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9 수요예배 설교(열왕기하 5장 1-19절/나아만의 나병을 고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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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7-2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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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강대국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나라의 실세였다. 전에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왕에게 신임과 총애를 받는 존귀한 자였다. 백성들도 그를 존경하고 주변 국가에서도 그를 인정했다. 나아만은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졌고 왕의 신임을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자로서 사람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나병환자였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였지만 그는 나병환자로서 서서히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나병은 오늘날 죄를 상징한다. 나아만은 나라를 구했지만 정작 자기 몸을 구하지 못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군대의 힘으로도 나병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나아만은 나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수 없다.
이 나병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병과 같은 죄가 다 있다. 그래서 죄 때문에 두려워하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인생들이다. 죄 용서 받지 못하면 절대 행복할수 없고, 심판을 피할길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살 길이 없다.
그런데 본문에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는 놀라운 은혜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숨은 죄를 용서받고 문제를 해결받아야 하겠다.
2-3절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종을 통해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전쟁 중에 잡혀온 포로이다. 나라를 잃고 부모 형제를 떠나서 먼 타국에 포로잡혀 있는 불쌍한 신세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고 보살펴 주는 사람 없는 처량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녀가 엘리사에 대한 소식을 나아만에게 전했다.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한 것이다.
소녀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되어 능력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람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어린 소녀가 전해준 것이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수 있다는 말과 같다. 나아만에게는 병을 고칠수 있다는 소식이 가장 좋은 소식이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의 부인과 나아만이 믿고 왕에게 말하고 이스라엘까지 찾아갔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나? 세상에 나병을 고칠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라고 무시했으면 고침받을수 없었을텐데 그 말을 듣고 믿음으로 소망을 갖고 이스라엘로 찾아갔다.
이스라엘에서 온 소녀가 놀라운 일을 했다. 큰 용사도 할수 없고 아람왕도 할수 없는 일을 소녀가 했다. 이로 인해 나아만이 고침받고 아람에 하나님이 증거되었다.
어린아이도 예수님을 전할수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받고 천국간다는 것을 주일학생들은 다 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이 소식을 몰라서 죄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 소식만 들으면 예수님 믿고 죄사함받고 영생얻을 자들이 세상에는 있다.
어린 소녀가 한 일은 주일학생들도 할수 있는 일이다. 나아만은 하나님을 모르고 엘리사를 몰라서 죽어가고 있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른다. 아람에 포로 잡혀간 이스라엘 소녀가 복음을 전함으로 용사를 살렸다.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믿음으로 놀라운 일을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시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이다. 성경전체의 핵심이다. 세례요한이 첫째로 한 말씀이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하겠다.
4-5절
나아만은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아람 왕에게 가서 전했다. 그랬더니 아람 왕도 그 말에 기대를 걸고 편지를 써주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아만은 왕의 편지를 가지고 은 십 달란, 금 육천개, 의복 열벌과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갔다.
나아만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모르니 많은 것들을 가져갔지만 이런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6-7절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아람 왕의 편지를 전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글의 내용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소서"였다.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로 시비를 걸어 전쟁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병은 당대에 불치병이었는데 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니 이렇게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8절
엘리사는 이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엘리사는 자기가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왕이 당황하고 두려워한 문제를 엘리사는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했다.
죄의 문제는 왕이 해결할수 없고, 어떤 사람도 해결할수 없다.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만 해결할수 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께로 가져가야 한다.
세상의 권세자가 해결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에게로 다 나아가면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시는 것이다. 죄사함받고 나병도 고쳐주시고 인생의 근본 문제들, 고민들을 다 해결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의 내용을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우리의 문제 고민 죄를 모두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다. 그래서 주님께 해결함을 받아야 하겠다.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기라.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다.
9-10절
나아만이 엘리사에게로 갔다. 그런데 엘리사는 직접 나오지 않고 사자를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고 말을 전한다.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수 있는 방법을 처방해 주었다.
이스라엘와 아람은 적대국이다. 그런데 아람의 군대장관이 병으로 죽으면 이스라엘이 유리한 면이 있다. 원수 나라에 능력있는 장군이 있으면 이스라엘에 불리할텐데 고쳐주고, 오히려 변화시켜 우리 편으로 만든다.
병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아주 쉬운 방법이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면 낫는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돈도 안든다. 고생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고칠수 있는 법을 알려줬다. 그러면 감사하다고 하고 일곱번 씻으면 나았을텐데 나아만은 화를 낸다.
