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수요예배 설교(누가복음 11장 1-13절/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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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1-12-1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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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주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자기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다.
세례요한도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예수님도 이 제자의 요청대로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이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제대로 지침을 주셨다. 주기도를 외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의 원리와 방법을 잘 배워야 하겠다.
마태복음 6장의 내용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서로 비교하면서 말씀을 보겠다.
2절
"아버지여"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려준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기도는 명상이 아니다. 독백이 아니다.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 중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얘기하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불교에서는 불상 앞에서 비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에게나 우상에게 비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이다.
예배 시간에 대표로 기도할 때 여러 사람이 듣기도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것이지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에서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라고 하셨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다. 사람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막 해버린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 틀렸다. 기도는 설교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고 진실하고 참되게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전체에 충만하시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시고 초월적으로 존재하시다는 의미이다. 온 세상과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절대 권세자라는 의미이다. 만물과 사람을 초월해서 거룩하게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우리와 친숙한 아버지이시다.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알려주셨다. 예수님도 직접 그렇게 기도하셨다. 성경에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 너무 거룩해서 상종하기 어려운 분으로 두렵게만 여겼던 것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빠는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때 친밀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본능적으로 사랑이 넘쳐서 하나님을 부르는 관계에 있음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부르면 마음에 평안이 임한다. 그것만으로도 은혜 받을 때가 참 많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 모든 사정을 아뢰고 의지할수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합당한 존귀를 올려드리라는 의미이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인격이고 그 사람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과 능력과 모든 것이 이름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올려드렸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망령되게 일컫고 남용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많이 한다. 존귀하게 여기면서 영광을 올려드리기는 커녕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사야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나라를 두가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영혼이 들어가는 장소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 가는 것이다.
또 하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주기도에서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상이 되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복음을 증거하셨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는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가 된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뒤집어서 인간 편에서 말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마음과 내 삶의 영역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안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면 지옥 같은 세상,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는 세상에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은혜를 누릴수 없게 된다. 고통의 세상, 불행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겠다.
마태복음 6:10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의가 가득하고 은혜가 충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너무 많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하나님과 싸우는 일이 더 많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내 욕심대로 기도하면 안된다. 예수
님은 기도하실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려고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중에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발람은 기도를 잘못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욕심대로 구하는 잘못된 기도를 했다. 그래서 결국 실패하는 자가 된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3절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은 두가지 의미이다. 육신의 양식과 영적인 양식이다.
그런데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매일 매일 먹어야 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매일 매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애굽기 16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을 허락하셨다. 욕심 부려서 많이 챙기면 벌레가 나고 먹을수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내가 일해서 수고해서 먹어도 일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우리를 살리시고 먹이신다.
정말 추구해야 할 양식은 영적 양식이다.
요한복음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육신의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영생을 얻을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영이 살고 영혼이 힘을 얻는다. 양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은 다 책임져 주신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양식은 있고 마실 것도 있는데 여호와의 양식을 듣지 못하면 기근, 기갈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할 제목이다. 말씀을 통해 영의 양식을 먹고 영이 살고 힘을 얻을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4절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을 믿을 때 완전히 사함을 받아서 용서받고 동시에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칭의).
그런데 주기도를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용서받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잘 이해해야 한다.
원래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용서를 받는다. 주기도의 내용은 법적으로는 믿음으로 죄용서를 받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 늘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거기에서 벗어난다. 해방이 된다. 자유함을 얻는다.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
마태복음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았어도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 잘못된 관계 때문에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용서해버려야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는데 그것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하는 것이 내가 용서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힌 것을 풀어버려야 한다. 용서하므로 내가 더 평안해지고 은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남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자기를 위해서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시험을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어디에나 시험이 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중에도 시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이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장소에 병균이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으면 된다. 마귀는 언제 어디서나 늘 시험하지만 그래도 내가 시험에 들지 않으면 영적으로 건강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붙들려 가실때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다.
마태복음 6:13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죄악이 가득한 세상인데, 악한 세상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이다. 세상은 악이 성행하는데 악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대개는 왜냐하면 이라는 뜻이다. 넣어서 하는 것이 좋다. 앞에 있는 것을 다 받아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가 된다.
주기도대로 기도하면 참 훌륭한 기도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범적인 아름다운 기도이다.
5-8절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주셨다.
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행 중에 벗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 떡 세덩이만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계속 요청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해주셨다. 계속 달라고 간청하면 결국 준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간절하게 간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간절하게 간청하겠나? 절박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이렇게 할 것이다. 정말 필요한 사람, 없으면 안되는 사람은 하다가 그만 두지 않는다. 끝까지 구한다. 받을때까지 간청한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이런 간절한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9-13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다. 구하면 받고 찾는 이는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셨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다 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두드리는 것이다.
아들이 생선 달라는데 뱀주고 알을 달라는데 전갈줄 아버지는 없다.
우리는 다 죄인이고 악한 자들이다. 그래도 아들이 달라고 하면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나는 못먹어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최고로 좋은 것, 성령 충만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성령 충만하면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승리하며 만족하며 믿음생활을 할수 있다.
