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주일오전예배 설교(사도행전 8장 26-40절/축복의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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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10-25 16:43
조회1,1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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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수레를 타고 광야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물도 없고 길도 없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사람이 잘못 들어가면 죽기도 하는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광야를 통과하면서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내시를 위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빌립을 그에게 보내고, 그 내시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까지 하셨습니다.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빌립에게 지시하시기를 일어나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광야인데 예루살렘에서 70Km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빌립이 광야로 가보니까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29절에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감동하셔서 그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만들고, 세례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39절을 보면 이러한 일을 다 마친 후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다고 하셨습니다. 내시가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내시 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이처럼 부지런히 역사하시고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1.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27절).
내시는 저 아프리카 지방에 있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드리러 왔다가 가는 길입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대략 1500km 이상의 거리입니다. 마차로 여행할 때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린 내시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신 것입니다. 먼 길을 여행하노라면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들어갈 것입니다. 더구나 광야 길은 아주 위험하고 힘든 길입니다. 그리고 내시는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사람이므로 할 일이 많았을 것이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가면서 먼 길을 예배하러 왔다가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사람 내시에게 있어서는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고 귀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배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바쳐드리는 귀한 시간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존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예배만큼 복되고 거룩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러 가기 위해서 준비할 때부터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 동안에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는 온통 은혜입니다. 이 내시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광야에서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멀고 험한 광야 길이 그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었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통해서 말씀으로 영적 양식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배를 통해서 능력과 새 힘을 얻고, 예배를 통해서 안식과 평안을 얻습니다. 성경에 보면 복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는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정성을 다해 제사(예배)를 드림으로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때는 예배를 번거롭게 생각하고 허물 있는 것으로 제사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은 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아벨은 왜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까? 가인은 제사(예배)를 잘 드리지 않았고 아벨은 제사(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의해서 복 받을 사람, 복 받지 못할 사람이 갈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는 왜 그렇게 큰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즉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 그 사람이 무엇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빌립을 광야에까지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까?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에까지 찾아와서 예배드리고 가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복 받을 일을 하면 복을 주시고, 죄를 지으면 징계하십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징계하십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왕이라도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하니까 그를 버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방인이고, 내시이고, 아프리카 지역 에디오피아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 이 사람에게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중하고 높여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수레 타고 가며 성경을 읽었습니다(28절)
내시는 예배를 마치고 수레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길을 가면서도 성경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냥 예배 시간에 나와서 앉아 있다가 가면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심령이 삽니다. 내시는 말씀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면서도 읽었습니다. 30-31에 보면 빌립이 가서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더니 깨닫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해가 잘 안 되어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김질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는 생활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을 다 알아야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고 읽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시가 내용을 모르면서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보내주시고 깨닫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11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 말씀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 받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마치고 가면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김질하면서 가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를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은혜받은 다음에 돌아갈 때 쏟아버리지 말고 끝까지 잘 보존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은혜받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고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쏟아버리게 하려고 시험합니다. 히브리서 2:1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계속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3. 빌립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습니다(31절)
31절에 보면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내시는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면서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참 겸손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몰라도 자기 체면을 생각해서 말 안할 수 있는데 그는 처음 만나는 빌립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이 그가 은혜받은 비결입니다. 34절에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내시가 읽은 성경은 이사야 53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받을 것을 예언한 부분인데 ‘도살자에게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끌려가는 이분,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한 것처럼 고난을 당하면서 그의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고난을 당한 이분이 누구인지 몰라서 고민했습니다. 빌립은 그 구절을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과 같이 순순히 끌려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주었습니다.
빌립이 성경을 가르쳐 줄 때 내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었습니다. 내시는 즉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쳐 줄 때 이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즉석에서 믿는 그의 순수함이 대단합니다. 이런 사람이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예배가 중요하고, 그 다음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고 은혜를 받으려면 이처럼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혼자 연구하려면 오래 걸릴 수 있는 어려울 문제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내시는 모르는 것을 빌립의 도움을 받아서 금방 해결했습니다.
4. 물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36-38절)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게 된 내시는 물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 씻음을 받은 표로 받는 것입니다. 내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때 미루지 않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말씀 배울 기회, 예수님 믿을 기회, 세례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예수님 믿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있으면서도 미룹니다. 우리가 은혜받기 원하면서도 말씀 배울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은혜를 받겠습니까?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이 은혜 받을 때인 줄 알고 힘써야 합니다.
사도행전 24:24-25에 보면 바울이 벨릭스 총독에게 전도할 때 총독의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즉시로 회개하고 예수님 믿었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을 터인데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하고 미루다가 결국 믿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지’ ‘교회에 나가야지’생각은 하면서도 미루다가 실패하고 후회하는지 모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결론: 내시가 받은 은혜와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광야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종 빌립을 만났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광야 길을 가다가 하나님이 보낸 전도자를 만난 것은 큰 은혜이며 복입니다. 광야에서 짐승이나 도적을 만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낸 전도자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셔서 빌립을 광야로 보내어 내시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35-38).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시는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광야의 길을 가다가 천하보다 귀한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예수 믿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셋째,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39에 보면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길을 갔습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구원의 기쁨으로 길을 갔습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고 길을 갔습니다. 광야 길, 쓸쓸하고 적막한 길이지만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기쁨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니까 은혜의 길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걸어가니까 새 힘이 솟아나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내시처럼 예배를 귀히 여깁시다. 말씀을 사모하고 읽어야 합니다. 주의 종을 존중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기회를 잃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수레를 타고 광야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물도 없고 길도 없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사람이 잘못 들어가면 죽기도 하는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광야를 통과하면서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내시를 위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빌립을 그에게 보내고, 그 내시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까지 하셨습니다.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빌립에게 지시하시기를 일어나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광야인데 예루살렘에서 70Km나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빌립이 광야로 가보니까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29절에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감동하셔서 그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만들고, 세례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39절을 보면 이러한 일을 다 마친 후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다고 하셨습니다. 내시가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내시 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이처럼 부지런히 역사하시고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1.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27절).
