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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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복음 21장 1-14절/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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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2-04-17 14:57 조회6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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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J1lHCicMH00


부활하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이 직접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1.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

2-3절에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6명의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3년 전에 주님을 따라갈 때 버렸던 그 배를 타고 그 그물을 던지면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따라다니며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이적과 능력을 친히 보기도 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제자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믿음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통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려는 큰 기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자 중에서도 베드로는 특별히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믿음이 좋은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믿음이 있었고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진실한 신앙고백도 있었고, 열성적인 헌신도 있었고, 사명감과 충성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믿음, 그 결심 다 식어지고 유리그릇 깨어지듯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고난당 할 때 12제자 다 주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다가 계집아이 하나가 “이 사람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자다” 하니까 베드로는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맹세하고 저주했습니다. 

결박당한 우리 주님 홀로 이 법정 저 법정으로 끌려다니시면서 고난을 당할 때 열두 제자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어떤 로마 군병은 주님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 제자들 없었습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십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서 골고다로 올라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군인들이 차마 보기 딱하여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양손과 발에 큰못이 박히고 주님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흐릅니다. 우리 주님 물과 피를 다 흘리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가까이에 제자들 없었습니다. 

금요일 오후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안식일이므로 나무에 시신을 달아놓는 것은 율법에 맞는 예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해다가 장사 지내야 하는데 열두 제자 중 누구 하나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하러 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아리마대 요셉과 어느 날 저녁에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해 가지고 옷 갈아입히고 향유를 발라서 준비한 무덤에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3일 후,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지고, 어떤 제자가 무덤에 달려가 본 결과 무덤에는 수의만 있었습니다. 어떤 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가? 찾아야 할 텐데 제자들은 디베랴 바다로 가서 고기 잡느라고 애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심 

이처럼 배은망덕하고 탈선한 길로 간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배신했으나 주님은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가서는 안 될 곳에 가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져서는 안 될 것을 만지고,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명도 버리고 제자라는 신분도 망각하고 세상일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다시 찾아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명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부르셨다가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은 그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 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를 예수님 믿게 하고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여기에 보내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은 사명이 길고 짧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사명이 남아 있으면 그 사명 마칠 때까지 더 살도록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명에서 이탈할 때 실패하는 것이며 죽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분명히 사명이 있어서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주님 바닷가에 서 계시는데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4절). 주님은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고기 잡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주님께서 저편 언덕에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 잃어버리고 탈선의 자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은 측은한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지켜보시는 주님 벌써 오래되셨을 것입니다. 범죄하는 그 모습을, 실패하는 그 모습을, 배은망덕한 그 모습을, 탈선의 길에서 방황하는 그 모습을, 우리 주님은 지켜보고 계십니다. 내 삶의 배후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주님을 의식하기 바랍니다. 


3.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헛수고 한 것 다 아셨습니다. 다 보시고 아시면서 물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서는 안 될 길을 가서 얼마나 성공했느냐? 주님을 버리고 잘 살 수 있겠더냐? 말씀을 떠나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더냐?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얼마나 돈 벌었느냐? 그렇게 주일 안 지키고 얼마나 평안하더냐? 하고 물으시는 질문입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고기만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만족도 없었습니다. 기쁨도 없었습니다. 행복도 없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고기도 없고, 성공도 없고, 행복도 없고 만족도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삶의 의미도 없고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고기 많이 잡았다면 행복하고 만족했을까요? 아닙니다. 주님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6절에 보면 그때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이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이 순종했더니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고기를 많이 잡도록 이적을 베풀어 주셨을까요? 고기 잡는 것도 다 주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사업도, 돈 버는 것도, 자식 공부도, 물질도, 건강도, 다 주님께서 주장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순종할 때 고기도 잡을 수 있습니다. 말씀 따라 살아갈 때 사업도 성공하고, 고기도 잘 잡히고, 모든 일이 잘됩니다. 하나님 말씀 순종하고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 의지하고 말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성공과 축복이 있습니다. 고기 따라다닌다고 고기 많이 잡는 것이 아닙니다. 돈 따라다닌다고 돈 버는 것 아닙니다. 주일도 안 지키고 일만 한다고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손에 다 달려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 순종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발견합니다. 제자들이 6절까지는 주님을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으나 고기 잡은 다음에 7절에 보니까? “주님이시라”하면서 주님을 발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부활의 주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모르고 순종해도 복을 받습니다. 모르고 순종해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 순종하다가 눈이 밝아졌습니다. 말씀 순종하다가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말씀 순종하다가 다시금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고,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세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주님께 갔습니다. 어린아이같이 단순한 믿음으로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주님께서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준비해 주셨습니다(9절). 어디서 구했는지 숯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고기 잡느라 지치고 피곤한 제자들의 몸을 녹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4.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조반을 먹은 후에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세 번을 반복하여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배은망덕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닌 베드로를 위해서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위해서, 베드로의 행복을 위하여, 베드로의 성공을 위하여, 베드로의 장래를 위하여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승리는 주님을 사랑하는데 달려있습니다. 베드로의 행복은 주님을 사랑하는데 달려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떠나면 주님이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죽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베드로는 망합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주님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성경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뭔가 부족하고 결함이 있어서 인간들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시고 아무것도 의지할 필요 없이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이사야 33:6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느헤미야 8:10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까이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면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이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돈보다 직장보다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베드로는 3번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로 베드로는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결국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습니다. 

부활의 주님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오십니다. 낙심한 사람들,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주님 만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배나, 말씀 순종이나, 봉사나,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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