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9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6장 27-38절/예수님께서 사랑의 법을 가르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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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09-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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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법을 가르치셨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내용이다. 사람들은 원수를 대적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고 누군가 나를 저주하면 나도 저주하고 나를 욕하는 자를 나도 욕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일반적인 생각과 전혀 다른 차원 높은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다.
가끔 세상에 비폭력, 무저항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은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말씀이다.
27절
"내가 이르노니" 선언이다.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이것은 옳은 말씀이요 법이요 진리이다.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할 말씀이다.
첫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중요한 말씀은 "너희 원수"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이럴까 저럴까 흐릿하지 않다.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를 가르쳐주셨다.
마태복음 5:44-45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법적으로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의 품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녀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하셨다.
29절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다. 쉬운 말씀이 아니다. 뺨 맞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격적으로 모욕과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 참고 인내하라고 하셨다.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참고 저 뺨도 돌려대면서 믿음을 지키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도록 생명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힘쓰라고 하셨다.
만약에 같이 때리고 같이 싸우면 속은 후련하더라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은혜가 사라지고 분노가 가득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생명의 역사, 은혜가 사라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옷을 빼앗긴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물질적인 것을 다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것을 빼앗길지라도 달라고 하면 내놓고 주라는 것이다. 그것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투고 싸우면 은혜를 잃고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게 된다. 영적인 기쁨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사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30절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 것을 달라고 하면 주고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참 놀라운 말씀이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안믿는 사람도 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이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말씀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누구라도 나는 다 지켰다고 할수 없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어렵다고 미리 포기하면 그것은 제자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갈수 없다.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노력하고 힘써 나가야 할 말씀이다.
성경에 이렇게 사신 분들이 있다. 우선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하셨다.
요셉도 자신을 팔아먹은 형제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살폈다.
구약의 다윗도 이렇게 했다. 여러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용서하고 죽일 기회가 와도 살리는 선을 베풀었다. 그것을 통해 사울에게 인정을 받는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며 순교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양자로 삼아서 돌봐주었다.
이처럼 어려운 말씀, 지키기 힘든 말씀을 지킨 것은 그만큼 성숙한 믿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누가 그렇게 살겠느냐 하면서 포기하면 안된다. 우리도 이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노력해야 하겠다.
이 말씀을 살피며 주의할 것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개인에게 주신 말씀이다. 개인이 이 말씀을 지키고 원수를 사랑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너의 원수, 너의 뺨을 치는 자"라고 분명히 개인적인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처벌하는 법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마귀에 대해서 마귀를 용서하라거나 마귀를 사랑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쟁을 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들을 무찌르셨다. 본문의 말씀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이단들도 사랑하라고 적용하면 안된다. 이단들에 대해서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본문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공산주의도 사랑하자고 한다. 마귀도 사랑하자고 한다. 이단도 사랑하자고 한다. 엉뚱한 말이다. 그런 말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를 욕하고 피해를 주고 괴롭히는 원수에게 복수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로마서 12:19-21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은 나 개인의 원수나 나를 핍박하는 자를 선대해야 한다는 차원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내가 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 제대로 받기를 늘 원한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인간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안될때 참지 못하고 항의한다. 선배 대접 받으려고 한다. 나이와 시간 계산해서 선배 대접을 잘 받으려고 한다. 어른 대접 받으려고 한다. 조금만 버릇 없이 굴면 가만 두지 않는다. 제대로 대접하라고 요구한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주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대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씀도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하나는 내가 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는 의미이다.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인정하고,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존중하고, 실수하였을때 용서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용납해줘야 한다.
다른 하나는 내가 싫으면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정죄받기 싫은 사람은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좋은 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좋은 대접 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은 손해보는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잘 대접해줘야 하겠다.
32-33절
상호주의, 상대주의에 대한 말씀이다. 받는대로 주겠다. 받은만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죄인들도 이렇게 한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도 한다.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는 것은 죄인들도 한다. 그러므로 전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된다.
마태복음 5:45-46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와 이방인을 언급한다.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은 상받을 일이 아니다. 세리들도 그것을 할줄 안다. 세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미워하는 죄인의 대명사이다. 죄인들도 그정도는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정도 한다고 잘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방인은 택함받지 못하는 자들인데, 그들도 형제에게는 문안할줄 안다는 것이다. 만약 이정도 수준에서 선을 행하고 그친다면 남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세리나 이방인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 질문 속에는 그들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형제에게만 문안하지 말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이방인의 수준으로 살지 말고,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지 말고 그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차원 높은 선행을 요구하시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시고 그 모든 의도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있다.