11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나아만이 화를 내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오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찾아가면 선지자가 마중 나와서 인사하고 하나님께 손들어 기도하고 상처부위에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고 말만 전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이것이 문제이다.
나아만은 자기가 나병 환자라는 것을 잊었다. 병 고침받으러 온 것은 잊고 자신이 아람 군대장관인 것만 생각했다. 자기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높이면서 환대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12절
아람에 요단강보다 훨씬 더 좋은 강물이 있다는 것이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해야 병을 고침을 받을수 있는 것인데 병고치는데 있어 나아만의 생각이 방해물이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때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 내가 교회 나오면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환영해주고 나를 위해주고 대접해 줄 것이다. 특별히 세상에서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교회에 나갔더니 대접을 안해주면 섭섭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왔는냐 하면서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때에는 세상 지위, 돈이 많든, 공부 많이 했든 다 제쳐두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심정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은혜와 복을 받을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장군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 앞에서 군대장관이 무슨 소용인가? 나아만은 나병을 고침받으러 온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나병환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올때에는 직분도 내려놓고 세상 지위와 명예 영광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13절
화내고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그의 종들이 잘 권면했다.
나아만의 종들이 지혜롭게 권면을 잘했다.
종들은 나아만에게 나병환자인 것을 깨우쳐 주었다. 병 고치러 온 것이지 대접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병 고칠수 있는 처방을 말해주었는데 왜 하지 않냐고 말했다. 더 힘든 것도 할텐데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으라고 하는데 하지도 않고 가서야 되겠냐고 했다.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나병 고치는데 전재산을 내라고 해도 냈을 것이고 험산준령에 가서 약초를 캐오라고 해도 캐왔을 것이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들었다. 나아만은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듣는 좋은 성품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의 말도 잘 들었고 종들의 권면도 잘 들었다.
아랫사람의 말이라도 잘 들었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았다.
우리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이 100% 완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장군이라도 판단과 생각이 틀릴수 있다. 아랫 사람의 말이라도 잘 들으면 유익하고 복된 길을 갈 수 있다.
14절
엘리사 선지자가 말한대로 요단강에 내려가서 일곱번 씻었다. 그랬더니 나병이 깨끗하게 나아서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었다. 요단강에 효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종할때 낫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낫게 하실수 있다. 그런데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으라고 하신 것은 순종을 보기 위해서이다. 말씀대로 순종하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낫게 해주신 것이다.
그는 순종하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발가벗고 요단강에서 몸을 씻었다. 나병을 고침받고 새사람이 되어 회복되는 복을 받았다.
순종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 "내가 장군이다"하는 자세로 있으면 순종하지 못한다. 장군은 명령하는 사람이다. 나아만은 항상 명령을 내리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엘리사 앞에서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고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말한다. 15절과 17절, 18절에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표현한다.
순종할때부터 "나는 종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나는 장군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절대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종이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명령할 자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종의 마음을 갖고 순종을 잘 해야 한다. 종의 정신을 가지면 순종이 쉽다. 이 정신이 없으면 순종이 안된다.
빌립소서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성경에 모든 기적들, 복받는 길이 순종할때 일어났다. 오늘날도 순종만하면 이런 은혜를 받을수 있다. 마음에 종의 정신이 없으니 순종이 잘 안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나올때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나오고 하나님의 명령 앞에 "나는 종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다.
15절
나아만이 병이 다 낫고 다시 찾아와서 고백한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병을 고침받고 하나님을 깨닫고 믿음을 가진 것이다.
16-17절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많은 예물을 드리려 했지만 엘리사가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흙을 가지고 갈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제단을 쌓으려고 한 것인데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만 믿겠다고 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조금 부족한 믿음이다.
18절
하나님만 믿겠다고 하면서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아람왕이 림몬신당에서 경배할때 동행할수 밖에 없으니 그 일만은 용서해달라고 한다.
이것도 아쉬운 면이 있다. 자기가 다 결정해놓고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의 신하로서 이 일을 할수밖에 없으니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 섬기면서 이렇게 믿음생활 하는 자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말하고 선지자에게 해결방법을 구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도움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사정이 이러니 할수 밖에 없다고 결정하고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기적을 맛보고 병을 고침받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면 조금 더 좋은 믿음으로 자라날수 있었을텐데 거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대로 합당한 믿음으로 자라나야 하겠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았는데
이스라엘에서 포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귀한 일을 했다.
자기가 믿은 하나님과 선지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소식으로 생명을 살리고 아람에 하나님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도 이렇게 할수 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믿고 이스라엘에 찾아와 순종하여 병을 고침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 은혜가 우리들에게도 임했으면 좋겠다.
