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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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주일오전예배 설교(마태복음 10장 16-23절/지혜롭고 순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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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7-19 15:36 조회1,614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DrOCYWpl9_I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를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곁에 두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시킨 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세상을 향해 가는 제자들에게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원리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할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1. 성도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주님의 제자들을 ‘양’으로, 그 제자들이 들어가서 활동해야 할 세상을 ‘이리’로 묘사하셨습니다. 양은 여리고 순결하고 약한 동물입니다. ‘이리’는 힘이 있고 잔인하며, 더구나 양을 잡아먹는 교활한 짐승입니다. 세상은 이리처럼 성도를 물고, 찢고, 잡아먹고, 죽이려 합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몹시 걱정되고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상이 어떤 곳임을 아시면서 왜 제자들을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내시는 것일까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전도이기에, 전도자에게는 주님이 항상 함께 해 주시고, 천국에서 큰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면 이리가 양을 물고 찢고 잡아먹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도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습니다. 성도가 조금만 방심하면 이리에게 물어뜯기고 상처를 받고 잡아먹히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이리 같고, 때로는 믿는 사람 중에도 이리 노릇을 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사람들을 삼가라. 17절에 보면 주님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 중에 양과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이리와 같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자기가 이리 가운데 나아가는 양인 것을 깨닫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신앙의 손해를 보지 아니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공회”란 산헤드린공회를 말하는데, 이스라엘에 12지파가 있죠? 그 각 지파에서 6명씩 뽑아 전체 72인으로 구성된 공회가 산헤드린 공회인데 이스라엘의 최고 법정입니다. “회당”은 동네마다 있는데 거기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재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도가 신앙을 지키려면 세상 법정에 끌려가고 채찍질을 당하고 많은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총독은 빌라도와 같은 지역 치리자를 가리키고, 임금은 헤롯과 같은 왕들을 가리킵니다. 전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총독이나 임금에게 끌려갈 일도 없고, 환난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말씀을 양보하고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환난을 당하지 않겠지만 성경대로 살려고 하면 환난을 당합니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둘째.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9-20절에 보면 총독이나 임금들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성령님께서 그 상황과 형편에 맞도록 말할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지키는 자에게 성령이 같이 하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하다가 인간의 지혜와 꾀로 대답하면 오히려 실패하고 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서로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1절에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서로 대적하고 서로 죽게 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까운 가족들이 서로 배신하고 잡아주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디 숨어 있느냐” 물을 때 잡아주지 않으면 자기가 죽게 되므로 할 수 없이 잡아줍니다. 얼마나 무서운 세상입니까? 성도가 성도를 잡아주고, 목사가 목사를 잡아주어 죽음에 넘겨줍니다. 참 무서운 환란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사람을 잡아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넷째.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22절에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고 말씀을 지키며 살려고 하다가 미움을 받습니다. 전도하다가 미움을 받습니다. 세상은 한 번도 복음을 좋아한 적이 없었고,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때가 없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세상은 교회를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자기들을 살리려고 전도하고, 자기들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전도자들을 세상은 이렇게 미워합니다. 24-25절에 보면 예수님을 향해서 바알세불이라 욕을 하고 핍박해서 죽였는데 하물며 예수님 믿는 성도들은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바울은 전도하다가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습니까?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2. 이리들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은 지혜를 상징하고 비둘기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첫째. “뱀 같이 지혜롭고” 성경에서 뱀은 마귀를 상징합니다. 항상 악하고 나쁜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게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니 좀 이상하게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는 뱀을 좋게 표현한 것이 아니고 뱀 같이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의미입니다.
a) 뱀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을 잘하는 동물입니다. 뱀은 산이나 나무나 바위나 바다나 땅이나 물속이나 땅속이나 나무 위에나 아스팔트 위에나 가시덤불 속에서도 다 적응하고 살아갑니다. 성도에게 이런 지혜로운 처세술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b) 하늘의 지혜로 살라는 뜻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자기 지혜로 한 것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주는 지혜 즉 사탄의 지혜로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지혜로 살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땅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입니다. 야고보서 3:15-19에 보면 세상 지혜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런 세상 지혜로 살면 시기와 다툼과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위로부터 오는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둘째.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순결이라는 것은 순진함, 깨끗함, 소박함, 단순함의 뜻이 있습니다.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말은 간교해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는 지혜로우면서도 또 순결해야 합니다. 비둘기는 새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데 사용하는 새입니다. 성도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깨끗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꾀와 수단으로 하지 말고, 순진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제물로 바쳐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리 같은 세상에서 양같이 순하고 착한 그리스도인이 살아남고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지혜와 순결입니다. 세상이 악하더라도 우리는 순결해야 합니다. 함께 악해지고 함께 타협하며 불순함에 물들면 안됩니다. 악을 거절하는 지혜, 의를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와 순결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셋째.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절에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승리는 참고 견디는 자에게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나가면서 말씀을 지켜야합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나가야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 견디는 그 행위로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믿음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승리하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세에는 참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은 끝까지 견디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3절에 보면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저 동네로 가고, 저 동네에서도 핍박을 하면 또 다른 동네로 가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하나님의 권고와 위로가 온다는 뜻입니다.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주님의 권고가 온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걸어가면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희망이 없다” “갈 길이 막혔다”고 말하지 말고 계속하여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옵니다. 환난과 시험이 많은 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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