34-35절
강조점은 "받기를 바라고"이다. 받기를 바라고 꾸어주면 도로 받게 되니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받을 생각하지 말고 꾸어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차원높은 선행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는 선행을 행하고 이런 수준으로 믿음을 지켜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참 차원이 높다. 아주 높은 수준의 선행이고 희생이다. 우리가 뭔가를 기대하고 선을 행하면 사실 실망하기 쉽다.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많이 실망한다. 시험에 빠질수 있다. 나는 주었는데 왜 안 갚았는가? 나는 이만큼 했는데 저 사람은 왜 안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유익이 없다. 관계에서도 편한 관계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라고 하셨다. 이 땅에서 손해보고 희생하고 베풀고 나누어주면 상이 클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아들답게 선을 행해야 한다.
36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을 닮아가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을 닮은 온전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에 욕심 갖고 살고 세상 것에 소망을 두면 이렇게 하기 어렵다. 세상은 초월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까 말까이다. 세상에 소망을 두면 실천하기 쉽지 않은 말씀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려운 일 많고 원수같이 미워하는 사람 많고 박해하는 사람이 많은 중에 이같은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힘쓰므로 성숙한 자가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점점 온전해졌으면 좋겠다.
37절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정확하게 비판할 능력과 기준도 없다. 내 생각대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야고보서 4:11-12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너는 누구냐? 준행자냐? 입법자냐?" 율법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런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 정확하게 비판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 그러므로 비판하면 안된다.
본문에서는 간단명료하게 말씀한다. 비판하지 말라!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면 하나님께 비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사람 비판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비판 받는 일이 훨씬 크고 두려운 일이다.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다. 실수하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 잘못하는 사람, 죄짓는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 우리가 사람에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대로 갚아주신다.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우리가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주신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다. 줄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준 것에 대해서 하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셨으니 더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장에는 내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희생하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갚아주신다.
될수 있는대로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주고 받는 것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다.
아무튼 베풀고 나누어주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데, "후히주고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면 이렇게 넘치도록 주시겠는가!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계산하고 따지고 있으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주고 베풀고 사는 것 자체가 복이다. 또 주고 베풀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갚아주시니 더 큰 복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주고 베풀때 영적으로 생기는 것이 있다. 사랑의 그릇이 커지고 믿음이 자라난다. 선을 베풀면서 인격과 사랑이 커지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놀라운 일이 된다.
주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쉬운 것이 없다. 손해보고 참고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추고 하나님께 상상하지 못할 크고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자라서 열매맺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겠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법을 가르치셨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내용이다. 사람들은 원수를 대적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고 누군가 나를 저주하면 나도 저주하고 나를 욕하는 자를 나도 욕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일반적인 생각과 전혀 다른 차원 높은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다.
가끔 세상에 비폭력, 무저항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은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말씀이다.
27절
"내가 이르노니" 선언이다.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이것은 옳은 말씀이요 법이요 진리이다.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할 말씀이다.
첫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중요한 말씀은 "너희 원수"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이럴까 저럴까 흐릿하지 않다.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 이유를 가르쳐주셨다.
마태복음 5:44-45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법적으로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의 품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녀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하셨다.
29절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다. 쉬운 말씀이 아니다. 뺨 맞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격적으로 모욕과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 참고 인내하라고 하셨다.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참고 저 뺨도 돌려대면서 믿음을 지키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도록 생명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힘쓰라고 하셨다.
만약에 같이 때리고 같이 싸우면 속은 후련하더라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은혜가 사라지고 분노가 가득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생명의 역사, 은혜가 사라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옷을 빼앗긴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물질적인 것을 다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것을 빼앗길지라도 달라고 하면 내놓고 주라는 것이다. 그것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투고 싸우면 은혜를 잃고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게 된다. 영적인 기쁨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사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30절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 것을 달라고 하면 주고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참 놀라운 말씀이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안믿는 사람도 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이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말씀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누구라도 나는 다 지켰다고 할수 없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어렵다고 미리 포기하면 그것은 제자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갈수 없다.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노력하고 힘써 나가야 할 말씀이다.
성경에 이렇게 사신 분들이 있다. 우선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하셨다.
요셉도 자신을 팔아먹은 형제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살폈다.
구약의 다윗도 이렇게 했다. 여러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용서하고 죽일 기회가 와도 살리는 선을 베풀었다. 그것을 통해 사울에게 인정을 받는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며 순교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양자로 삼아서 돌봐주었다.
이처럼 어려운 말씀, 지키기 힘든 말씀을 지킨 것은 그만큼 성숙한 믿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누가 그렇게 살겠느냐 하면서 포기하면 안된다. 우리도 이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노력해야 하겠다.
