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2 수요예배 설교(예레미야애가 3장 19-54절/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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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12-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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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는 슬픈 노래이다. 주전 586년 유다가 멸망당했다.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 바벨론 군대가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불사르고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선지자들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고난 중에서 소망을 가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
19절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이다. 자신과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을 기억해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지 쑥과 담즙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담즙은 쓸개즙으로 너무 써서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괴롭고 힘든 상황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 잡혀갔다. 이 현실을 바라볼때 그 고초와 재난이 너무 크다. 너무나 심각하다. 그래서 그것이 쑥처럼 담즙처러 쓰고 괴롭다고 탄식하고 있다.
20절
이 재난의 현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볼때 마음에 낙심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속에서 낙심이 되었다. 터널을 지나고 나면 밝은 곳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사람들이 많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기에 낙심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점점 이렇게 어려움이 심해진다. 현실만 보면 낙심되는 것이 심해진다.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좋아지지가 않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이 나아질 기미기 보이질 않는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더 심했을 것이다.
21절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나온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재난의 현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해보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인가? 마음에 담아두고 묵상하고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절망적이고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묵상해보니 절망적인 이 현실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전이다.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고난과 재난으로 낙심하는 중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망을 발견하고 붙들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낙심이 변하여 희망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과 긍휼이 풍성하신 성품을 발견한 것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셔서 아주 진멸되지 않고 그래도 남겨두시고 자비를 베푸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망이다. 현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 절망속에서 묵상, 기도, 생각하다가 소망을 발견했는데,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인자하시고 긍휼이 무궁하심을 깨닫고는 소망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가 진멸되지 않아구나"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흑암 가운데 한줄기 빛이 비춰진 것이다.
우리의 소망도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소망을 가진다. 현실과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3절
"이것들이" 소망이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성실히 약속을 지키셔서 마침내 구원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힘을 내보는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이 아니고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경험하는 것이다. 흥분되고 기대하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을 깨닫고 만난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기대하면서 아침을 시작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 새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밤에 기도하며 묵상하며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볼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했다.
아침마다 소망이 새롭고 힘이 생기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을 만나고 깨달으면서 소망을 크게 갖게 되었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다 망했는데, 절망 가운데 있는데, 그러나 예레미야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크게 깨달아서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니을 바라봐야 하겠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은혜를 체험해야 하겠다.
24절
하나님의 성품을 새로 깨닫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알고 소망을 가진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소망을 걸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면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 상급, 복, 은혜이다.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날마다 기대해야 한다. 기도할때마다 은혜를 기대하고, 예배드릴때 마다 은혜를 기대하고, 새로 하루를 시작할때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예레미야 선지자의 믿음의 모습이다.
25-26절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구원을 기대하면서 소망을 갖고 기다렸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영혼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 말고 우리가 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기다리면서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믿음과 소망생활이다.
이사야 30:15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잠잠하고 신뢰해야 힘을 얻는다.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을 기다리고 소망하고 잠잠히 기다리면 반드시 건져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그런데 믿음이 없을때에는 이것을 못한다.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이방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구하고 도망다니고 여기저기 피해다니다가 해만 받는다. 기다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수 없다. 기도응답, 말씀 순종후 성취, 예수님의 재림도 다 기다려야 한다. 믿음생활은 온통 기다리는 것들이다.
27-28절
멍에를 메고 잠잠히 참고 견뎌야 한다. 멍에 맬때 혼자 앉아서 잠잠해야 한다. 멍에는 고난이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 잡혀가 종살이하는데 이 멍에를 잘 참고 견디면 결국 유익과 복이 될 것이다.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하지 말고 잘 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무 멍에를 꺾어버렸다(렘 28:10,13). 하나님이 매어준 멍에를 잘 매고 견디는 것이 은혜받는 길이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주께서 매주신 것이니 감당해야 한다.
사명 감당하는 것, 말씀 순종하는 것도 멍에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잘 참고 인내하면서 멍에를 잘 매는 것이 소망의 길이다.
29-30절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지극히 낮아지는 것이다. 입을 땅바닥에 대는 것이다. 능욕을 당하는 가운데 잘 참는 모습이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배부르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치욕을 다 당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셨다. 낮아져서 잘 견디고 능욕을 받고 참으면 때가 되어 높여주실 것이다.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31-32절
참고 견디고 치욕으로 배를 부르게하고 낮아져서 인내할 것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은혜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근심하게는 하지만 풍부한 인자하심으로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33-54절)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33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고통 당하게 하고 재난을 만나게 하고 큰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필요하고 유익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고난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39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라고 했다.