1절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강대국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나라의 실세였다. 전에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왕에게 신임과 총애를 받는 존귀한 자였다. 백성들도 그를 존경하고 주변 국가에서도 그를 인정했다. 나아만은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졌고 왕의 신임을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자로서 사람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나병환자였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였지만 그는 나병환자로서 서서히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나병은 오늘날 죄를 상징한다. 나아만은 나라를 구했지만 정작 자기 몸을 구하지 못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군대의 힘으로도 나병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나아만은 나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수 없다.
이 나병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병과 같은 죄가 다 있다. 그래서 죄 때문에 두려워하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인생들이다. 죄 용서 받지 못하면 절대 행복할수 없고, 심판을 피할길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살 길이 없다.
그런데 본문에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는 놀라운 은혜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숨은 죄를 용서받고 문제를 해결받아야 하겠다.
2-3절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종을 통해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전쟁 중에 잡혀온 포로이다. 나라를 잃고 부모 형제를 떠나서 먼 타국에 포로잡혀 있는 불쌍한 신세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고 보살펴 주는 사람 없는 처량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녀가 엘리사에 대한 소식을 나아만에게 전했다.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한 것이다.
소녀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되어 능력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람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어린 소녀가 전해준 것이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수 있다는 말과 같다. 나아만에게는 병을 고칠수 있다는 소식이 가장 좋은 소식이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의 부인과 나아만이 믿고 왕에게 말하고 이스라엘까지 찾아갔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나? 세상에 나병을 고칠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라고 무시했으면 고침받을수 없었을텐데 그 말을 듣고 믿음으로 소망을 갖고 이스라엘로 찾아갔다.
이스라엘에서 온 소녀가 놀라운 일을 했다. 큰 용사도 할수 없고 아람왕도 할수 없는 일을 소녀가 했다. 이로 인해 나아만이 고침받고 아람에 하나님이 증거되었다.
어린아이도 예수님을 전할수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받고 천국간다는 것을 주일학생들은 다 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이 소식을 몰라서 죄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 소식만 들으면 예수님 믿고 죄사함받고 영생얻을 자들이 세상에는 있다.
어린 소녀가 한 일은 주일학생들도 할수 있는 일이다. 나아만은 하나님을 모르고 엘리사를 몰라서 죽어가고 있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른다. 아람에 포로 잡혀간 이스라엘 소녀가 복음을 전함으로 용사를 살렸다.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믿음으로 놀라운 일을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시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이다. 성경전체의 핵심이다. 세례요한이 첫째로 한 말씀이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하겠다.
4-5절
나아만은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아람 왕에게 가서 전했다. 그랬더니 아람 왕도 그 말에 기대를 걸고 편지를 써주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아만은 왕의 편지를 가지고 은 십 달란, 금 육천개, 의복 열벌과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갔다.
나아만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모르니 많은 것들을 가져갔지만 이런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6-7절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아람 왕의 편지를 전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글의 내용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소서"였다.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로 시비를 걸어 전쟁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병은 당대에 불치병이었는데 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니 이렇게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8절
엘리사는 이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엘리사는 자기가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왕이 당황하고 두려워한 문제를 엘리사는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했다.
죄의 문제는 왕이 해결할수 없고, 어떤 사람도 해결할수 없다.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만 해결할수 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께로 가져가야 한다.
세상의 권세자가 해결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에게로 다 나아가면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시는 것이다. 죄사함받고 나병도 고쳐주시고 인생의 근본 문제들, 고민들을 다 해결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의 내용을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우리의 문제 고민 죄를 모두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다. 그래서 주님께 해결함을 받아야 하겠다.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기라.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주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다.
9-10절
나아만이 엘리사에게로 갔다. 그런데 엘리사는 직접 나오지 않고 사자를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고 말을 전한다.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수 있는 방법을 처방해 주었다.
이스라엘와 아람은 적대국이다. 그런데 아람의 군대장관이 병으로 죽으면 이스라엘이 유리한 면이 있다. 원수 나라에 능력있는 장군이 있으면 이스라엘에 불리할텐데 고쳐주고, 오히려 변화시켜 우리 편으로 만든다.
병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아주 쉬운 방법이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면 낫는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돈도 안든다. 고생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고칠수 있는 법을 알려줬다. 그러면 감사하다고 하고 일곱번 씻으면 나았을텐데 나아만은 화를 낸다.
11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나아만이 화를 내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오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찾아가면 선지자가 마중 나와서 인사하고 하나님께 손들어 기도하고 상처부위에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고 말만 전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이것이 문제이다.
