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3 주일오전예배 설교(디도서 2장 11-14절/어떻게 살다 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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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2-1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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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장에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렇게 살았을까요? 그 부자의 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상처투성이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가난하면 이렇게 살았을까요? 둘 중에 누가 더 잘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자입니까? 거지 나사로입니까? 사람들은 모두 잘살기를 바라면서도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는데 보통은 돈이 많은 사람을 보고 잘 산다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부자라고 불러야 한답니다. 돈이 많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다고 잘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 산다는 것은 바르게 사는 것, 가치 있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부자도 잘살지 못할 수 있고, 가난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사셨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만족하십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면 괜찮겠다고 생각하십니까? 12절 끝에 “이 세상에 살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합니다.
1. 우리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삶. 인생의 삶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한번 잘못 살면 고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말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거냐?’ 또 ‘이번 생은 틀렸다. 망쳤다.’ 이런 말을 합니다. 마치 다음 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다음 생은 없습니다. 한번 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2022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속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은 편하고 쉽게 대충 살고 다음에 선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오늘이 내 날입니다. 오늘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나의 삶입니다. 하루 지나면 그것은 과거가 되고, 이력서가 되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아무리 권세 있고, 능력 있고, 지혜 있는 사람도 지나간 삶을 바꾸어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사는 것도 내 책임이고 못사는 것도 내 책임입니다. 세상 탓하지 마십시오. 남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둘째, 이 세상에서의 삶이 내세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함. 이 세상에서 예수님 믿으면 죽은 후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 믿지 않으면 죽은 후에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리 뉘우치고 후회해도 지옥에서 나올 수가 없고 저주와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말씀 하나라도 지키고 신앙생활 잘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작은 자가 됩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한 것에 따라 천국의 상급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2:6~8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음.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무슨 짓을 해도 죽으면 다 없어지고 마는 것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전도서 11:9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의 때는 힘이 있고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즐기며 방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나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보고해야 하는데 그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은 어차피 흘러갑니다. 하천으로 시궁창으로 더러운 곳으로 통과해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 물을 잘 다루면 꽃을 피우면서 흘러가기도 하고, 농사짓는 곳에 이용되어서 열매 맺으면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늙어갑니다. 되는대로 살면 소같이 살다 가기도 하고, 돼지 같이 살다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잘 관리하고 인생을 잘 관리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면 꽃피고 열매 맺는 인생으로 살다 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요것 살다가 죽을 것을 그때 왜 그랬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믿는 일에 좀 더 힘쓸 것을, 하나님의 일에 좀 더 열심 낼 것을, 그때 그 사람 용서할 것을, 가족들에게 좀 더 잘해줄 것을” 하면서 탄식합니다.
2.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모든 사람’이란 택함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대충 살아도 되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12절 이하에 버려야 할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첫째. 버리고(12절). 1) ‘경건하지 않은 것’이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게 사는 것, 즉 방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경건하지 않습니다. 온갖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삽니다. 디도서 3:3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도 전에는 이렇게 경건하지 않게 살았으나 이제는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새롭게 변합니다. 2) ‘세상 정욕’은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 영광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정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정욕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돈 많이 버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좀 번 후에는 어떻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이렇게 살아갑니다.
둘째. 살고(12-14절). 1) 신중함. 신중함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신중함은 방탕과 반대되는 것으로, 자기를 이기는 생활 즉 삼가 조심하는 생활 태도입니다. 자신을 이기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신중하지 못하면 방탕하고 타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나 자신입니다. 로마서 8:12-13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도들은 자기 속에 있는 죄악성과 싸워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자신을 잘 이기면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지면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시험에 넘어지는 것도 육신에게 지기 때문입니다. 죄짓는 것도 나 자신 때문입니다. 역사상 삼손만큼 힘이 세고 강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삼손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자기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왜 실패했습니까? 자기 자신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원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망치고 나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 인생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를 이겨야 합니다.
2) 의로움. 의로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져야할 자세입니다. 의로움은 불의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일도 바르게, 돈 버는 것도 깨끗하게, 생활도 의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의한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하면 손해 볼 때가 많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손해보더라도 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밀리더라도 의롭게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은 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빠른 길이고 복된 길입니다. 믿음이 좋아지면 순수하고 의로워집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빛 가운데서 산다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3) 경건함. 경건함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경건함이란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내 곁에 계십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계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은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말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막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경건의 모양만 내고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창세기 6:5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셨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계획을 세우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보셨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소돔 고모라도 경건치 않다가 멸망 당했습니다(벧후 2:6)
4) 주님의 재림을 기다림(13절). 성도는 복스러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과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생 복락을 누리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힘쓰게 되며 세상의 어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5)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함(14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은 선한 일에 열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에 보면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8에는 선한 일을 하라고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평생 쓰레기만 만들어 놓고 가는 인생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며 복된 인생 사기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렇게 살았을까요? 그 부자의 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상처투성이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가난하면 이렇게 살았을까요? 둘 중에 누가 더 잘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자입니까? 거지 나사로입니까? 사람들은 모두 잘살기를 바라면서도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는데 보통은 돈이 많은 사람을 보고 잘 산다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부자라고 불러야 한답니다. 돈이 많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다고 잘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 산다는 것은 바르게 사는 것, 가치 있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부자도 잘살지 못할 수 있고, 가난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사셨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만족하십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면 괜찮겠다고 생각하십니까? 12절 끝에 “이 세상에 살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합니다.
