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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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주일오전예배 설교(성경: 야고보서 1장 19-25절/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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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3-20 15:07 조회7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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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yW5iUn_bdXU


생명체의 특징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죽은 것이나 병든 것이 아니면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중생한 영도 자라나고, 믿음도 자라나야 합니다. 본문은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19-21절은 어떻게 듣고 말해야 하는가, 22-25절은 말씀을 들은 다음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할 때 변화가 일어나고 성장합니다. 신앙의 열매도 맺힐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외부 요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성장을 원하고 있는지, 성장하기 위해서 힘쓰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말씀을 성실하게 행하고 있는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려고 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1. 자신을 속이지 말라(22절).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무섭게 책망한 말씀이 마태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시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면서 7번이나 책망했습니다. 외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미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역시 외식하는 것만큼 나쁜 것입니다. 

22절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속으면 속상하고 억울해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속으면서 억울해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속아서 피해를 보는 것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속아서 손해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들어서 아는데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나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속으면 화를 내고 어떻게든 보상받으려고 애쓰면서 내가 나에게 속을 때는, 속은 줄도 모르고, 억울해하지도 않습니다.

26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자기 마음을 속이면”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경건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것처럼 속이고, 구원받지 못했으면서도 구원받은 것처럼 속이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자기를 속이는 것에 대해서 몇 군데 더 찾아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3에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믿음 생활을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했으면서 된 줄로 생각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7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여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여기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거나 나쁜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악을 행하면서 평안하기를 바라고 죄를 지으면서 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3-4에.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믿음 생활 잘하겠다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은혜받기 원하고,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서 변화되기 원하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달라진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설교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입버릇처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누구가 꼭 들어야 하는데...’” 설교를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속이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인데, 스스로 속이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속이는 사람이 자신이고 속는 사람도 자기입니다. 그래서 피해를 입는 사람도 당연히 자기 자신입니다. 


2. 듣기는 속히 하고(19, 21절) 

그러면 신앙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우리가 성장하고 영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갖추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속히 하라는 것입니다. 빨리 듣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들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마음으로 들으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 제대로 된 사람은 듣는 것을 잘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 먼저 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회개)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루에 4만명 정도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아주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침내 어떤 음식도 먹고 싶지 않은 단계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영적으로도 비슷한 절차를 밟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읽고 듣기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영적인 갈급함과 배고픔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배고픔조차 못 느끼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감각이 없는 상태가 되면 병든 것이고 믿음이 죽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만 제대로 들어도 인생이 바뀝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 사명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듣는 마음’입니다. 열왕기상 3:9에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전에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번역이 되었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레브 쇼메아’라는 단어로 ‘듣는 심장’ ‘듣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Hearing heart’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솔로몬을 기뻐하시며 지혜와 부귀영화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솔로몬이 노년에 우리에게 권면한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5:1에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집 즉 교회에 나가서 가장 주의할 일은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말씀을 잘 받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생각들을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들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악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으면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8:37에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음으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마음속에 악을 제거하고 가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라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영이 살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는 젖을 먹지만 정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젖을 먹어도 건강이 유지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여서 심어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심어져야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려면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온유함이란 자기 자신을 이겨나가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이 심령속에 들어가서 역사할 것입니다. 말씀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합니다. 감동과 감화를 주고 죄를 회개하게 만들고 변화되게 만듭니다. 말씀이 인격이 되고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3. 말하기는 더디 하며(19절). 

19절은 말씀을 듣는 것은 빠를수록 좋고 말하기는 늦출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다 보면 말하기를 더디하게 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듣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말이 많은 것은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고 우매자의 소리가 납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를 속히 해야 합니다. 


4. 성내기도 더디 하라(19-20절).

또 한 가지 더디 할 것이 있습니다. 성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과 성내는 것이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사람이 화가 나면 듣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성이 나면 거부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6:9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좋은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상해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54에 스데반이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듣다가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으니까 화를 내면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화를 내면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 마음을 상하게 만들어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화나게 만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말씀도 우리가 성내면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혹 은혜받았어도 성내면 다 쏟아버리고 맙니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믿는 일 하다가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하다가 절대로 성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5.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22-25절).

22절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23-25절은 말씀을 듣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내 머리속에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인생에 아무런 힘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책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나 성경은 행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이대로 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듣고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 아는 만큼의 책임이 요구됩니다. 

25절에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내 것으로 삼는 법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내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한 마음을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잘 자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새봄을 맞이하여 영적 성장과 풍성한 은혜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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