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1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0장 1-20절/칠십인 파송)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01 21:31
조회868회
댓글0건
관련링크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oHK9exMm5iI
1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외에 칠십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셨다.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전도실습을 보내신다. 친히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런데 둘씩 짝을 지어서 가게 하셨다. 서로 협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력하게 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둘을 증거자의 수로 말씀하셨다.
2절
"추수할 것은 많되" 곡식이 다 익었다는 것이다. 알곡이 다 익어서 거둘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택한 백성들을 가리킨다. 다 익어서 거두기만 하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믿게 되고 구원받을 상황에 와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히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이 추수때가 다 되었다. 말세가 다 되었기에 악도 성행하고 있지만 믿을 때도 다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꾼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3절
"갈지어다" 복음 전도는 가서 하는 것이다. 주님이 직접 명령하셨다. 주님께서 보내셨다. 요한복음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셔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전도는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복음은 가서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전도자를 보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래도 가서 전해아 한다. 가서 전하면 믿는 사람이 생기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그런 일은 많이 생기지 않는다. 가서 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칠십명을 각 동네와 지역으로 보내셨다. 우리도 동네와 지역마다 찾아다니면서, 직장과 학교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겠다.
복음 밖에는 죄인을 구원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예수님을 믿게 할 방법은 없다. 오직 복음 뿐이다. 이 복음을 전하기면 하면 죽을 사람을 살리고 지옥갈 사람을 천국가게 할 수 있는데 전하지 않는다면 책망받을 일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가서 전하기만 하면 많은 구원할수 있을 것이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표현이 걱정스럽다. 양은 여리고 순결하고 약하다. 이리는 강하고 잔인하고 양을 잡아먹는다. 양이 이리 가운데로 간다고 해도 말려야 될 것 같은데 보내시고 있다. 세상에는 이리가 득실득실하다. 마귀가 가득하다. 전도자를 박해하고 믿는 자들을 싫어하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이리 소굴로 전도자를 보내신다. 이렇게 해서 영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곡식을 추수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양, 전도자들은 이리 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삼가 조심하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한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리는 보통 뱀을 마귀와 같이 여겨서 싫어하는데 예수님께서 뱀 같이 지혜롭게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비유이다. 뱀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한다. 산에도 살고 나무 위에도 잘 올라가고 바위 위에도 살고 땅 속으로 들어가고 바다에서 살기도 한다. 비가 와도 문제가 없고 더워도 문제다 없다. 아무데나 가서 적응을 잘한다. 새는 공중은 날지만 물 속에서는 살지 못하고 물고기는 물에서는 잘 살지만 물 밖에서는 살지 못한다. 뱀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산다. 이리가 득실 거리는 세상에서도 잘 적응하고 이겨내라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힘든 상황이 되도 견뎌내고 이겨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영적으로 보면 뱀이 사탄의 지혜로 하와를 미혹했다. 외부에서 지혜를 받았다. 그런 예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지혜 가지고는 세상을 이길수 없다. 내 생각, 내 꾀, 내 방법으로는 마귀를 이길수 없다. 양은 이리를 이길수 없다. 백번 싸워도 백번 다 진다. 우리 힘으로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안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이길수 있다. 그러므로 그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마귀와 싸워서 이겨나가라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또 한가지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다. 비둘기는 순결, 깨끗하다는 의미가 있다. 새 가운데 유일하게 제물로 바쳐진다. 성도는 거룩하고 순결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죄에 빠지지 말고 자신을 잘 지켜서, 세상에 혼합되어 섞이지 말아야 한다. 뱀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잘 지켜 나가면 믿음생활 잘하고 사명도 잘 감당할수 있을 것이다.
