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6 주일오전예배 설교(빌립보서 3장 7-14절/뒤에 있는 것, 앞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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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26 14:42
조회8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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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잘못 산 것들을 회개하고, 새로운 결심과 각오와 목표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13-14절에 보면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뒤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죄는 철저히 회개해야 하며,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고 붙들려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서, 과거에 얽매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새로운 날을 살지 못하고, 전혀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매여 항상 옛날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용서할 것은 용서합시다. 회개할 것은 회개합시다.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뒤로 던져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과거에 한 일들입니다. 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뒤에 있는 것이란 한 일을 의미합니다.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하고 잘못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도 과거에 잘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동참했고, 많은 교회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죄에 집착하여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실수나 잘못한 것에 매여서 계속해서 낙심만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좌절케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신 것은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서 믿음으로 달음박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잘못한 일이 많다면 지금부터 더 열심히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믿은 후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잘한 일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믿고 계속해서 전진하기를 힘썼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아무리 많은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만하지 말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잘하다가 교만해져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전진을 위해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불행했던 일이나, 과거의 고통스런 일이나, 과거의 억울한 일들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섭섭한 일이나, 가슴 아픈 일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그런 일을 당한 것만도 가슴 아프고 괴로운 일인데, 그것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미래까지 불행하게 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과거를 잊어버려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립시다.
둘째, 육체를 신뢰하며 살던 삶의 방식입니다. 5-6절에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팔일만에 할례받은 것, 이스라엘의 족속인 것, 베냐민의 지파인 것, 정통 히브리 사람인 것, 바리새인파에 속한 것, 열심이 많은 것, 율법에 흠이 없는 것 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특권의식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 방해되고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자기 신분이나 지위나 권세를 내세우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죄인의 신분으로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종교적 자만입니다. 바울이 전에 ‘나는 정통이다, 나는 보수다’ 하면서 자기만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자기가 표준이 되어가지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다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특징입니다.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잘못된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열심을 내면 낼수록 잘못됩니다. 그런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의 이러한 삶이 전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전에 유익하게 여기고, 전에 자랑하던 것들을 이제는 다 해롭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자랑하고 좋아하던 것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좀 더 알고, 예수님을 좀 더 발견하고, 예수님을 좀 더 닮아가려고 힘쓰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바울이 오래전에 버린 것들, 바울이 해롭게 여기고 내버린 것들을 아직도 붙잡으려고 쫓아가지는 않습니까? 뒤에 두어야 할 것은 뒤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앞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배우려고 힘쓰고,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고, 믿음의 진보와 성장을 위해서 달음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않고 자꾸만 뒤에 있는 애굽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소망으로 가야할 길을 원망과 불평하면서 갔습니다. 그만큼 고생하고 힘들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립시다.
2.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푯대를 정하고 그것을 향하여 열심히 달음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사는 지 모릅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왜 교회를 나오는지 아무 목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갑니다. 돈, 출세, 건강, 성공, 축복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푯대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푯대가 잘못된 것도 문제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푯대를 정하고 달음질해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고 상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푯대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한 가지 강력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8절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는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습니다. 율법에 통달할 만큼 배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좀 더 알고 닮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바울의 신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방해가 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내 신앙의 목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주님을 체험하는 신앙이 돼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입니다. 14절에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이 무엇입니까? 소명입니다. 바울은 그 소명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 부르심에, 소명에, 온전히 순종하고,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받을 수 있는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상을 푯대로 삼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생활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부르심, 소명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인생의 목표를 소명에 맞추어 설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인생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이 바울의 인생 목표였습니다. 신앙의 푯대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자기가 천국에 갔을 때 받을 상급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이미 복음을 많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은 주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도, 아직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신앙 상태에 만족하십니까? 나의 신앙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도 도전하고 힘써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힘쓰고 달음질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달음질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으로 준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파트에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쏟아 부읍시다.
