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을 배반하면 무서운 일이 된다고 경고하셨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우리는 절대 타락의 길, 죄악의 길에 빠지면 안된다. 김일서도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가 되어서 교회를 다 없애고 믿는 사람들을 다 죽였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잘 섬기고 살아야 은혜와 복을 받고 살수 있다.
27-28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은 한 여인이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잉태해서 낳고 젖을 먹인 자는 마리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만 복있다고 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하고 젖을 먹일수 없지만 말씀을 듣고 지킬수는 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오병이어를 받아 먹은 사람은 얼마나 복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주님을 만나지 못해도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으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키고 행하면 복이 있는 자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복받는 길로 잘 걸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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