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9 수요예배 설교(열왕기하 18장 1-18절/히스기야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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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8-19 21:33
조회1,2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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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다윗왕 다음으로 선하게 정치한 선한 왕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우상숭배한 악한 왕이었는데 히스기야는 아버지를 본받지 않고 선한 정치를 함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다.
아하스의 죄
열왕기하 16:2-4
아하스는 우상을 숭배하며, 매우 잘못된 길로 나아갔다. 히스기야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의 불신앙적인 모습, 우상숭배의 일들을 본받지 않고 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갔다.
3절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 요시야, 히스기야만 이 칭찬을 받았다.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믿음의 길을 알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다윗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왕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윗의 길로 행했는지 여부이다. 다윗의 길로 행한 왕은 선한 왕으로 칭찬받지만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은 왕은 악한 왕으로 책망받는다. 다윗의 신앙의 모델이다.
다윗의 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열왕기상 14:7-8
1) 내 명령을 지켜
2)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3)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말씀 잘 순종하고 믿음으로 산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이렇게 살았고 자녀들에게 유언도 이렇게 남겼다.
열왕기상 2:2-3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형통할지라
다윗은 자기가 이렇게 살았고 믿었다. 그리고 세상 떠날때 아들에게 이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이것이 복받는 길이다. 이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잘 되게 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후대 왕들이 대부분 다윗의 길로 가지 않았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을 연구한다. 그런데 그들이 성공은 꿈꾸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간 길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되고는 싶은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이다. 다 성공하기 원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간 바른 길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한다.
다윗이 얼마나 훌륭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았는가? 다윗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다윗처럼 살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는다. 가는 길이 다른데 목적지가 같을 수 있는가?
히스기야 왕은 다윗의 길을 갔다. 다윗처럼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칭찬받았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고 복받은 사람이 많다. 성경에 신앙의 영웅들이 많다. 건성으로 듣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를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니엘은 환난 중에 믿음을 지켰다. 포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다. 뜻을 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서 그렇게 했다. 우리도 아무리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상황을 만나도 다니엘처럼 살면 승리할수 있다. 능력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면서 믿음으로 살수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다윗의 길을 갔다. 그는 다윗을 본받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했다.
4절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는 일을 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을 한 것이다. 없애야 할 것을 없애는데 힘을 썼다. 그런데 그 우상들은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것들이다. 아버지 업적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욕먹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렸다. 이런 일을 할때 가족과 백성들이 다 찬성했겠나? 그러나 우상숭배함으로 이득본 자들, 기득권 세력들은 반대했을 것이다. 전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수십년 이어온 관행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런 일을 단행한다. 반대에 부딛히고 욕도 먹고 저항도 받았을테지만 꿋꿋하게 결단내려 이 일을 단행한다.
"제거하며 깨뜨리며 찍으며 부수고" 믿음이 아니면 할수 없는 일이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행할때 길로 인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서 물게 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놓고 뱀에 물린자마다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했다. 이 놋뱀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받고 영생얻게 된다는 것을 예표하는 구약의 그림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놋뱀을 버리지 않고 모세 사후 700년이 될때까지 놋뱀을 우상숭배했다.
히스기야는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불렀다. 놋조각이라는 뜻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하나님이 한때 귀하게 사용하셨던 물건이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를 신성시하면 안된다. 모세의 지팡이를 귀한 것으로 알고 우상숭배하면 되겠는가? 어떤 사람은 칼빈, 루터의 무덤을 숭배한다고 한다. 이것은 합당치 않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염려하심으로 모세가 죽은 다음 시체를 숨겼다는 말씀이 있다(유 1:9).
성도들은 무엇이나 우상이 될만한 것을 버려야 한다.
십자가도 우상이 되면 안된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중요한 것이고 교회를 표시하지만 십자가에 절하고 십자가를 놓고 예배를 드리고 십자가 없이는 기도하지 못하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지 어떤 형상을 섬기는 자리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성전 정결케 하시는 일을 하셨다. 성전에 가보니 성전 안에 장사하는 사람이 가득했다.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비둘기 파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으리 상을 엎으셨다.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것을 보고 기분이 상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우리 안의 우상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지배받고 두려워 벌벌 떨며 따라가는 것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수 있다.
우리도 히스기야 왕처럼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며 단호하게 버리는 일을 해야 하겠다. 그래야 하나님만 잘 섬길수 있게 될 것이다.