우리 인생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일, 그것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일인 것입니다. 새해를 준비하고 설계하면서 바울처럼 목표를 정하고 달음질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푯대로 삼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소명이 무엇인가 깨닫고 그 소명을 이루어드립시다. 우리의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받을 상급을 바라봅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잘못 산 것들을 회개하고, 새로운 결심과 각오와 목표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13-14절에 보면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뒤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죄는 철저히 회개해야 하며,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고 붙들려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서, 과거에 얽매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새로운 날을 살지 못하고, 전혀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매여 항상 옛날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용서할 것은 용서합시다. 회개할 것은 회개합시다.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뒤로 던져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과거에 한 일들입니다. 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뒤에 있는 것이란 한 일을 의미합니다.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하고 잘못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도 과거에 잘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동참했고, 많은 교회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죄에 집착하여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실수나 잘못한 것에 매여서 계속해서 낙심만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좌절케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신 것은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서 믿음으로 달음박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잘못한 일이 많다면 지금부터 더 열심히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믿은 후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잘한 일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믿고 계속해서 전진하기를 힘썼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아무리 많은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만하지 말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잘하다가 교만해져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잘한 것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전진을 위해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불행했던 일이나, 과거의 고통스런 일이나, 과거의 억울한 일들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섭섭한 일이나, 가슴 아픈 일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그런 일을 당한 것만도 가슴 아프고 괴로운 일인데, 그것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미래까지 불행하게 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과거를 잊어버려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립시다.
둘째, 육체를 신뢰하며 살던 삶의 방식입니다. 5-6절에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팔일만에 할례받은 것, 이스라엘의 족속인 것, 베냐민의 지파인 것, 정통 히브리 사람인 것, 바리새인파에 속한 것, 열심이 많은 것, 율법에 흠이 없는 것 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특권의식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 방해되고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자기 신분이나 지위나 권세를 내세우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죄인의 신분으로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종교적 자만입니다. 바울이 전에 ‘나는 정통이다, 나는 보수다’ 하면서 자기만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자기가 표준이 되어가지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다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특징입니다.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잘못된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열심을 내면 낼수록 잘못됩니다. 그런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의 이러한 삶이 전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전에 유익하게 여기고, 전에 자랑하던 것들을 이제는 다 해롭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자랑하고 좋아하던 것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좀 더 알고, 예수님을 좀 더 발견하고, 예수님을 좀 더 닮아가려고 힘쓰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바울이 오래전에 버린 것들, 바울이 해롭게 여기고 내버린 것들을 아직도 붙잡으려고 쫓아가지는 않습니까? 뒤에 두어야 할 것은 뒤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앞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배우려고 힘쓰고,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고, 믿음의 진보와 성장을 위해서 달음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않고 자꾸만 뒤에 있는 애굽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소망으로 가야할 길을 원망과 불평하면서 갔습니다. 그만큼 고생하고 힘들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립시다.
2. 앞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푯대를 정하고 그것을 향하여 열심히 달음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사는 지 모릅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왜 교회를 나오는지 아무 목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갑니다. 돈, 출세, 건강, 성공, 축복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푯대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푯대가 잘못된 것도 문제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푯대를 정하고 달음질해야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고 상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푯대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한 가지 강력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8절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는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습니다. 율법에 통달할 만큼 배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좀 더 알고 닮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바울의 신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방해가 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내 신앙의 목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주님을 체험하는 신앙이 돼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입니다. 14절에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이 무엇입니까? 소명입니다. 바울은 그 소명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 부르심에, 소명에, 온전히 순종하고,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받을 수 있는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상을 푯대로 삼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생활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부르심, 소명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인생의 목표를 소명에 맞추어 설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인생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것이 바울의 인생 목표였습니다. 신앙의 푯대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자기가 천국에 갔을 때 받을 상급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이미 복음을 많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은 주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도, 아직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신앙 상태에 만족하십니까? 나의 신앙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도 도전하고 힘써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힘쓰고 달음질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달음질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으로 준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파트에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쏟아 부읍시다.
우리 인생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일, 그것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일인 것입니다. 새해를 준비하고 설계하면서 바울처럼 목표를 정하고 달음질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푯대로 삼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소명이 무엇인가 깨닫고 그 소명을 이루어드립시다. 우리의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받을 상급을 바라봅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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