유다가 멸망당한 것은 죄때문이었다. 많은 경우 범죄때문에 고난이 온다.
시편 107:10-11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런데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은 아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낮추어서 겸손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고난이 있다. 바울에게 가시 주신 것이 그렇다.
연단하고 훈련시켜서 귀하게 쓰시려고 주신 고난이 있다. 요셉과 다윗의 고난이 그렇다.
믿음을 시험하는 고난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려고 주시는 고난도 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원인을 알수 없다.
그런데 모든 고난의 최종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본심은 은혜받고 복주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34절
갇힌 자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를 발로 밟는 일이 있다. 멸시 핍박하고 괴롭히는 원수들이 있다.
35절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재판을 굽게 한다. 성도를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하고 벌받게 하는 일들이 있다.
36절
송사를 억울하게 해서 손해보게하는 일들이 많은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37절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이런 억울한 일, 박해받는 일, 손해보는 일이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세상에 생길수 없다는 것이다.
38절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이루어진다.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39절
사람과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줄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 원망할 것 없고 죄를 찾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이다.
40절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자신들의 죄를 전부 찾아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징계하셨을지라도 하나님께 돌아가야 살 길이 열린다. 살길,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만 있다.
41절
마음을 쳐들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손을 드는 것은 항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살길이요 긍휼과 자비를 입을수 있는 길이다.
42-47절
유다백성들이 죄 때문에 심판받아서 비참해진 형편을 길게 기록했다.
엄청난 재난과 고난을 당해서 어떻게 해볼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48-49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시내처럼 흘리면서 회개했다.
52-54절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다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력해도 빠져나올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야 한다.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만 있다. 이것은 절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모든 가능성이 없어지고 노력과 힘으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이 믿음이다.
예레미야애가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자기 힘으로 돌이킬수 없으니 하나님께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내 힘으로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나 내 힘으로 절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을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부르짖게 된다. 그러면 살아날수 있다. 인간의 절망적인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되고,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살다보면 우리도 힘들고 낙심되고 재난 속에서 절망에 빠질수 있는데 이 말씀 묵상하면서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다.
"애가"는 슬픈 노래이다. 주전 586년 유다가 멸망당했다.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 바벨론 군대가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불사르고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선지자들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고난 중에서 소망을 가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
19절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이다. 자신과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을 기억해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지 쑥과 담즙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담즙은 쓸개즙으로 너무 써서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괴롭고 힘든 상황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 잡혀갔다. 이 현실을 바라볼때 그 고초와 재난이 너무 크다. 너무나 심각하다. 그래서 그것이 쑥처럼 담즙처러 쓰고 괴롭다고 탄식하고 있다.
20절
이 재난의 현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볼때 마음에 낙심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속에서 낙심이 되었다. 터널을 지나고 나면 밝은 곳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사람들이 많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기에 낙심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점점 이렇게 어려움이 심해진다. 현실만 보면 낙심되는 것이 심해진다.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좋아지지가 않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이 나아질 기미기 보이질 않는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더 심했을 것이다.
21절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나온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재난의 현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생각해보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인가? 마음에 담아두고 묵상하고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절망적이고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묵상해보니 절망적인 이 현실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전이다.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고난과 재난으로 낙심하는 중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망을 발견하고 붙들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낙심이 변하여 희망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과 긍휼이 풍성하신 성품을 발견한 것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셔서 아주 진멸되지 않고 그래도 남겨두시고 자비를 베푸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망이다. 현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 절망속에서 묵상, 기도, 생각하다가 소망을 발견했는데,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인자하시고 긍휼이 무궁하심을 깨닫고는 소망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가 진멸되지 않아구나"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흑암 가운데 한줄기 빛이 비춰진 것이다.
우리의 소망도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소망을 가진다. 현실과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3절
"이것들이" 소망이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성실히 약속을 지키셔서 마침내 구원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힘을 내보는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이 아니고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경험하는 것이다. 흥분되고 기대하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을 깨닫고 만난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기대하면서 아침을 시작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 새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밤에 기도하며 묵상하며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볼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했다.
아침마다 소망이 새롭고 힘이 생기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을 만나고 깨달으면서 소망을 크게 갖게 되었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다 망했는데, 절망 가운데 있는데, 그러나 예레미야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크게 깨달아서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니을 바라봐야 하겠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은혜를 체험해야 하겠다.
