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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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8장 1-17절/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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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3-23 21:28 조회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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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1NIio5THevk


1절

기도는 항상 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이고 영적인 호흡이다. 따라서 기도가 끊어지면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단절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다가 언제 낙심하는가? 얼른 응답되지 않으면, 기도한대로 속히 이루어주시지 않으면 낙심이 될 때가 있다. 낙심은 포기하는 것이다. 기도하다가 안되면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금하신 기도의 원칙이다. 절대로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2-4절

예를 들어 설명해주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않고 불의한 재판관이다.

한 과부가 이 재판관에게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다. 과부는 의지할 사람이 없고 힘들고 어렵게 사는 자이다. 

그런데 그 과부에게 원한이 있다고 했다. 어떤 원한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보면 남편을 죽였거나, 자녀를 빼앗아갔거나, 재산을 다 빼앗아간 원수일 것이다. 당시에 이런 일로 원한을 품은 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을 잃고, 자녀를 잃고, 재산까지 다 빼앗기면 마음 속에 한이 맺힐 것이다. 호소할 곳이 없고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재판관 밖에 호소할 사람이 없는데 들어주지 않고, 딴청만 피우고 있다. 자신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으니 제쳐두고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얼마 동안 듣지 않고 무시했다. "얼마 동안" 이것이 중요한 단어이다. 이 기간은 재판관이 생각하기에 '저 과부가 날마다 찾아와도 얼마 동안 저러다가 관두겠지' 하고 생각한 기간이다.

그런데 과부는 얼마 동안 하다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갔다. 재판관의 생각에 착오가 생겼다. 지치지도 않고 날마다 쫓아왔다. 


5-7절

재판관이 너무 귀찮고 번거로우니까 해결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과부가 얼마 동안 매달리다가 낙심하고 포기했다면 이 원한을 해결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부에게는 다른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재판관에게 매달렸다. 날마다 찾아가서 부르짖었다. 재판관이 생각하기에 '안들어주면 계속해서 찾아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괴로워서라도 들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님께서 이런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기게 부르짖으니까 들어주는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시고 의로우시다. 그런 하나님이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밤낮 부르짖는" 이것이 필요하다. 조금 하다 말면 안된다.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중단하면 안된다. 계속 부르짖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

"오래 참으시겠느냐?" 오래 참지 않으시고 속히 응답해주실 것이다.

"원한" 성도에게 무슨 원한이 있겠나? 원한은 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 죄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 12:4)

죄가 원수이고 마귀가 원수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는 옛사람의 부패성, 죄성이 있다. 이것도 원수이다. 이런 원수가 나를 늘 넘어뜨리고 시험하고 죄짓게 만들고 믿음을 쓰지 못하게 한다. 이런 원수를 무찔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원수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8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오래 기다리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미루고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니까 분명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속히 들으시고 반드시 이뤄주실 것이다. 따라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두가지 원리. 

첫째, 항상 기도해야 한다.

둘째,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시고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예수님 재림하실 때를 가리킨다. 

"믿음을 보겠느냐?" 과부처럼 부르짖는 믿음, 낙심하지 않고 계속 부르짖는 믿음, 늘 깨어 기도하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를 보겠느냐? 는 말씀이다. 우리가 말세로 갈수록 깨어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9-14절 구체적으로 두 사람을 비교해서 응답받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바리새인과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알려진 사람이고 세리는 죄인의 대표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1~12)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세리는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의롭게 살지도 못했다. 세리와 창기는 죄인의 대명사이다. 가장 추하고 나쁜 사람이다. 그 세리가 성전에 가서 기도를 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3)

이것이 세리의 기도이다.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다만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이 무엇을 잘못했고 세리의 기도는 왜 받으셨는지 살펴봐야 하겠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9)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었다.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다. 또 착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11-12절에서 강조하는 단어는 "나는"이다.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있다.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 엎드리지도 않았다. 성전 안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서서 기도하고 자기의 선행을 자랑했다. 

사실 바리새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많았을 것이다. 말씀도 많이 알고 의무도 잘 감당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 생각할 것은 바리새인이라고 죄를 하나도 짓지 않았을까?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행동으로 죄지은 것이 있을 수 있고 신앙생활하면서 부족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몇가지 잘한 것만 내세우면서 의로운 줄로 알고 있다. 

'이정도면 잘 믿는 거지, 남보다 훨씬 나은거지, 이정도면 잘한거지..'

하나님은 이것을 교만으로 보셨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바리새인은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했다. 다른 사람은 호색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데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저 뒤에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다고 기도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엄청 무시했다. 말로는 감사한다고 하는데 내용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가 여러가지 잘했다고 한 행동들이 나쁘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으셨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3)

세리는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 

이 세리는 어떻게 자기가 큰 죄인인 것을 알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을까? 그는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려워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지를 발견하며 가슴을 치는 것이다.

세리라고 자기의 죄를 다 깨닫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세리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었을까? 세금을 떼먹는 잘못을 저질렀겠지만 나름대로 자랑할 것을 찾았으면 자랑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리는 그런 것을 하나도 내세우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바리새인과 세리는 자신을 다르게 바라볼까?

세리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모습을 보니 너무 추하고 하나님 앞에 설수 없고 망할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다. 바리새인은 세리만 보고 왔다. 세리와 자기를 비교하니까 자기는 훨씬 경건하고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만하면 나는 의롭고, 잘믿고,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선다면 어떤 사람도 자랑할 수 없고,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것을 못했다. 성전에 나와서 사람들만 보고 세리와 자기를 비교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세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슴을 쳤다. 이 세리를 하나님은 인정해주셨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많은 제물이 아니고, 큰 돈이 아니고, 훌륭한 업적이 아니고 상한 심령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때마다 상하고 통회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멸시치 않으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14)

하나님은 누구를 더 의롭다고 하셨는가? 회개한 세리라고 하셨다. 사람의 관점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아무리 의롭다고 생각하고 나를 훌륭하다고 자부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면 쓸데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하고 믿음생활 잘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세리를 더 인정해주셨다. 세리는 잘한 것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훌륭한 점을 한가지도 내세우지 않았다. 칭찬받을만한 것을 한가지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인정해주셨다.

늘 낮추고 볼 일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볼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기뻐하시고 높여주신다고 말씀하신다. 


15-17절 

예수님에게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기들을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제자들이 그런 자들을 꾸짖었다. 당시에 아이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무시하고 숫자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오면 떠들고 장난치기도 하기 때문에 말씀 배우는데 방해가 되어서 그랬는지 제자들이 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리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을 나무라셨다.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절대로 금하면 안된다. 금하지 말라고 했다. 다 데리고 나와야 한다. 함께 예배 드려야 한다. 조기 교육의 명분으로, 학원 가야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절대 금하면 안된다. 힘써 데리고 와야 한다. 잘 타일러서 데리고 나오는 것이 바로 하는 것이다. 주님이 어린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릴 때부터 말씀 듣고 은혜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라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면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없다.

아이들은 젖을 사모하고 배우려는 모방정신이 강하다. 어린아이들도 예수님께 잘 데리고 와서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받고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 데리고 나오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세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더 인정하시고 받아주셨다.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고 하늘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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