1. 우리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삶. 인생의 삶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한번 잘못 살면 고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말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거냐?’ 또 ‘이번 생은 틀렸다. 망쳤다.’ 이런 말을 합니다. 마치 다음 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다음 생은 없습니다. 한번 살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2022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속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은 편하고 쉽게 대충 살고 다음에 선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오늘이 내 날입니다. 오늘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나의 삶입니다. 하루 지나면 그것은 과거가 되고, 이력서가 되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아무리 권세 있고, 능력 있고, 지혜 있는 사람도 지나간 삶을 바꾸어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사는 것도 내 책임이고 못사는 것도 내 책임입니다. 세상 탓하지 마십시오. 남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둘째, 이 세상에서의 삶이 내세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함. 이 세상에서 예수님 믿으면 죽은 후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 믿지 않으면 죽은 후에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리 뉘우치고 후회해도 지옥에서 나올 수가 없고 저주와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말씀 하나라도 지키고 신앙생활 잘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작은 자가 됩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한 것에 따라 천국의 상급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2:6~8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음.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무슨 짓을 해도 죽으면 다 없어지고 마는 것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전도서 11:9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의 때는 힘이 있고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즐기며 방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나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보고해야 하는데 그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은 어차피 흘러갑니다. 하천으로 시궁창으로 더러운 곳으로 통과해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 물을 잘 다루면 꽃을 피우면서 흘러가기도 하고, 농사짓는 곳에 이용되어서 열매 맺으면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늙어갑니다. 되는대로 살면 소같이 살다 가기도 하고, 돼지 같이 살다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잘 관리하고 인생을 잘 관리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면 꽃피고 열매 맺는 인생으로 살다 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요것 살다가 죽을 것을 그때 왜 그랬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믿는 일에 좀 더 힘쓸 것을, 하나님의 일에 좀 더 열심 낼 것을, 그때 그 사람 용서할 것을, 가족들에게 좀 더 잘해줄 것을” 하면서 탄식합니다.
2.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모든 사람’이란 택함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대충 살아도 되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12절 이하에 버려야 할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첫째. 버리고(12절). 1) ‘경건하지 않은 것’이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게 사는 것, 즉 방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경건하지 않습니다. 온갖 탐욕으로 더럽혀진 세상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삽니다. 디도서 3:3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도 전에는 이렇게 경건하지 않게 살았으나 이제는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새롭게 변합니다. 2) ‘세상 정욕’은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 영광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정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정욕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돈 많이 버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좀 번 후에는 어떻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이렇게 살아갑니다.
둘째. 살고(12-14절). 1) 신중함. 신중함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신중함은 방탕과 반대되는 것으로, 자기를 이기는 생활 즉 삼가 조심하는 생활 태도입니다. 자신을 이기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신중하지 못하면 방탕하고 타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나 자신입니다. 로마서 8:12-13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도들은 자기 속에 있는 죄악성과 싸워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자신을 잘 이기면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지면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시험에 넘어지는 것도 육신에게 지기 때문입니다. 죄짓는 것도 나 자신 때문입니다. 역사상 삼손만큼 힘이 세고 강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삼손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자기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왜 실패했습니까? 자기 자신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원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망치고 나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 인생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를 이겨야 합니다.
2) 의로움. 의로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져야할 자세입니다. 의로움은 불의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일도 바르게, 돈 버는 것도 깨끗하게, 생활도 의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의한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하면 손해 볼 때가 많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손해보더라도 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밀리더라도 의롭게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은 실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빠른 길이고 복된 길입니다. 믿음이 좋아지면 순수하고 의로워집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빛 가운데서 산다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3) 경건함. 경건함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경건함이란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내 곁에 계십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계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은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말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막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경건의 모양만 내고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창세기 6:5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셨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계획을 세우고,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보셨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사람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소돔 고모라도 경건치 않다가 멸망 당했습니다(벧후 2:6)
4) 주님의 재림을 기다림(13절). 성도는 복스러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과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생 복락을 누리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힘쓰게 되며 세상의 어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5)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함(14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은 선한 일에 열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에 보면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9:8에는 선한 일을 하라고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평생 쓰레기만 만들어 놓고 가는 인생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며 복된 인생 사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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