4절
전대는 돈 주머니이고, 베낭은 먹을 것이나 물건을 담아 가지는 주머니이다. 전대와 베낭과 신발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물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사명 감당하면서 주님이 시킨 일을 잘 하라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인사하고 참견하다보면 전도하기 어렵다. 자기 할일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안되니까 시간 빼앗기지 말고 중요한 사명 감당하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일에 전심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5절
평안을 빌어주라고 했다. 평안은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받을 때 진정한 평안이 임한다. 평안의 반대는 죄이다. 죄를 지으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평안이 다 사라진다. 반대로 죄사함받고 은혜받으면 평안하다. 제물이 많고 적고, 지위가 높고 낮은 것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평안을 빌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 통해 죄사함받고 은혜 받아서 참 평안을 누릴수 있도록 기도해주라는 것이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다. 좋은 소식, 평화 공포, 복된 소식, 구원 공포라는 여러 말로 설명한다. 의미가 다 같은 것이다.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받으면 평안이 임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고 복된 것이다.
6절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을 싫어하고 믿지 않겠다고 하고 핍박하고 박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평안도 그 집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고 그 수고한 것이 자신에게로 다 돌아오게 된다. 그 사람이 믿으면 열매 맺으니까 좋고 믿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와 복이 되니까 좋다.
전도해서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안믿는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된다. 전도는 하면 할수록 복이 된다. 들으면 들어서 좋고 안들으면 안들어도 좋은 것이 복음 전하는 일이다.
7-9절
복음을 전하면 배척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복음 전해준 사람들에게 음식도 대접하고 마실 것도 제공한다. 그때 사양하지 말고 먹고 마시라는 것이다. 대접 받는 것을 거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싫어하고 반대하고 박해하는 경우 나를 싫어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어느 동네게 가든지 영접하는 사람들, 복음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뻐서 대접도 잘한다. 그러면 먹고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고 힘있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
10-11절
반대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욕하고 대적하고 무시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주님 말씀대로 되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영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셨으니까 그런 사람도 있는줄로 알면 된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복음 전하실때 환영 받지 못하고 미움 받을 때가 더 많았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주님도 이런 대접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너무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발에 묻은 먼지도 떨어버리라는 것은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신세 지지 말고 떠나라는 것이다.
13-14절
주님께서 실제로 배척을 당하신 것을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고라신, 벳새다를 예를 들으셨다. 가버나움 가까운 곳인데 예수님이 권능을 많이 베푸신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가 많이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수 있는 기회를 많이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은 이방도시로 믿지 않고 심판 받은 도시이다. 고라신과 벳새다는 권능을 목격하고도 믿지 않았기에 두로와 시돈보다 더 심하게 심판 받을 것이다.
15절
가버나움은 주님의 복음 전도의 근거지이다. 그들이 믿었더라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을 받았을텐데 주님을 가장 많이 접하고 말씀도 가장 많이 듣고 기적도 가장 많이 보았는데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심판이 더욱 클 것이다.
주님도 이런 일을 겪으셨다. 공을 많이 들이시고 많은 역사를 보여주셨는데도 믿지 않고 거부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들이 낙심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은 멸시 천대를 받아도 낙심하거나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16절
전도자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자를 거부하는 것은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했는데 안믿는 경우, 핍박만 하고 욕만 잔뜩 먹으면 낙심되어서 속상해하지 말고 나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거부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힘써 전도했는데 듣고 영접하면 얼마나 기쁘고, 열심히 전도했는데 듣지 않고 반대하고 거부하면 지친다. 낙심이 된다. 속이 상한다. 실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이 원리가 참 중요하다. 나를 영접한다고 교만해질 필요가 없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나를 거부한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도 없다.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된다.
17절
칠십인이 전도하면서 많은 역사들을 경험했다. 주의 이름으로 전할때 귀신들도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신이 나서 돌아와서 보고를 했다.
18-19절
주님께서 이미 다 보시고 알고 계셨다.
전도자들에게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했다. 사도시대에는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고 뱀과 전갈에 물려도 죽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날 이 말씀을 시험했다가 죽은 자들이 있다.
이 말씀은 뱀과 같이 독을 주고, 전갈과 같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악독한 사람들이 있지만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0절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크게 기뻐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살아갈 일이다.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이요 은혜이다. 이것이 가장 큰 기쁨의 이유이다. 이 기쁨을 실제로 누리면서 감사 충만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이런 기쁨을 많이 잃어버렸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1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외에 칠십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셨다.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전도실습을 보내신다. 친히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런데 둘씩 짝을 지어서 가게 하셨다. 서로 협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력하게 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둘을 증거자의 수로 말씀하셨다.