우리도 구해야 할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은혜를 주시고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1절
주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자기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다.
세례요한도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예수님도 이 제자의 요청대로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이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제대로 지침을 주셨다. 주기도를 외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의 원리와 방법을 잘 배워야 하겠다.
마태복음 6장의 내용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서로 비교하면서 말씀을 보겠다.
2절
"아버지여"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려준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기도는 명상이 아니다. 독백이 아니다.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 중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얘기하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불교에서는 불상 앞에서 비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에게나 우상에게 비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이다.
예배 시간에 대표로 기도할 때 여러 사람이 듣기도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것이지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에서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라고 하셨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다. 사람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막 해버린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 틀렸다. 기도는 설교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고 진실하고 참되게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전체에 충만하시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시고 초월적으로 존재하시다는 의미이다. 온 세상과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절대 권세자라는 의미이다. 만물과 사람을 초월해서 거룩하게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우리와 친숙한 아버지이시다.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알려주셨다. 예수님도 직접 그렇게 기도하셨다. 성경에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 너무 거룩해서 상종하기 어려운 분으로 두렵게만 여겼던 것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빠는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때 친밀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본능적으로 사랑이 넘쳐서 하나님을 부르는 관계에 있음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부르면 마음에 평안이 임한다. 그것만으로도 은혜 받을 때가 참 많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 모든 사정을 아뢰고 의지할수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합당한 존귀를 올려드리라는 의미이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인격이고 그 사람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과 능력과 모든 것이 이름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올려드렸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망령되게 일컫고 남용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많이 한다. 존귀하게 여기면서 영광을 올려드리기는 커녕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사야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나라를 두가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영혼이 들어가는 장소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 가는 것이다.
또 하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주기도에서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상이 되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복음을 증거하셨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셨는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가 된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뒤집어서 인간 편에서 말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마음과 내 삶의 영역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안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면 지옥 같은 세상,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는 세상에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은혜를 누릴수 없게 된다. 고통의 세상, 불행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겠다.
마태복음 6:10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의가 가득하고 은혜가 충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너무 많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하나님과 싸우는 일이 더 많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내 욕심대로 기도하면 안된다. 예수
님은 기도하실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려고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중에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발람은 기도를 잘못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욕심대로 구하는 잘못된 기도를 했다. 그래서 결국 실패하는 자가 된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3절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은 두가지 의미이다. 육신의 양식과 영적인 양식이다.
그런데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매일 매일 먹어야 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매일 매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애굽기 16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을 허락하셨다. 욕심 부려서 많이 챙기면 벌레가 나고 먹을수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내가 일해서 수고해서 먹어도 일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우리를 살리시고 먹이신다.
정말 추구해야 할 양식은 영적 양식이다.
요한복음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육신의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영생을 얻을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영이 살고 영혼이 힘을 얻는다. 양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은 다 책임져 주신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양식은 있고 마실 것도 있는데 여호와의 양식을 듣지 못하면 기근, 기갈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할 제목이다. 말씀을 통해 영의 양식을 먹고 영이 살고 힘을 얻을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4절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을 믿을 때 완전히 사함을 받아서 용서받고 동시에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칭의).
그런데 주기도를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용서받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잘 이해해야 한다.
원래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용서를 받는다. 주기도의 내용은 법적으로는 믿음으로 죄용서를 받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 늘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거기에서 벗어난다. 해방이 된다. 자유함을 얻는다.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
마태복음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았어도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 잘못된 관계 때문에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용서해버려야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는데 그것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하는 것이 내가 용서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힌 것을 풀어버려야 한다. 용서하므로 내가 더 평안해지고 은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남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자기를 위해서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시험을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어디에나 시험이 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중에도 시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이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장소에 병균이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으면 된다. 마귀는 언제 어디서나 늘 시험하지만 그래도 내가 시험에 들지 않으면 영적으로 건강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붙들려 가실때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다.
마태복음 6:13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죄악이 가득한 세상인데, 악한 세상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이다. 세상은 악이 성행하는데 악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대개는 왜냐하면 이라는 뜻이다. 넣어서 하는 것이 좋다. 앞에 있는 것을 다 받아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가 된다.
주기도대로 기도하면 참 훌륭한 기도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범적인 아름다운 기도이다.
5-8절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주셨다.
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행 중에 벗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 떡 세덩이만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계속 요청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해주셨다. 계속 달라고 간청하면 결국 준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간절하게 간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간절하게 간청하겠나? 절박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이렇게 할 것이다. 정말 필요한 사람, 없으면 안되는 사람은 하다가 그만 두지 않는다. 끝까지 구한다. 받을때까지 간청한다. 그러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이런 간절한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9-13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다. 구하면 받고 찾는 이는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셨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 다 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두드리는 것이다.
아들이 생선 달라는데 뱀주고 알을 달라는데 전갈줄 아버지는 없다.
우리는 다 죄인이고 악한 자들이다. 그래도 아들이 달라고 하면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나는 못먹어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최고로 좋은 것, 성령 충만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성령 충만하면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승리하며 만족하며 믿음생활을 할수 있다.
우리도 구해야 할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은혜를 주시고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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