개혁은 그냥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 개혁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어긋나면 탈선이고 타락이다. 개혁하려면 저항세력이 많다. 말씀대로 하자고 하면 손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때 주저앉으면 안된다. 물러서지 말고 단호하게 믿음을 지키며 나아가야 한다. 히스기야는 정치적 계산하지 않고 신앙적인 판단만 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결단했다.
오늘날 우리도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으면 고치고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길로 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세운 것이 있다.
5-6절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우리도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물질, 권세, 사람, 지식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본드로 붙이는 것처럼 딱 달라붙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모습이다.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신앙생활이 히스기야의 모습이다.
신명기 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으니라
사는 비결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지들이다. 떨어지면 죽는다. 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요 15:4).
로마서 6:5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된 자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떨어지면 안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다. 성경대로 계명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모든 것을 바로 세워 나갔다.
7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해주심으로 형통의 복을 받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의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디로 가든지 주님과 동행하며 형통의 복을 누리는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이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배반은 나쁜 것이지만 앗수르 왕을 배반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부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면서 살았다.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한 적이 있다. 그때 이사야를 보내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하스가 기도하지 않고 앗수르의 도움을 구했다. 물질을 많이 바치면서 아수르를 의지했다. 잘못된 외교정책을 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배반했다. 외교 관계를 끊어버렸다. 조공바치지 않고 섬기지 않았다. 여호와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정책으로 살았다. 오직 하나님 오직 믿음의 신앙이다.
이렇게 하니 앗수르 왕이 가만히 있겠나?
13절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략해온다.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라고 한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항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만 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부르짖는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다 죽인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가 큰 위기를 만나고 전쟁도 경험하고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상황을 극복하고 복받는 믿음을 보여준다.
8절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히스기야가 블레셋을 완전히 점령했다.
히스기야가 잘한 것은 다윗의 행위를 본받은 것이다. 아버지가 우상숭배한 것 다 버리고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했더니 큰 은혜와 복을 받았다.
히스기야를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기뻐하는지 배워야 하겠다.
다윗처럼 되려면 다윗처럼 살면 된다. 그 사람이 히스기야이다. 많은 사람이 다윗에 대해서 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길로 가지 않아 실패하고 벌받았다.
우리가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서 우리도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다윗왕 다음으로 선하게 정치한 선한 왕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우상숭배한 악한 왕이었는데 히스기야는 아버지를 본받지 않고 선한 정치를 함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다.
아하스의 죄
열왕기하 16:2-4
아하스는 우상을 숭배하며, 매우 잘못된 길로 나아갔다. 히스기야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의 불신앙적인 모습, 우상숭배의 일들을 본받지 않고 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갔다.
3절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 요시야, 히스기야만 이 칭찬을 받았다.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믿음의 길을 알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다윗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왕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윗의 길로 행했는지 여부이다. 다윗의 길로 행한 왕은 선한 왕으로 칭찬받지만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은 왕은 악한 왕으로 책망받는다. 다윗의 신앙의 모델이다.
다윗의 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열왕기상 14:7-8
1) 내 명령을 지켜
2)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3)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말씀 잘 순종하고 믿음으로 산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이렇게 살았고 자녀들에게 유언도 이렇게 남겼다.
열왕기상 2:2-3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형통할지라
다윗은 자기가 이렇게 살았고 믿었다. 그리고 세상 떠날때 아들에게 이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이것이 복받는 길이다. 이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잘 되게 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후대 왕들이 대부분 다윗의 길로 가지 않았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을 연구한다. 그런데 그들이 성공은 꿈꾸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간 길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되고는 싶은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이다. 다 성공하기 원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간 바른 길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한다.
다윗이 얼마나 훌륭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았는가? 다윗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다윗처럼 살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는다. 가는 길이 다른데 목적지가 같을 수 있는가?
히스기야 왕은 다윗의 길을 갔다. 다윗처럼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칭찬받았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고 복받은 사람이 많다. 성경에 신앙의 영웅들이 많다. 건성으로 듣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를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니엘은 환난 중에 믿음을 지켰다. 포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다. 뜻을 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서 그렇게 했다. 우리도 아무리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상황을 만나도 다니엘처럼 살면 승리할수 있다. 능력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면서 믿음으로 살수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다윗의 길을 갔다. 그는 다윗을 본받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했다.
