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 주일오전예배 설교(누가복음 17장 11-19절/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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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11-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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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 다시 찾아와 감사하였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를 교훈하고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1.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에 한 동네에 들어가시자 나병 환자 열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이 많은 이적을 행하고,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예수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 같습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이었고, 하늘에서 내린 형벌로 생각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눈썹이 빠지고, 코가 무너지고, 입술이 무너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썩어지는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병든 것 자체도 고통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집에서 쫓겨나고 동네에서 쫓겨나서 병자들끼리 따로 모여서 삽니다. 위로받지 못하고, 간호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버림받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이 가까이 오면 돌을 던지며 쫓아버렸습니다. 그런 나병 환자들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절에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아직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수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피부에 나병의 증세가 보이면 제사장에게 가서 나병인가 아닌가 진단을 받도록 했고, 나병이 나았을 때도 제사장에게 진단을 받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한 것은 고쳐주실 것을 전제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믿고 가보자” 이런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참 대단합니다. 그들은 가다가 몸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주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병이 나은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격하고, 열광했을 것입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소리를 지르면서 외쳤을 것입니다.
2.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렇게 좋아하다가 아홉 사람은 ‘제사장에게 보이고 집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가버렸습니다. 15-16절에 보면 한 사람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주님께서 참으로 안타까워하시며 탄식하신 말씀입니다. 불치병을 고쳐준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 한마디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허탈감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을까요? 그 아홉 명 중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살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면 숨 가쁘게 달려와서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감사할 것 같은데 고침받은 다음에는 모두 자기 길로 가버렸습니다. 은혜를 받고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뿐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는 것보다, 가족들 만나는 것보다, 세상 일하는 것보다, 자기 볼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주님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반면 그 아홉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성경을 배웁니다. 이 아홉 명의 나병 환자가 언제부터 나병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 밑에서 율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제사이고 그 제사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절기가 나오는데 그 절기의 핵심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고, 맥추절은 보리 추수한 다음에 감사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외우는 시편에도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배웠으면서도 실제로는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당연히 여기지는 않습니까? 구원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죄사함 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닙니까?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은혜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세계 도처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하루에만도 수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부르게 먹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고, 주일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까? 자유롭게 숨 쉬고, 발로 걸어 다니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19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다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다가 구원받지 못했고, 그러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다가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중요한 교훈은 감사는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버렸던 아홉 사람들 마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매 주일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며 예배드리라 하십니까? 왜 1년에 한 번씩 추수감사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감사를 표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감사를 표현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를 표현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힘이 납니다. 삶의 의미를 줍니다. 행복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감사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도 귀합니다. 말씀 순종도 귀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빠지면 안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주님께 무엇을 드렸을까요? 나병 환자였기 때문에 가진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돈도 없었을 것이고, 입고 있는 옷도 초라했을 것이고, 무슨 선물을 사가지고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엎드려 절하며 온몸으로 감사를 드리고,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시편 69:30-31에 보면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립시다. 찬송을 부를 때, 기도를 드릴 때, 헌금을 드릴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적과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하나님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감사하십시다.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 다시 찾아와 감사하였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를 교훈하고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1.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에 한 동네에 들어가시자 나병 환자 열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이 많은 이적을 행하고,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예수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 같습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이었고, 하늘에서 내린 형벌로 생각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눈썹이 빠지고, 코가 무너지고, 입술이 무너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썩어지는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병든 것 자체도 고통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집에서 쫓겨나고 동네에서 쫓겨나서 병자들끼리 따로 모여서 삽니다. 위로받지 못하고, 간호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버림받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질러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이 가까이 오면 돌을 던지며 쫓아버렸습니다. 그런 나병 환자들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절에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아직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수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피부에 나병의 증세가 보이면 제사장에게 가서 나병인가 아닌가 진단을 받도록 했고, 나병이 나았을 때도 제사장에게 진단을 받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한 것은 고쳐주실 것을 전제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믿고 가보자” 이런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참 대단합니다. 그들은 가다가 몸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주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병이 나은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감격하고, 열광했을 것입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소리를 지르면서 외쳤을 것입니다.
2.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렇게 좋아하다가 아홉 사람은 ‘제사장에게 보이고 집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가버렸습니다. 15-16절에 보면 한 사람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주님께서 참으로 안타까워하시며 탄식하신 말씀입니다. 불치병을 고쳐준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 한마디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허탈감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을까요? 그 아홉 명 중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살면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면 숨 가쁘게 달려와서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감사할 것 같은데 고침받은 다음에는 모두 자기 길로 가버렸습니다. 은혜를 받고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뿐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는 것보다, 가족들 만나는 것보다, 세상 일하는 것보다, 자기 볼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주님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반면 그 아홉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성경을 배웁니다. 이 아홉 명의 나병 환자가 언제부터 나병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 밑에서 율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제사이고 그 제사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절기가 나오는데 그 절기의 핵심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고, 맥추절은 보리 추수한 다음에 감사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외우는 시편에도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배웠으면서도 실제로는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당연히 여기지는 않습니까? 구원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죄사함 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닙니까?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은혜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세계 도처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하루에만도 수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부르게 먹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고, 주일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까? 자유롭게 숨 쉬고, 발로 걸어 다니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19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다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다가 구원받지 못했고, 그러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다가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중요한 교훈은 감사는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버렸던 아홉 사람들 마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매 주일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며 예배드리라 하십니까? 왜 1년에 한 번씩 추수감사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감사를 표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감사를 표현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를 표현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힘이 납니다. 삶의 의미를 줍니다. 행복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감사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도 귀합니다. 말씀 순종도 귀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빠지면 안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주님께 무엇을 드렸을까요? 나병 환자였기 때문에 가진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돈도 없었을 것이고, 입고 있는 옷도 초라했을 것이고, 무슨 선물을 사가지고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엎드려 절하며 온몸으로 감사를 드리고,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시편 69:30-31에 보면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드립시다. 찬송을 부를 때, 기도를 드릴 때, 헌금을 드릴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적과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하나님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감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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