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8 주일오전예배 설교(에베소서 3장 14-19절/무릎을 꿇고 비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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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11-08 16:33
조회1,2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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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라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15절을 보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이며 동시에 겸손하고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위해 항상 기도하는 바울, 감옥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염려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바울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14-15절).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각 사람에게 인격과 특성을 주셨다는 말이며, 각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살피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6절에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람에게는 겉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다. 겉사람은 육체, 몸을 가리키고, 속사람은 중생한 영혼, 거듭난 새 생명을 가리킵니다. 속사람이 나 자신의 본질이고 주체입니다. 영혼이 우리 몸 안에 있으면 산 사람이고 영혼이 떠나면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습니다. 따라서 육체도 중요하지만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 사람보다는 겉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의 양식보다 육의 양식에 관심이 많고, 영의 건강보다 육의 건강에 관심이 많고, 하늘보다는 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판단할 때도 외모로 판단합니다.
우리는 속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지만 중생한 영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2:2에 우리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어린아이이며, 히브리서 5장에는 우리는 초보적 교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도는 ‘내 영혼이 건강한가, 잘 자라고 있는가,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합니다. 속사람을 잘 돌보지 않으니까 속사람이 점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얼굴은 밝아지는데 심령은 어두워집니다. 몸은 튼튼해지는데 영적으로는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몸집은 커지는데 마음은 작아집니다. 그래서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어쩔 줄을 모르고 쓰러집니다.
구약의 사울 왕을 보십시오. 속사람이 병드니까 그의 삶이 엉망입니다. 여자들의 노랫소리 한 마디에 인생이 흔들려서 평생을 방황합니다. 마음에 불안과 시기와 미움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영혼이 피폐하니 믿음도 못 지키고, 왕의 도리도 못하고,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망쳐놓고, 결국 자살로 인생을 끝냅니다. 문제는 사울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자살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자살은 분명히 죄입니다. 남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고 자기를 죽이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자살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며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16:30에 보면 하나님께서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하며 탄식하셨습니다. 속사람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을 받고 능력을 받으면 속사람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38:3에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힘을 주셔서 강하게 만드신다고 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마음은 굳게 하는 법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 먹고, 보약 먹고, 운동한다고 속사람이 강해지는 것 아닙니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이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라고 해석하면 맞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주관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바울이 예수님 믿고 난 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나의 삶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7절 끝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이 구절을 풀어서 설명하면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신앙의 터가 굳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잘 박히고 견고해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들은 항상 흔들흔들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견고하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 믿음이 반석 위에 서 있다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홍수가 나서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뿌리가 견고해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을 때 잘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건물을 세울 때도 높은 건물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터가 견고해야 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 2:7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그분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씀합니다.
4.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8절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에는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듣는 것하고 실제로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거기 머물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감사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말씀을 순종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주시고, 삶을 주시고, 인생을 주시고, 몸을 주시고, 목숨을 주시고, 물과 피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가난하든지 늙든지 병들든지 죄를 짓든지 변함없이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아무 이유나 조건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랑이라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맛을 보면 우리는 천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바울의 마지막 기도는 무엇입니까? 19절 끝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선과 사랑과 은혜와 의와 능력과 지혜와 영광과 거룩 등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기도에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응답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20-21절에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5에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에베소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살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고, 사랑 가운데서 믿음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라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내용입니다. 15절을 보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이며 동시에 겸손하고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위해 항상 기도하는 바울, 감옥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염려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바울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14-15절).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각 사람에게 인격과 특성을 주셨다는 말이며, 각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살피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6절에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람에게는 겉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다. 겉사람은 육체, 몸을 가리키고, 속사람은 중생한 영혼, 거듭난 새 생명을 가리킵니다. 속사람이 나 자신의 본질이고 주체입니다. 영혼이 우리 몸 안에 있으면 산 사람이고 영혼이 떠나면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습니다. 따라서 육체도 중요하지만 영혼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 사람보다는 겉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의 양식보다 육의 양식에 관심이 많고, 영의 건강보다 육의 건강에 관심이 많고, 하늘보다는 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판단할 때도 외모로 판단합니다.
우리는 속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지만 중생한 영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2:2에 우리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어린아이이며, 히브리서 5장에는 우리는 초보적 교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도는 ‘내 영혼이 건강한가, 잘 자라고 있는가,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합니다. 속사람을 잘 돌보지 않으니까 속사람이 점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얼굴은 밝아지는데 심령은 어두워집니다. 몸은 튼튼해지는데 영적으로는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몸집은 커지는데 마음은 작아집니다. 그래서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어쩔 줄을 모르고 쓰러집니다.
구약의 사울 왕을 보십시오. 속사람이 병드니까 그의 삶이 엉망입니다. 여자들의 노랫소리 한 마디에 인생이 흔들려서 평생을 방황합니다. 마음에 불안과 시기와 미움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영혼이 피폐하니 믿음도 못 지키고, 왕의 도리도 못하고,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망쳐놓고, 결국 자살로 인생을 끝냅니다. 문제는 사울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자살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자살은 분명히 죄입니다. 남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고 자기를 죽이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자살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며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16:30에 보면 하나님께서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하며 탄식하셨습니다. 속사람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을 받고 능력을 받으면 속사람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38:3에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힘을 주셔서 강하게 만드신다고 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마음은 굳게 하는 법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 먹고, 보약 먹고, 운동한다고 속사람이 강해지는 것 아닙니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이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라고 해석하면 맞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주관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바울이 예수님 믿고 난 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나의 삶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3.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7절 끝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이 구절을 풀어서 설명하면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신앙의 터가 굳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잘 박히고 견고해야 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들은 항상 흔들흔들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견고하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 믿음이 반석 위에 서 있다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홍수가 나서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뿌리가 견고해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을 때 잘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건물을 세울 때도 높은 건물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터가 견고해야 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 2:7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그분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씀합니다.
4.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8절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에는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듣는 것하고 실제로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거기 머물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감사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말씀을 순종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주시고, 삶을 주시고, 인생을 주시고, 몸을 주시고, 목숨을 주시고, 물과 피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가난하든지 늙든지 병들든지 죄를 짓든지 변함없이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아무 이유나 조건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랑이라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맛을 보면 우리는 천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바울의 마지막 기도는 무엇입니까? 19절 끝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선과 사랑과 은혜와 의와 능력과 지혜와 영광과 거룩 등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기도에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응답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20-21절에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5에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에베소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를 살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고, 사랑 가운데서 믿음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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