24절
하나님의 성품을 새로 깨닫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알고 소망을 가진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소망을 걸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면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 상급, 복, 은혜이다.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날마다 기대해야 한다. 기도할때마다 은혜를 기대하고, 예배드릴때 마다 은혜를 기대하고, 새로 하루를 시작할때 은혜를 기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예레미야 선지자의 믿음의 모습이다.
25-26절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바라보면서, 구원을 기대하면서 소망을 갖고 기다렸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영혼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 말고 우리가 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기다리면서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믿음과 소망생활이다.
이사야 30:15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잠잠하고 신뢰해야 힘을 얻는다.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을 기다리고 소망하고 잠잠히 기다리면 반드시 건져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그런데 믿음이 없을때에는 이것을 못한다.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이방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구하고 도망다니고 여기저기 피해다니다가 해만 받는다. 기다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수 없다. 기도응답, 말씀 순종후 성취, 예수님의 재림도 다 기다려야 한다. 믿음생활은 온통 기다리는 것들이다.
27-28절
멍에를 메고 잠잠히 참고 견뎌야 한다. 멍에 맬때 혼자 앉아서 잠잠해야 한다. 멍에는 고난이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 잡혀가 종살이하는데 이 멍에를 잘 참고 견디면 결국 유익과 복이 될 것이다.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하지 말고 잘 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무 멍에를 꺾어버렸다(렘 28:10,13). 하나님이 매어준 멍에를 잘 매고 견디는 것이 은혜받는 길이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주께서 매주신 것이니 감당해야 한다.
사명 감당하는 것, 말씀 순종하는 것도 멍에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잘 참고 인내하면서 멍에를 잘 매는 것이 소망의 길이다.
29-30절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지극히 낮아지는 것이다. 입을 땅바닥에 대는 것이다. 능욕을 당하는 가운데 잘 참는 모습이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배부르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치욕을 다 당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셨다. 낮아져서 잘 견디고 능욕을 받고 참으면 때가 되어 높여주실 것이다.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31-32절
참고 견디고 치욕으로 배를 부르게하고 낮아져서 인내할 것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은혜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근심하게는 하지만 풍부한 인자하심으로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33-54절)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33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고통 당하게 하고 재난을 만나게 하고 큰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필요하고 유익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고난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39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라고 했다.
유다가 멸망당한 것은 죄때문이었다. 많은 경우 범죄때문에 고난이 온다.
시편 107:10-11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런데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은 아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낮추어서 겸손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고난이 있다. 바울에게 가시 주신 것이 그렇다.
연단하고 훈련시켜서 귀하게 쓰시려고 주신 고난이 있다. 요셉과 다윗의 고난이 그렇다.
믿음을 시험하는 고난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려고 주시는 고난도 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원인을 알수 없다.
그런데 모든 고난의 최종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본심은 은혜받고 복주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34절
갇힌 자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를 발로 밟는 일이 있다. 멸시 핍박하고 괴롭히는 원수들이 있다.
35절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재판을 굽게 한다. 성도를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하고 벌받게 하는 일들이 있다.
36절
송사를 억울하게 해서 손해보게하는 일들이 많은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37절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이런 억울한 일, 박해받는 일, 손해보는 일이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세상에 생길수 없다는 것이다.
38절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이루어진다.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39절
사람과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줄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 원망할 것 없고 죄를 찾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이다.
40절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자신들의 죄를 전부 찾아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징계하셨을지라도 하나님께 돌아가야 살 길이 열린다. 살길,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만 있다.
41절
마음을 쳐들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손을 드는 것은 항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살길이요 긍휼과 자비를 입을수 있는 길이다.
42-47절
유다백성들이 죄 때문에 심판받아서 비참해진 형편을 길게 기록했다.
엄청난 재난과 고난을 당해서 어떻게 해볼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48-49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을 시내처럼 흘리면서 회개했다.
52-54절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다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력해도 빠져나올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야 한다.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만 있다. 이것은 절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모든 가능성이 없어지고 노력과 힘으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이 믿음이다.
예레미야애가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자기 힘으로 돌이킬수 없으니 하나님께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내 힘으로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나 내 힘으로 절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을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부르짖게 된다. 그러면 살아날수 있다. 인간의 절망적인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되고,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살다보면 우리도 힘들고 낙심되고 재난 속에서 절망에 빠질수 있는데 이 말씀 묵상하면서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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