4절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는 일을 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을 한 것이다. 없애야 할 것을 없애는데 힘을 썼다. 그런데 그 우상들은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것들이다. 아버지 업적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욕먹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렸다. 이런 일을 할때 가족과 백성들이 다 찬성했겠나? 그러나 우상숭배함으로 이득본 자들, 기득권 세력들은 반대했을 것이다. 전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수십년 이어온 관행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런 일을 단행한다. 반대에 부딛히고 욕도 먹고 저항도 받았을테지만 꿋꿋하게 결단내려 이 일을 단행한다.
"제거하며 깨뜨리며 찍으며 부수고" 믿음이 아니면 할수 없는 일이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행할때 길로 인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서 물게 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놓고 뱀에 물린자마다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했다. 이 놋뱀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받고 영생얻게 된다는 것을 예표하는 구약의 그림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놋뱀을 버리지 않고 모세 사후 700년이 될때까지 놋뱀을 우상숭배했다.
히스기야는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불렀다. 놋조각이라는 뜻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하나님이 한때 귀하게 사용하셨던 물건이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를 신성시하면 안된다. 모세의 지팡이를 귀한 것으로 알고 우상숭배하면 되겠는가? 어떤 사람은 칼빈, 루터의 무덤을 숭배한다고 한다. 이것은 합당치 않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염려하심으로 모세가 죽은 다음 시체를 숨겼다는 말씀이 있다(유 1:9).
성도들은 무엇이나 우상이 될만한 것을 버려야 한다.
십자가도 우상이 되면 안된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중요한 것이고 교회를 표시하지만 십자가에 절하고 십자가를 놓고 예배를 드리고 십자가 없이는 기도하지 못하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지 어떤 형상을 섬기는 자리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성전 정결케 하시는 일을 하셨다. 성전에 가보니 성전 안에 장사하는 사람이 가득했다.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비둘기 파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으리 상을 엎으셨다.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것을 보고 기분이 상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우리 안의 우상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지배받고 두려워 벌벌 떨며 따라가는 것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수 있다.
우리도 히스기야 왕처럼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며 단호하게 버리는 일을 해야 하겠다. 그래야 하나님만 잘 섬길수 있게 될 것이다.
개혁은 그냥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 개혁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어긋나면 탈선이고 타락이다. 개혁하려면 저항세력이 많다. 말씀대로 하자고 하면 손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때 주저앉으면 안된다. 물러서지 말고 단호하게 믿음을 지키며 나아가야 한다. 히스기야는 정치적 계산하지 않고 신앙적인 판단만 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결단했다.
오늘날 우리도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으면 고치고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길로 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세운 것이 있다.
5-6절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우리도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물질, 권세, 사람, 지식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본드로 붙이는 것처럼 딱 달라붙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모습이다.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신앙생활이 히스기야의 모습이다.
신명기 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으니라
사는 비결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지들이다. 떨어지면 죽는다. 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요 15:4).
로마서 6:5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된 자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떨어지면 안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다. 성경대로 계명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모든 것을 바로 세워 나갔다.
7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해주심으로 형통의 복을 받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의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디로 가든지 주님과 동행하며 형통의 복을 누리는 길로 걸어가야 하겠다.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이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배반은 나쁜 것이지만 앗수르 왕을 배반한 것은 잘 한 일이다. 부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면서 살았다.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한 적이 있다. 그때 이사야를 보내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하스가 기도하지 않고 앗수르의 도움을 구했다. 물질을 많이 바치면서 아수르를 의지했다. 잘못된 외교정책을 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배반했다. 외교 관계를 끊어버렸다. 조공바치지 않고 섬기지 않았다. 여호와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정책으로 살았다. 오직 하나님 오직 믿음의 신앙이다.
이렇게 하니 앗수르 왕이 가만히 있겠나?
13절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략해온다.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라고 한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항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만 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부르짖는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다 죽인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가 큰 위기를 만나고 전쟁도 경험하고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상황을 극복하고 복받는 믿음을 보여준다.
8절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히스기야가 블레셋을 완전히 점령했다.
히스기야가 잘한 것은 다윗의 행위를 본받은 것이다. 아버지가 우상숭배한 것 다 버리고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했더니 큰 은혜와 복을 받았다.
히스기야를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기뻐하는지 배워야 하겠다.
다윗처럼 되려면 다윗처럼 살면 된다. 그 사람이 히스기야이다. 많은 사람이 다윗에 대해서 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길로 가지 않아 실패하고 벌받았다.
우리가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서 우리도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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