내시는 저 아프리카 지방에 있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드리러 왔다가 가는 길입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대략 1500km 이상의 거리입니다. 마차로 여행할 때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린 내시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신 것입니다. 먼 길을 여행하노라면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들어갈 것입니다. 더구나 광야 길은 아주 위험하고 힘든 길입니다. 그리고 내시는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사람이므로 할 일이 많았을 것이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가면서 먼 길을 예배하러 왔다가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사람 내시에게 있어서는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고 귀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배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바쳐드리는 귀한 시간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존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예배만큼 복되고 거룩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러 가기 위해서 준비할 때부터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 동안에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는 온통 은혜입니다. 이 내시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광야에서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멀고 험한 광야 길이 그에게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었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통해서 말씀으로 영적 양식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배를 통해서 능력과 새 힘을 얻고, 예배를 통해서 안식과 평안을 얻습니다. 성경에 보면 복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는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정성을 다해 제사(예배)를 드림으로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때는 예배를 번거롭게 생각하고 허물 있는 것으로 제사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은 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아벨은 왜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까? 가인은 제사(예배)를 잘 드리지 않았고 아벨은 제사(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의해서 복 받을 사람, 복 받지 못할 사람이 갈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는 왜 그렇게 큰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즉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 그 사람이 무엇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빌립을 광야에까지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까?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에까지 찾아와서 예배드리고 가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복 받을 일을 하면 복을 주시고, 죄를 지으면 징계하십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징계하십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왕이라도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하니까 그를 버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방인이고, 내시이고, 아프리카 지역 에디오피아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 이 사람에게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중하고 높여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수레 타고 가며 성경을 읽었습니다(28절)
내시는 예배를 마치고 수레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길을 가면서도 성경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냥 예배 시간에 나와서 앉아 있다가 가면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심령이 삽니다. 내시는 말씀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면서도 읽었습니다. 30-31에 보면 빌립이 가서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더니 깨닫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해가 잘 안 되어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김질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는 생활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을 다 알아야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고 읽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시가 내용을 모르면서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보내주시고 깨닫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11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 말씀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 받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마치고 가면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김질하면서 가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를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은혜받은 다음에 돌아갈 때 쏟아버리지 말고 끝까지 잘 보존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은혜받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고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쏟아버리게 하려고 시험합니다. 히브리서 2:1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계속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3. 빌립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습니다(31절)
31절에 보면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내시는 한 나라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면서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참 겸손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몰라도 자기 체면을 생각해서 말 안할 수 있는데 그는 처음 만나는 빌립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이 그가 은혜받은 비결입니다. 34절에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내시가 읽은 성경은 이사야 53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받을 것을 예언한 부분인데 ‘도살자에게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끌려가는 이분,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한 것처럼 고난을 당하면서 그의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고난을 당한 이분이 누구인지 몰라서 고민했습니다. 빌립은 그 구절을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과 같이 순순히 끌려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주었습니다.
빌립이 성경을 가르쳐 줄 때 내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었습니다. 내시는 즉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쳐 줄 때 이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즉석에서 믿는 그의 순수함이 대단합니다. 이런 사람이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예배가 중요하고, 그 다음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은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고 은혜를 받으려면 이처럼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혼자 연구하려면 오래 걸릴 수 있는 어려울 문제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내시는 모르는 것을 빌립의 도움을 받아서 금방 해결했습니다.
4. 물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36-38절)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게 된 내시는 물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 씻음을 받은 표로 받는 것입니다. 내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주실 때 미루지 않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말씀 배울 기회, 예수님 믿을 기회, 세례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예수님 믿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있으면서도 미룹니다. 우리가 은혜받기 원하면서도 말씀 배울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은혜를 받겠습니까?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이 은혜 받을 때인 줄 알고 힘써야 합니다.
사도행전 24:24-25에 보면 바울이 벨릭스 총독에게 전도할 때 총독의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즉시로 회개하고 예수님 믿었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을 터인데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하고 미루다가 결국 믿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지’ ‘교회에 나가야지’생각은 하면서도 미루다가 실패하고 후회하는지 모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결론: 내시가 받은 은혜와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광야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종 빌립을 만났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광야 길을 가다가 하나님이 보낸 전도자를 만난 것은 큰 은혜이며 복입니다. 광야에서 짐승이나 도적을 만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낸 전도자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셔서 빌립을 광야로 보내어 내시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복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35-38).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시는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광야의 길을 가다가 천하보다 귀한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예수 믿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셋째,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39에 보면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길을 갔습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구원의 기쁨으로 길을 갔습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고 길을 갔습니다. 광야 길, 쓸쓸하고 적막한 길이지만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기쁨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니까 은혜의 길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걸어가니까 새 힘이 솟아나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내시처럼 예배를 귀히 여깁시다. 말씀을 사모하고 읽어야 합니다. 주의 종을 존중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기회를 잃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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