2절
"추수할 것은 많되" 곡식이 다 익었다는 것이다. 알곡이 다 익어서 거둘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택한 백성들을 가리킨다. 다 익어서 거두기만 하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믿게 되고 구원받을 상황에 와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히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이 추수때가 다 되었다. 말세가 다 되었기에 악도 성행하고 있지만 믿을 때도 다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꾼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3절
"갈지어다" 복음 전도는 가서 하는 것이다. 주님이 직접 명령하셨다. 주님께서 보내셨다. 요한복음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셔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전도는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복음은 가서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전도자를 보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래도 가서 전해아 한다. 가서 전하면 믿는 사람이 생기고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그런 일은 많이 생기지 않는다. 가서 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칠십명을 각 동네와 지역으로 보내셨다. 우리도 동네와 지역마다 찾아다니면서, 직장과 학교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겠다.
복음 밖에는 죄인을 구원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예수님을 믿게 할 방법은 없다. 오직 복음 뿐이다. 이 복음을 전하기면 하면 죽을 사람을 살리고 지옥갈 사람을 천국가게 할 수 있는데 전하지 않는다면 책망받을 일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가서 전하기만 하면 많은 구원할수 있을 것이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표현이 걱정스럽다. 양은 여리고 순결하고 약하다. 이리는 강하고 잔인하고 양을 잡아먹는다. 양이 이리 가운데로 간다고 해도 말려야 될 것 같은데 보내시고 있다. 세상에는 이리가 득실득실하다. 마귀가 가득하다. 전도자를 박해하고 믿는 자들을 싫어하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이리 소굴로 전도자를 보내신다. 이렇게 해서 영혼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곡식을 추수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양, 전도자들은 이리 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삼가 조심하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한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리는 보통 뱀을 마귀와 같이 여겨서 싫어하는데 예수님께서 뱀 같이 지혜롭게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비유이다. 뱀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한다. 산에도 살고 나무 위에도 잘 올라가고 바위 위에도 살고 땅 속으로 들어가고 바다에서 살기도 한다. 비가 와도 문제가 없고 더워도 문제다 없다. 아무데나 가서 적응을 잘한다. 새는 공중은 날지만 물 속에서는 살지 못하고 물고기는 물에서는 잘 살지만 물 밖에서는 살지 못한다. 뱀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산다. 이리가 득실 거리는 세상에서도 잘 적응하고 이겨내라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힘든 상황이 되도 견뎌내고 이겨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영적으로 보면 뱀이 사탄의 지혜로 하와를 미혹했다. 외부에서 지혜를 받았다. 그런 예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지혜 가지고는 세상을 이길수 없다. 내 생각, 내 꾀, 내 방법으로는 마귀를 이길수 없다. 양은 이리를 이길수 없다. 백번 싸워도 백번 다 진다. 우리 힘으로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안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이길수 있다. 그러므로 그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마귀와 싸워서 이겨나가라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또 한가지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다. 비둘기는 순결, 깨끗하다는 의미가 있다. 새 가운데 유일하게 제물로 바쳐진다. 성도는 거룩하고 순결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죄에 빠지지 말고 자신을 잘 지켜서, 세상에 혼합되어 섞이지 말아야 한다. 뱀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잘 지켜 나가면 믿음생활 잘하고 사명도 잘 감당할수 있을 것이다.
