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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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수요저녁예배 설교(약 1:19-27 /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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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10-02 21:23 조회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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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NhhVaFmCf1E?si=8LfmVE2Zti2Nv4kL


살아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자라난다. 죽은 것이나 병든 것이 아니면 반드시 자라나게 되어있다. 생명체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것이 음식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자라날 수 없다. 중생한 영, 믿음도 자라나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영의 양식이다. 말씀을 잘 듣고 배움으로 믿음이 아름답게 성장해 나가야 한다.  


19절

"듣기는 속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서 들으라는 것이다. 간절하게 들으라는 것이다. 듣기 싫어서 마지 못해 듣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거부하거나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안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데서 믿음이 생긴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 들을 기회를 놓지 말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말씀을 듣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생활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 심하게 허기 진다. 더 오랫동안 먹지 않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그러다가 굶어 죽게 된다. 영적으로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중생한 영혼, 살아있는 생명이 허기지게 된다. 갈급하고 곤고하게 된다. 계속 듣지 않으면 배고픔조차 없어진다.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다 없어진다.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살았으나 죽은 자리로 떨어지고 만다. 말씀을 듣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나고 신앙생활이 바르게 된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셨다. 꿈에 찾아나서서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재판하기 위한 듣는 마음을 주셔서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했다. 잘 듣게 해달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들의 말을 잘 듣고 분별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처리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솔로몬이 노년에 권면한 말씀이 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전 5:1)

성전에 들어갈 때 가까이 하여 말씀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우매하게 의미없이 짐승만 잡아죽이는 것이 된다. 

"말하기는 더디 하며"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이다. 듣고 나서 말하는 것이 순서이다. 대부분은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주장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대화 자체가 잘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을 누가 잘 들어만 주어도 문제가 해결된다.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들어주는 것도 해주지 않으면 갈등이 심각해진다. 하나님 앞에서도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뭐가 있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생활을 힘써야 한다.

"성내기도 더디 하라" 말씀 듣는 것과 성내는 것이 관련 없는 것 같은데, 관련 있으니까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화가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된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출 6:9)

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설교하는데, 구약을 풀어서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잘 전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귀를 막아 버리고 돌로 스데반을 쳐서 죽였다. 분이 나고 화가 나니까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마음에 화가 있으면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은혜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게 하려고 어떻게든지 격동 시키고 화가 나게 만들고 어려운 사건이 나게 만든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와 주일날 오전에는 특별히 삼가 조심해야 한다. 화 날만한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은혜 받았어도 화를 내면 다 쏟아 버리는 것과 같다. 은혜가 다 없어진다. 화를 내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상극이다. 은혜 받으면 기쁨이 넘치는데 화를 내면 은혜가 사라진다. 어떻게든지 화 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한다. 말씀을 잘 들으려면 이 세가지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20절

성내는 것을 가지고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고 영광 받으시지 않는다. 성내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21절

말씀을 잘 받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야 한다. 마음을 비워놓아야 빈 그릇에 말씀이 쏙쏙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악한 것이 가득차 있어서 말씀이 들어갈 공간이 없게 된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요 8:37)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주님의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자기 주장이 얼마나 가득차 있는지 한 말씀도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것들이 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우리 마음에 가득차 있는데 다 버려야 한다.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1~23)

이것을 내버려야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간다.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듣기만 하면 영혼이 살고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이다.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께서 죽었던 영을 살려주신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 죽은 영을 살리신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영혼이 거듭날 수 있는 재료가 복음이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예수님이 네가지 마음 밭을 말씀해주셨다. 굳은 밭에는 씨가 심겨지지 않고 새가 다 먹어버린다. 돌밭은 씨가 떨어졌는데 해가 떠서 금방 말라 죽는다. 가시 떨기 밭은 말씀이 떨어져 자라났어도 가시 기운에 막혀서 열매를 맺히지 못한다. 옥토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다. 말씀이 마음 속에 잘 심겨진다.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여 싹이 나고 자라난다. 이와 같이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은혜 받고 믿음이 자라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22-25절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들은 다음에 힘쓸 것은 행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들은 다음에 믿음이 자라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날 수 없다. TV에서 요리하는 법을 종종 본다. 열심히 보기만 한다고 요리 실력이 늘어나는가? 그렇지 않다. 직접 해봐야 한다.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열심히 보고 있으면 내 체력이 좋아지는가? 아니다. 내가 직접 운동해야 체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것처럼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 말씀을 행해야 내 것이 된다. 행할 때 힘과 능력을 얻고 내 삶에 적용이 되어서 열매를 맺게 된다. 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속는 것이다.

남에게 속으면 속이 상하다. 누가 날 속여 먹으면 얼마나 속상한가? 대놓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일들이 많다. 속으면 기분이 참 나쁘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에게 속으면 속은 줄도 모른다. 억울해 하지도 않는다. 남에게 속는 것보다 자신에게 속는 것이 더 심각한 것이다. 대형교회에 다니면 자기 믿음이 큰 줄 안다. 교회 오래 다닌다고 믿음이 저절로 자라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만큼 자라난다. 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라지 않는다. 오래 다니고 큰 교회 다니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1:26)

사람이 남만 속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일이 아주 많다. 이만하면 경건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경건하지 않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갈 6:3)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

주님이 보실 때에는 곤고하고 가련한 자리에 있고 영적으로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는데 스스로는 부자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속는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자가 스스로 속이는 자이다. 심어야 거둘 수 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자들이 상당히 많다. 말씀 듣지 않고 은혜 받으려고 한다. 기도하지 않고 복 받으려고 한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말씀대로 행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듣는 것이다. 한 말씀이라도 듣고 행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굉장한 은혜와 능력을 준다. 말씀을 행할 때 내것이 된다.

25절 끝에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다. 행하는 것이 내 것이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내가 복을 받는다. 복 받기를 원하면 행하는 것까지 가야 한다. 


26절

헛된 경건, 거짓된 경건, 잘못된 경건을 말씀한다. 짐승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이 우리 혀에 재갈을 물려서 불필요한 말, 덕스럽지 않은 말,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건생활이 되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속이면 헛되고 거짓된 경건이다. 


27절

참된 경건에 대해서 말씀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식하면서, 기쁘게 하려고 애써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방탕이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경건은 가만히 성경 읽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세상 사람 따라가지 말고 자신을 지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 듣는 것부터 잘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면 경건한 삶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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