나아만은 자기가 나병 환자라는 것을 잊었다. 병 고침받으러 온 것은 잊고 자신이 아람 군대장관인 것만 생각했다. 자기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높이면서 환대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12절
아람에 요단강보다 훨씬 더 좋은 강물이 있다는 것이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해야 병을 고침을 받을수 있는 것인데 병고치는데 있어 나아만의 생각이 방해물이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때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 내가 교회 나오면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환영해주고 나를 위해주고 대접해 줄 것이다. 특별히 세상에서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교회에 나갔더니 대접을 안해주면 섭섭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왔는냐 하면서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때에는 세상 지위, 돈이 많든, 공부 많이 했든 다 제쳐두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심정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은혜와 복을 받을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장군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 앞에서 군대장관이 무슨 소용인가? 나아만은 나병을 고침받으러 온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나병환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올때에는 직분도 내려놓고 세상 지위와 명예 영광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13절
화내고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그의 종들이 잘 권면했다.
나아만의 종들이 지혜롭게 권면을 잘했다.
종들은 나아만에게 나병환자인 것을 깨우쳐 주었다. 병 고치러 온 것이지 대접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병 고칠수 있는 처방을 말해주었는데 왜 하지 않냐고 말했다. 더 힘든 것도 할텐데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으라고 하는데 하지도 않고 가서야 되겠냐고 했다.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나병 고치는데 전재산을 내라고 해도 냈을 것이고 험산준령에 가서 약초를 캐오라고 해도 캐왔을 것이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들었다. 나아만은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듣는 좋은 성품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의 말도 잘 들었고 종들의 권면도 잘 들었다.
아랫사람의 말이라도 잘 들었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았다.
우리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이 100% 완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장군이라도 판단과 생각이 틀릴수 있다. 아랫 사람의 말이라도 잘 들으면 유익하고 복된 길을 갈 수 있다.
14절
엘리사 선지자가 말한대로 요단강에 내려가서 일곱번 씻었다. 그랬더니 나병이 깨끗하게 나아서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었다. 요단강에 효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종할때 낫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낫게 하실수 있다. 그런데 요단강에서 일곱번 씻으라고 하신 것은 순종을 보기 위해서이다. 말씀대로 순종하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낫게 해주신 것이다.
그는 순종하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발가벗고 요단강에서 몸을 씻었다. 나병을 고침받고 새사람이 되어 회복되는 복을 받았다.
순종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 "내가 장군이다"하는 자세로 있으면 순종하지 못한다. 장군은 명령하는 사람이다. 나아만은 항상 명령을 내리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엘리사 앞에서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고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말한다. 15절과 17절, 18절에 자신을 가리켜 "종"이라고 표현한다.
순종할때부터 "나는 종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나는 장군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절대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할 종이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명령할 자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종의 마음을 갖고 순종을 잘 해야 한다. 종의 정신을 가지면 순종이 쉽다. 이 정신이 없으면 순종이 안된다.
빌립소서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성경에 모든 기적들, 복받는 길이 순종할때 일어났다. 오늘날도 순종만하면 이런 은혜를 받을수 있다. 마음에 종의 정신이 없으니 순종이 잘 안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나올때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나오고 하나님의 명령 앞에 "나는 종입니다" 라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다.
15절
나아만이 병이 다 낫고 다시 찾아와서 고백한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병을 고침받고 하나님을 깨닫고 믿음을 가진 것이다.
16-17절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많은 예물을 드리려 했지만 엘리사가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흙을 가지고 갈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제단을 쌓으려고 한 것인데 이스라엘에만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만 믿겠다고 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조금 부족한 믿음이다.
18절
하나님만 믿겠다고 하면서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아람왕이 림몬신당에서 경배할때 동행할수 밖에 없으니 그 일만은 용서해달라고 한다.
이것도 아쉬운 면이 있다. 자기가 다 결정해놓고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의 신하로서 이 일을 할수밖에 없으니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 섬기면서 이렇게 믿음생활 하는 자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말하고 선지자에게 해결방법을 구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도움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사정이 이러니 할수 밖에 없다고 결정하고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기적을 맛보고 병을 고침받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면 조금 더 좋은 믿음으로 자라날수 있었을텐데 거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대로 합당한 믿음으로 자라나야 하겠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받았는데
이스라엘에서 포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귀한 일을 했다.
자기가 믿은 하나님과 선지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소식으로 생명을 살리고 아람에 하나님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도 이렇게 할수 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믿고 이스라엘에 찾아와 순종하여 병을 고침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 은혜가 우리들에게도 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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