이 말씀을 살피며 주의할 것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개인에게 주신 말씀이다. 개인이 이 말씀을 지키고 원수를 사랑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너의 원수, 너의 뺨을 치는 자"라고 분명히 개인적인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처벌하는 법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마귀에 대해서 마귀를 용서하라거나 마귀를 사랑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쟁을 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들을 무찌르셨다. 본문의 말씀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이단들도 사랑하라고 적용하면 안된다. 이단들에 대해서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본문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공산주의도 사랑하자고 한다. 마귀도 사랑하자고 한다. 이단도 사랑하자고 한다. 엉뚱한 말이다. 그런 말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를 욕하고 피해를 주고 괴롭히는 원수에게 복수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로마서 12:19-21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은 나 개인의 원수나 나를 핍박하는 자를 선대해야 한다는 차원의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내가 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 제대로 받기를 늘 원한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인간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안될때 참지 못하고 항의한다. 선배 대접 받으려고 한다. 나이와 시간 계산해서 선배 대접을 잘 받으려고 한다. 어른 대접 받으려고 한다. 조금만 버릇 없이 굴면 가만 두지 않는다. 제대로 대접하라고 요구한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주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대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씀도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하나는 내가 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는 의미이다.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인정하고,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존중하고, 실수하였을때 용서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용납해줘야 한다.
다른 하나는 내가 싫으면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정죄받기 싫은 사람은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좋은 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좋은 대접 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은 손해보는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한다.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잘 대접해줘야 하겠다.
32-33절
상호주의, 상대주의에 대한 말씀이다. 받는대로 주겠다. 받은만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죄인들도 이렇게 한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도 한다.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는 것은 죄인들도 한다. 그러므로 전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된다.
마태복음 5:45-46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와 이방인을 언급한다.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은 상받을 일이 아니다. 세리들도 그것을 할줄 안다. 세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미워하는 죄인의 대명사이다. 죄인들도 그정도는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정도 한다고 잘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방인은 택함받지 못하는 자들인데, 그들도 형제에게는 문안할줄 안다는 것이다. 만약 이정도 수준에서 선을 행하고 그친다면 남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세리나 이방인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 질문 속에는 그들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형제에게만 문안하지 말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이방인의 수준으로 살지 말고,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지 말고 그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차원 높은 선행을 요구하시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시고 그 모든 의도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있다.
34-35절
강조점은 "받기를 바라고"이다. 받기를 바라고 꾸어주면 도로 받게 되니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받을 생각하지 말고 꾸어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차원높은 선행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는 선행을 행하고 이런 수준으로 믿음을 지켜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참 차원이 높다. 아주 높은 수준의 선행이고 희생이다. 우리가 뭔가를 기대하고 선을 행하면 사실 실망하기 쉽다.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많이 실망한다. 시험에 빠질수 있다. 나는 주었는데 왜 안 갚았는가? 나는 이만큼 했는데 저 사람은 왜 안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유익이 없다. 관계에서도 편한 관계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라고 하셨다. 이 땅에서 손해보고 희생하고 베풀고 나누어주면 상이 클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아들답게 선을 행해야 한다.
36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을 닮아가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을 닮은 온전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에 욕심 갖고 살고 세상 것에 소망을 두면 이렇게 하기 어렵다. 세상은 초월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까 말까이다. 세상에 소망을 두면 실천하기 쉽지 않은 말씀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려운 일 많고 원수같이 미워하는 사람 많고 박해하는 사람이 많은 중에 이같은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힘쓰므로 성숙한 자가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점점 온전해졌으면 좋겠다.
37절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정확하게 비판할 능력과 기준도 없다. 내 생각대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야고보서 4:11-12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너는 누구냐? 준행자냐? 입법자냐?" 율법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런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 정확하게 비판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 그러므로 비판하면 안된다.
본문에서는 간단명료하게 말씀한다. 비판하지 말라!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면 하나님께 비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사람 비판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비판 받는 일이 훨씬 크고 두려운 일이다.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다. 실수하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 잘못하는 사람, 죄짓는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 우리가 사람에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대로 갚아주신다.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우리가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주신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셨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다. 줄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준 것에 대해서 하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셨으니 더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장에는 내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희생하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갚아주신다.
될수 있는대로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주고 받는 것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다.
아무튼 베풀고 나누어주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데, "후히주고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면 이렇게 넘치도록 주시겠는가!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계산하고 따지고 있으면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주고 베풀고 사는 것 자체가 복이다. 또 주고 베풀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갚아주시니 더 큰 복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주고 베풀때 영적으로 생기는 것이 있다. 사랑의 그릇이 커지고 믿음이 자라난다. 선을 베풀면서 인격과 사랑이 커지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놀라운 일이 된다.
주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쉬운 것이 없다. 손해보고 참고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추고 하나님께 상상하지 못할 크고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자라서 열매맺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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