4절
전대는 돈 주머니이고, 베낭은 먹을 것이나 물건을 담아 가지는 주머니이다. 전대와 베낭과 신발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물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사명 감당하면서 주님이 시킨 일을 잘 하라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인사하고 참견하다보면 전도하기 어렵다. 자기 할일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안되니까 시간 빼앗기지 말고 중요한 사명 감당하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일에 전심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5절
평안을 빌어주라고 했다. 평안은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받을 때 진정한 평안이 임한다. 평안의 반대는 죄이다. 죄를 지으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평안이 다 사라진다. 반대로 죄사함받고 은혜받으면 평안하다. 제물이 많고 적고, 지위가 높고 낮은 것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평안을 빌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 통해 죄사함받고 은혜 받아서 참 평안을 누릴수 있도록 기도해주라는 것이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다. 좋은 소식, 평화 공포, 복된 소식, 구원 공포라는 여러 말로 설명한다. 의미가 다 같은 것이다.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받으면 평안이 임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고 복된 것이다.
6절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을 싫어하고 믿지 않겠다고 하고 핍박하고 박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평안도 그 집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고 그 수고한 것이 자신에게로 다 돌아오게 된다. 그 사람이 믿으면 열매 맺으니까 좋고 믿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와 복이 되니까 좋다.
전도해서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안믿는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된다. 전도는 하면 할수록 복이 된다. 들으면 들어서 좋고 안들으면 안들어도 좋은 것이 복음 전하는 일이다.
7-9절
복음을 전하면 배척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복음 전해준 사람들에게 음식도 대접하고 마실 것도 제공한다. 그때 사양하지 말고 먹고 마시라는 것이다. 대접 받는 것을 거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싫어하고 반대하고 박해하는 경우 나를 싫어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어느 동네게 가든지 영접하는 사람들, 복음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뻐서 대접도 잘한다. 그러면 먹고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고 힘있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
10-11절
반대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욕하고 대적하고 무시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주님 말씀대로 되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영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셨으니까 그런 사람도 있는줄로 알면 된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복음 전하실때 환영 받지 못하고 미움 받을 때가 더 많았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주님도 이런 대접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너무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발에 묻은 먼지도 떨어버리라는 것은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신세 지지 말고 떠나라는 것이다.
13-14절
주님께서 실제로 배척을 당하신 것을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고라신, 벳새다를 예를 들으셨다. 가버나움 가까운 곳인데 예수님이 권능을 많이 베푸신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가 많이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수 있는 기회를 많이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은 이방도시로 믿지 않고 심판 받은 도시이다. 고라신과 벳새다는 권능을 목격하고도 믿지 않았기에 두로와 시돈보다 더 심하게 심판 받을 것이다.
15절
가버나움은 주님의 복음 전도의 근거지이다. 그들이 믿었더라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을 받았을텐데 주님을 가장 많이 접하고 말씀도 가장 많이 듣고 기적도 가장 많이 보았는데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심판이 더욱 클 것이다.
주님도 이런 일을 겪으셨다. 공을 많이 들이시고 많은 역사를 보여주셨는데도 믿지 않고 거부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들이 낙심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은 멸시 천대를 받아도 낙심하거나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16절
전도자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자를 거부하는 것은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했는데 안믿는 경우, 핍박만 하고 욕만 잔뜩 먹으면 낙심되어서 속상해하지 말고 나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거부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힘써 전도했는데 듣고 영접하면 얼마나 기쁘고, 열심히 전도했는데 듣지 않고 반대하고 거부하면 지친다. 낙심이 된다. 속이 상한다. 실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이 원리가 참 중요하다. 나를 영접한다고 교만해질 필요가 없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나를 거부한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도 없다.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된다.
17절
칠십인이 전도하면서 많은 역사들을 경험했다. 주의 이름으로 전할때 귀신들도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신이 나서 돌아와서 보고를 했다.
18-19절
주님께서 이미 다 보시고 알고 계셨다.
전도자들에게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했다. 사도시대에는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고 뱀과 전갈에 물려도 죽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날 이 말씀을 시험했다가 죽은 자들이 있다.
이 말씀은 뱀과 같이 독을 주고, 전갈과 같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악독한 사람들이 있지만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0절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크게 기뻐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살아갈 일이다.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이요 은혜이다. 이것이 가장 큰 기쁨의 이유이다. 이 기쁨을 실제로 누리면서 감사 충만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이런 기쁨을 많이 잃어버렸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